무너지지 않고 말하는 법

by 권한별

“그렇게 말하면 분위기가 나빠지잖아.”
회의가 끝나고 난 후, 한 직원이 조용히 말했다.
팀장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속은 복잡했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침묵해야 하는 현실이,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구조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씁쓸했다.
하지만 침묵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을 무너뜨리는 가장 조용한 폭력이었다.

팀장님은 말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너지지 않고 말하는 법을 스스로 훈련했다.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말이 부당한지를 인식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메모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회의 중 반복적으로 내 말을 자르고 다른 사람이 정리해버린다.”
“지시가 애매한데도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돌아온다.”
이처럼 언뜻 보기엔 사소한 일처럼 보이는 경험들을 기록하며, 그는 조금씩 자신의 감각을 회복해 나갔다.

변화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어느 날 회의에서, 팀장님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지금 이야기하신 방식에 대해 제 입장을 조금 더 설명드려도 될까요?”
그 말은 단순했지만 회의실 공기는 미묘하게 변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그 한 문장이, 침묵으로 이루어진 성벽에 작은 균열을 냈다.
그 후 몇 차례, 그는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직설적인 항의가 아니라, 상황에 질문을 던지고 맥락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물론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이는 불쾌한 얼굴을 했고, 어떤 이는 회의 후 따로 찾아와 “그렇게까지 예민할 필요 있었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계속했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해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왜 그렇게까지 느꼈냐’는 질문이 아니라, ‘그럴 수 있겠다’는 말이 들리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숨기지도 않는 방법을 찾았다.
그건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있어도 표현할 수 있는 힘이었다.
점점 더 그는 상황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지금의 구조가 사람을 어떻게 소모시키고 있는지를 말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말을 할 때마다 손에 땀이 차고, 회의가 끝난 뒤엔 이불 속에서 후회도 한다.
하지만 달라진 건, 이제는 그 후회를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회를 기록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지금 이 방식이 완벽하진 않아도, 적어도 자신을 지키는 데는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점차 주변을 바꿔갔다.
몇몇 동료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고, 어느 날은 후배 한 명이 그에게 말했다.
“팀장님이 말해줘서, 저도 이제 불편한 상황에 그냥 넘기지 않게 됐어요.”
그 말 한마디에, 그는 지난 수개월의 불안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작은 목소리가 작은 목소리를 불렀다.
그것은 외침이 아니었고, 투쟁도 아니었다.
단지, 사람을 지키는 일의 시작이었다.

팀장님은 알게 되었다.
말하는 것은 자신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말은,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힘이라는 것을.
말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다시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회의 전에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긴장하고, 어떤 날은 말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배웠다.
말이 곧 구조이고, 언어가 곧 권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힘을 이제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도 그는 또 하나의 회의실 문을 연다.
그 안에 어떤 말들이 오가든, 자신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그는 안다.
이미 한 걸음은 내디뎠다는 것을.
무너지지 않고 말하는 법은, 그렇게 매일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작가의 말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 문장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나를 구했다》에서 저의 고백을 더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더 많은 이야기와 작은 위로들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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