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 같았다.
침묵이 너무 길어지고, 숨죽인 하루가 계속되다 보니, 어느 날은 존재의 경계가 흐려졌다.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이 고통이 누군가에게 전해질까.
나라는 사람은, 정말 여기 있는 걸까.
팀장님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문득 펜을 들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증명하려는 것도 아닌 채로 그냥, 견딜 수 없어서.
말로 하면 휘발되는 고통이, 글로 남기면 덜 아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글은 더 정직해서, 더 아팠다.
처음 쓴 문장은
“나는 오늘도 아무 일 없는 척했다.”
그 문장을 쓰고 울었다.
‘아무 일 없었던’ 하루에, 사실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많은 감정을 억눌러야 했고, 너무 많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었으니까.
그날 이후, 글쓰기는 버릇처럼 이어졌다.
아무도 읽지 않을 블로그,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을 워드 파일.
팀장님은 그 속에서 조금씩 살아남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기록이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
‘이 말이 너무 아팠다.’
‘나는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조직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 날, 문장이 바뀌었다.
‘내가 겪은 이 일은, 누군가에게도 일어났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는다면, 그는 덜 외로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글은 생존을 넘어 연결을 위한 무언가가 되었다.
하루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검색하다, 낯선 사람의 블로그 글을 발견했다.
그 글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글로 말해지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구조 요청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 문장을 읽고, 팀장님은 처음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바꿨다. 블로그를 닫지 않고, 열었다.
비공개 글을 하나씩 공개로 바꿨다.
처음엔 두려웠다.
‘이걸 누가 보면 어떡하지?’
‘직장 사람들이 알게 되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미 충분히 이상한 사람으로 찍혀 있었다는 것을. 침묵해도 가해는 멈추지 않았고,
순응해도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고, 무력해져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진짜 나를 말하고 싶었다. 나의 언어로, 나의 경험을.
글을 쓸 때마다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 고통은 이상하게도 혼자가 아니게 해줬다.
댓글 하나가 달렸을 때, “저도 같은 일을 겪고 있어요” 라는 한 문장이 보였을 때, 팀장님은 울었다.
누군가 내 고통을 읽었다는 사실이, 그것만으로도 나를 사라지지 않게 했다.
어느새 팀장님의 글에는 읽는 이가 생겼고,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고, 가끔은 메일이 도착했다.
‘당신의 글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고.’
그럴 때마다 팀장님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서.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글로 말하면서 팀장님은 자신을 지켰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세상이 침묵을 강요할 때 작은 목소리라도 남기기 위해.
그리고 지금, 그 글들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려 하고 있다.
그 자체가 증거였다. 내가 이 시간들을 살아냈고, 말하지 않는 이들 속에서 나는 끝내 말하기로 선택했다는 증거.
팀장님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도 더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계속 쓸 것이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 문장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나를 구했다》에서 저의 고백을 더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더 많은 이야기와 작은 위로들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