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아무도 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팀장님은 알고 있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는 걸.
회의가 끝나고 다들 자리를 떠날 때, 그 눈빛 속엔 말하지 않는 동의가 있었다.
회의 중에 쏟아졌던 일방적인 비난, 허공을 향해 날아간 비꼼들, 사소한 말실수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방식.
그건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조직이 한 사람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압박해나가는 구조였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모두는 그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니, 감히 내지 못했다.
“그 사람 원래 저래.”
“너까지 나서면 더 복잡해져.”
“조용히 있자. 우린 그냥 넘어가자.”
그 말들은 조언처럼 들리지만, 실은 방조의 선언이었다.
팀장님은 그 말들을 수없이 들었다.
말을 꺼낼 때마다 돌아오는 건, 연대가 아닌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어느 순간부터 팀장님 스스로도 그런 말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그냥 지나가는 일일 거야.’
‘다들 참는데 나만 민감한 걸지도 몰라.’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닐까.’
고통은 말할 수 없을 때 더 깊어졌고, 그 말할 수 없음은, 주변의 침묵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어떤 날은 더 뼈아팠다.
함께 밥을 먹던 동료가, 나를 피하기 시작할 때. 눈이 마주쳤는데도 인사 없이 고개를 돌릴 때.
단둘이 있을 땐 “나도 사실 안타까워”라고 말하던 사람이,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외면하는 모습을 볼 때.
그때마다 팀장님은 스스로를 향해 물었다.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하지만 고요하게 되묻는 감정 너머에는 ‘모두 알고 있다’는 냉정한 확신이 있었다.
방관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움, 책임 회피, 혹은 생존 전략.
그 모든 감정과 이기심이 뒤엉켜 만든, 침묵의 공동체였다.
팀장님은 이해했다. 그들도 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하지만 그 이해가 고통을 덜어주지는 않았다.
기록은 계속되었다.
이젠 누가 옆에 있든, 없든 팀장님은 하루의 끝마다 자신의 감정을, 상황을, 침묵의 온도를 적어내려갔다.
그 노트의 한 귀퉁이에 이런 문장이 남아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그래서 모두가 안전했다.
하지만 그 안전은,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말하지 않은 사람들. 눈을 돌린 사람들. 웃으며 넘긴 사람들.
그들 모두가 가해 구조의 한 축이었음을 팀장님은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팀장님은 결심한다.
나처럼 견디는 누군가에게, 언젠가 이 말들이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하지 않은 침묵이 아니라, 말했기 때문에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음을 스스로의 기록으로 증명해 보이겠다고.
오늘도, 팀장님은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 문장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나를 구했다》에서 저의 고백을 더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더 많은 이야기와 작은 위로들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