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러려니 해요.”
“다 그렇게 살아.”
그 말을 들었을 때, 팀장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침묵을 강요하는 주문이었다.
그 ‘그냥’이 팀장님의 아침을 어떻게 삼키고, 하루를 어떻게 무력하게 만들었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말하면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조용히 감당하면 어른이고, 문제를 꺼내면 민폐였다.
그 경계에서 팀장님은 늘 스스로를 지웠다.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웃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이건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고통이라는 걸.
이건 멀쩡한 척하며 살아남으려는 누군가에게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조용히, 혼자서, 기록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한 문장이었다.
그날 회의에서 들은 말투, 그가 나간 뒤 들린 웃음소리,
메일에 숨어 있는 따돌림의 문장.
모든 것을 적었다.
이상하다고 느낀 감각을, 그 느낌 그대로.
‘별 일은 아니지만 왠지 낯설었던 순간’을, 그 낯섦의 이유까지 적어두었다.
동료 중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걸 왜 적어요?” 하는 질문이 돌아왔다.
팀장님은 답하지 않았다.
이건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버텨내기 위한 감각의 지도였으니까.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공책의 페이지가 쌓여갈수록 그 안엔 명확한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립의 구조, 타겟화의 순서, 리더의 방관.
불편했던 순간들이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일관된 패턴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팀장님은 처음으로 ‘이건 내 문제가 아니었구나’라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여전히 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관리자조차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회피했다.
어쩌면 모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면 그들도 같이 끌려들게 되니까.
다들 방관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게 더 편하고, 덜 다치니까.
그때부터였다.
팀장님은 결심했다.
‘이 조직 안에서는 회복할 수 없다’는 걸.
회복은 바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퇴근 후 카페에 앉아, 그동안 적어온 문장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실명을 쓰지 않고도, 구체적인 감각과 사실만으로도 이 구조의 폭력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익신고라는 단어가 처음 떠오른 건 그즈음이었다.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고, 두렵기도 했지만 “이런 일로 신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
“이걸 그냥 넘기면 아무 일도 바뀌지 않는다”는 확신이 더 컸다.
그러기 위해선 더 철저히, 더 조심스럽게 기록해야 했다.
대화의 녹취, 메일 캡처, 시간과 맥락.
매일 퇴근 후, 팀장님은 작은 파일에 그날의 기록을 쌓았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그 기록들이 쌓이는 만큼 팀장님의 내면은 흔들림 없이 정돈되어갔다.
그 고요하고 단단한 시간을 지나며 그는 비로소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고통은 견디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내릴 수 있었다.
회사를 떠나진 않았다. 아직은.
하지만 마음은 분명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더 이상 회복을 조직 안에서 기대하지 않았다.
회복은, 이제 자기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말이 되고, 기준이 되고, 변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랐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바뀌지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는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멀쩡한 척하지 않기 위해.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더 이상 견디지 않기 위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 문장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나를 구했다》에서 저의 고백을 더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더 많은 이야기와 작은 위로들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