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해고가 무효가 되지 않는다고?

한국 해고와 미국 해고의 구조적 차이

by Khan KIM

들어가며


한국에서 10년간 노동법을 전문으로 해 온 필자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wrongful termination 사건을 접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해고가 위법해도 해고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한국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당해고 = 해고무효 = 원직복직”이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에서의 해고 리스크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고의 효력”에 관한 한미 양국의 구조적 차이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법 = 해고무효 + 원직복직 + 임금상당액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제한


한국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핵심은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즉, 한국에서 해고는 사용자의 자유로운 권리가 아니라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만 허용되는 예외적 행위이다.

정당한 이유의 존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대법원 판례에 의해 정립되어 왔다.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으며(대법원 2002. 5. 28. 선고 2001두10455 판결 등 다수), 그 판단에 있어서는 근로자의 비위의 정도, 근속기간, 회사에 끼친 손해, 개전의 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해고무효의 법적 효과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 이는 해고의 의사표시 자체가 무효이므로, 근로관계는 해고 시점에도 중단 없이 계속 존속한 것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한국법상 부당해고가 인정되면 “근로자가 회사를 떠난 적이 없는 것”이 된다. 이러한 법리 하에서 원직복직은 당연하다. 해고가 무효이므로 근로관계가 존속하고, 존속하는 근로관계에 따라 근로자는 원래의 직위로 복귀하며, 해고 기간 동안 지급되지 않은 임금도 전액 청구할 수 있다.


구제 절차


한국에서 부당해고를 다투는 근로자에게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것이다(근로기준법 제28조). 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을 거치며, 구제명령이 확정되면 사용자는 원직복직 및 해고 기간 중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둘째, 민사법원에 해고무효확인의 소 및 임금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어느 경로를 선택하든, 구제의 핵심은 동일하다: 해고의 효력 자체를 부정하여 근로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 점이 아래에서 살펴볼 미국법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이다.


미국법 = 해고유효 + 손해배상(damage, 임금상당액 back pay 포함)


At-Will Employment 원칙과 예외


미국 고용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임의고용(at-will employment)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언제든지, 어떤 이유로든(또는 이유 없이), 사전 통지 없이 고용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 한국법에서 해고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행위”인 것과 정반대로, 미국법에서 해고는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행위”이다. 다만 At-will 원칙이 해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무제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연방법과 주법 모두에서 특정한 동기에 의한 해고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해고를 wrongful termination이라 한다.


연방법상의 보호


연방법은 각 개별 법률(statute)을 통해 특정 사유에 의한 해고를 금지하고 있다. 주요 법률로는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국적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Title VII of the Civil Rights Act of 1964,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ADEA), 장애 차별을 금지하는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ADA), 그리고 인종 및 국적에 기반한 계약상 차별을 금지하는 42 U.S.C. §1981이 있다. 각 법률에는 보복(retaliation) 금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해당 법률에 따른 권리를 행사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것 이외에 연방법에는 한국의 근로기준법 제23조와 같이 “일반적으로 해고에 정당한 사유를 요구하는 포괄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방법의 보호는 각 개별 법률이 열거한 사유(인종, 성별, 연령, 장애, 보복 등)에 한정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유에 의한 해고는 연방법상 위법하지 않다.


주법(State Law)상의 보호: 캘리포니아의 경우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근로자 보호 법제를 갖추고 있는 주 중 하나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연방법에 대응하는 주법인 Fair Employment and Housing Act(FEHA)를 통해 차별 및 보복에 의한 해고를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노동법 (California Labor Code)상의 보복 금지와 함께 판례법을 통해 독자적인 보호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Tameny v. Atlantic Richfield Co. (1980) 27 Cal.3d 167 판결에서 확립된 “wrongful termination in violation of public policy” 법리이다. 이 법리에 따르면, 근로자가 공익적 정책(public policy)에 반하여 해고된 경우, 예컨대 위법행위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거부했거나, 법률상 보장된 권리를 행사했거나, 위법행위를 내부 고발했기 때문에 해고된 경우에 해고된 근로자는 사용자에 대하여 불법행위(tort)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렇게 Wrongful termination의 법리는 해고 자체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행위 손해배상(tort damages)의 근거가 된다.


