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악을 지나온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
어느 순간,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괜찮으세요?”
“저는 옆에서 다 봤어요.”
그런 말들은 따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 말들은 회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 아무 일 없던 듯 사라져버렸다.
한동안은 버텼다. 그래도 누군가가 말해주길, 그래도 회사가 알아주길, 그래도 인간이 사람을 무너뜨리진 않길. 하지만 그 바람은 서서히, 아주 느리게 무너졌다.
“그냥 조용히 지내면 편해져요.”
“다들 그렇게 살잖아요.”
“말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어요?”
이 말들이 내 안에 고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사라져갔다.
사람들은 무례했지만 정중했고, 불쾌했지만 웃고 있었고, 폭력이었지만 너무 일상적이었다.
그 평범한 악 속에서 나는 조용히 병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건, 나를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정말 사라질 거라는 것을.
그래서 결심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익제보라는 단어를 처음 검색했을 때, 화면에 뜬 설명은 너무 딱딱하고 멀었다.
‘내부신고자 보호법’
‘신분 비공개’
‘불이익 금지 조치’
그 단어들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르게 해도 될까?
그저, 이 모든 일이 기록되기만을 바랐다.
나는 기록했고, 증거를 모았고, 시간을 분류했고, 말들을 텍스트로 정리했다.
제보서를 작성할 때, 손이 덜덜 떨렸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오만 가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더는 나를 외면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제보서를 보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지만, 나는 바뀌었다.
그 이후의 삶은 쉽지 않았다.
동료 중 몇몇은 차가워졌고, 내 자리를 애써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목소리를 냈다는 증거였다.
침묵 속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아니라, 말함으로써 존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증거였다.
그 후,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누가 나를 구해주길, 어떤 권력이 나를 대변해주길 바라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구하는 사람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다짐한다.
“너는 네 편이야. 너는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그 다짐이 쌓여 내 하루가 되었고, 내 삶이 되었다.
지금 나는, 정확히 나의 중심에 서 있다.
평범한 악이 나를 휘감던 자리에서 한 발짝, 한 발짝 빠져나왔고, 이제는 그 기억을 기록하고, 누군가의 손을 잡는 사람이 되었다.
나처럼 아팠던 사람에게
“나는 이런 방식으로 나를 구했어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오늘은 그런 하루의 반복이다.
어제보다 덜 외면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지키며, 어제보다 더 분명하게 살아가는 삶.
이제는, 내가 나를 구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구원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말과 행동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 문장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날, 나는 나를 구했다》에서 저의 고백을 더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더 많은 이야기와 작은 위로들을 듣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