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저 불편함이었다.
말투 하나, 눈빛 하나, 회의 중 나를 향한 눈치가 미묘하게 달랐다.
직접적인 말은 없었다. 대신, 무언의 메시지가 있었다.
'어울리지 마. 저 사람, 너무 튀잖아.'
팀장님은 그것을 감지했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걸,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알아차렸다.
“우린 다 그냥 넘기기로 했어.”
“이제는 말 안 하는 게 나을 거야.”
“괜히 너까지 나서면... 알지?”
말은 조언처럼 들렸지만, 실은 침묵의 협박이었다. 그 말 뒤에는 늘 조건이 붙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고립될 거야.’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내가 틀린 걸까? 내가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더 명확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해한 표정을 짓고, 비겁한 침묵을 정당화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팀장님에게 말했다.
“너도 조용히 있자.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이같은 협박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팀장님은 처음 알았다.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의 뜻은 ‘가해자와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그들의 유머에 웃고, 불편한 말을 꺼내지 말고, 문제 삼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결국 ‘너도 평범한 악의 일부가 되어라’는 제안이었다. 혹은, 그렇지 않으면 이 조직에 설 자리는 없다는 선언이었다. 무릎이 휘청일 정도로 버거운 선택지였다.
하지만 팀장님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웃기지 않은 유머에 웃지 못했고, 이상한 걸 이상하지 않은 척 할 수 없었고, 눈을 돌려야 할 장면 앞에서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래서 팀장님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고립되었다.
누군가는 슬며시 자리를 바꾸었고, 누군가는 회의에서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고, 누군가는 다 들릴 정도로 험담을 흘렸다.
하지만 가장 아픈 건 그 누구도, 아무도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불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너무 예민한 사람’,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팀장님은 생각했다. 왜 이 구조는, ‘정상적인’ 사람을 고립시키는 걸까. 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문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느 날, 점심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던 순간이 있다. 누군가 대놓고 말했다.
“요즘 너무 예민하시다.”
그 말 한마디에, 무너진 건 식욕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그 말은 팀장님을 향한 핀잔이 아니라 팀장님이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조용한 목조르기 같았다.
그날 이후, 팀장님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건 견딜 수 있는 고통인가?’
‘아니면 내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벗어난다는 건, 생계를 포기하는 일이었고 동시에 정의감에 패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남는다는 건, 매일 조금씩 무너지는 일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팀장님은 더 이상, ‘평범한 악’ 속으로 자신을 던질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팀장님은 이 조직을 ‘살아남기 위한 전장’이 아니라, ‘떠나기 위해 기록해야 할 현장’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여긴 나를 나답게 숨 쉬게 하지 않는다.
마치 나의 목을 잡고, 너도 평범한 악이 되어 이들과 어울리거나, 이 곳을 나가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나는 그 어떤 쪽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지키겠다.”
그 결심은, 작지만 분명한 탈출의 시작이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 문장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나를 구했다》에서 저의 고백을 더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더 많은 이야기와 작은 위로들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