핵심적 차이: 해고의 효력


이렇게 한국법과 미국법의 가장 근본적인 구조적 차이는 바로 해고의 효력에 있다. 한국법에서는 위법한 해고의 효력 자체가 부정된다. 부당해고가 인정되면 해고의 의사표시가 무효가 되고, 그 결과 근로관계는 해고 시점에도 중단 없이 존속한 것으로 의제된다. 원직복직과 임금상당액 지급은 이러한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미국법에서는 위법한 해고라 하더라도 해고 자체가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해고의 의사표시에 의해 고용관계는 종료되고, 그 해고가 차별이나 보복 등 위법한 동기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사후적으로 인정되더라도 고용관계의 종료 자체가 번복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법원은 위법한 해고에 대한 사후적 구제(remedy)를 부여한다.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국법에서 부당해고는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것”과 같다. 해고는 처음부터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반하여 무효인 행위였으므로 그 행위 자체가 없었던 상태로 돌아간다. 반면 미국법에서 wrongful termination은 해고를 인정하되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다. 아래 표는 한국과 미국의 해고법제에 관한 주요 차이점을 구조적으로 비교한 것이다.


미국법상 구제수단(Remedies)의 상세


손해배상(Damages)


이렇게 미국에서 wrongful termination이 인정될 경우, 가장 일반적인 구제수단은 금전적 손해배상이다. 손해배상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보상적 손해배상(compensatory damages)이다. 이는 해고로 인해 근로자가 실제로 입은 경제적 손해를 보전하기 위한 것으로, 해고 시점부터 판결 시점까지의 상실 임금(back pay), 상실된 복리후생(benefits),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emotional distress damages) 등을 포함한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다. 사용자의 행위가 특별히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인 경우, 법원은 제재와 억제를 목적으로 실제 손해액을 초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다. Title VII 및 ADA에서는 사용자의 규모에 따라 $50,000에서 $300,000까지의 상한이 설정되어 있으나, 42 U.S.C. §1981이나 캘리포니아 주법(FEHA 및 Tameny tort)에서는 이러한 상한이 없다.


셋째, 장래 임금(front pay)이다. Front pay는 판결 시점부터 근로자가 유사한 직위를 합리적으로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까지의 미래 임금 손실을 배상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원직복직(reinstatement)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부적절한 경우에 그 대안으로 인정된다.


원직복직(Reinstatement)


당연한 의문이 든다. 그러면 원직복직은 막혀 있는가? 대답은 ‘법적으로는 가능하나, 실무적으로는 극히 드물다’이다. Title VII §706(g), 캘리포니아 FEHA(Government Code §12965) 등의 법률은 reinstatement을 명시적인 형평법적 구제수단(equitable remedy)으로 규정하고 있고, 법원은 재량에 따라 이를 명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법상 reinstatement의 법적 성질은 한국법상 원직복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에서 원직복직이 “해고가 무효이므로 근로관계가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인 것과 달리, 미국에서 reinstatement은 “이미 종료된 고용관계를 법원의 명령으로 다시 창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미국 법원은 reinstatement이 impracticable(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front pay로 대체할 수 있는 재량을 가지고 있다.


실무상 reinstatement이 명해지지 않는 가장 흔한 이유는 당사자 간의 관계가 이미 파탄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와 회사 사이의 신뢰관계가 이미 훼손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reinstatement보다 front pay가 적절한 구제수단으로 인정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instatement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맺으며


한국법과 미국법은 모두 근로자를 위법한 해고로부터 보호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보호의 구조와 방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법은 해고의 효력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근로자를 보호한다. 부당해고는 무효이고, 근로관계는 중단 없이 존속하며, 근로자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미국법은 해고의 효력을 무효로 보는 것은 아니되, 그 해고가 위법한 동기에 의한 것이었음이 입증되면 사후적 구제(주로 금전 배상)를 부여함으로써 근로자를 보호한다.


At-will 원칙은 해고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해고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해고된 근로자가 차별이나 보복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할 절차적 권리는 언제나 존재한다. 소송이 제기되면 사용자는 해고가 적법한 사유(legitimate reason)에 기한 것이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송 비용과 discovery 부담이 실질적인 리스크이다. 이 구조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미국에서의 해고를 한국법적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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