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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ug 31. 2019

유승준의 한국행

유승준은 과연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을까?

무려 17년 동안 뜨거운 관심을 유지해온 유승준의 한국행에 관해 이제는 좀 더 차가운 관점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7월 11일에 대법원 2호 법정에서 유승준에 대한 상고심재판 선고기일이 진행됐다. 유승준은 입국 금지 조치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LA 총영사를 대상으로 비자발급 거부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이미 2심 항소심 재판에서 모두 패소한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비자발급 거부 처분이 재외공관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지시에 해당하는 입국금지 결정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해서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영사관이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고 오로지 13년 7개월 전에 입국금지 결정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비자발급 거부처분을 했으므로, 이런 재량권 불행사는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동시에 영사관이 비자발급 거부를 문서가 아닌 전화로 알린 것도 행정절차 위반이라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의외의 결과였고,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덕분에 17년만에 한국에 돌아올 가능성이 열린 유승준의 입국에 대한 찬반 여론 또한 다시 한번 달아올랐다.


허리디스크 수술 전력으로 인해 신체검사 4급 판정을 받아 공익근무요원 근무가 확정된 유승준은 입대를 앞둔 2002년 초 병무청에 해외 출국을 신청했다. 일본에서 입대 전 고별콘서트를 가진 뒤 미국에 있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인 두 명이 귀국보증을 서고, 귀국을 약속하는 각서를 병무청에 제출한 뒤 허가를 받았고 출국했다. 그리고 유승준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국적을 상실했으니 병역 의무도 자동 소멸했다. 여론은 험악했다. 가히 전국민적인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다. 병무청의 입장도 단호했다. 병무청에서는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유승준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요청했다. 법무부에서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2002년 2월 2일 유승준은 인천국제공항에 나타났다. ‘스티브 승준 유’라는 이름이 기재된 미국 여권을 들고 입국심사를 받았지만 입국거부 통지를 받았다. 입국 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갈 방도가 없었다. 결국 여섯 시간동안 공항에 머무른 뒤, LA로 향하는 자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름다운 청년의 시절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당시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장은 유승준의 입국 거부에 대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국방의 의무 기피 풍조를 심어줄 악영향이 있기 때문에 관련법에 의해 입국을 금지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병무청은 ‘유승준이 국군 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들이 병역의무를 경시하게 된다’는 이유로 법무부에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요청했다. 법무부는 법무부장관의 권한으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의 입국을 금할 수 있는 출입국관리법 제11조를 근거 삼아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명령했다. 미국 시민권 취득을 취득함으로써 대한민국 국적자가 수행해야 할 병역의 의무에서 벗어난 유승준의 선택이 결국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으로 해석된 셈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유승준의 한국행이 가능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서울고등법원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확정하면 유승준의 비자발급에 대해 LA영사관에서는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승준의 한국행이 보장된 건 아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돼도 LA 영사관의 재량을 통해 비자발급의 여부를 재검토할 수 있을 뿐, 비자발급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법무부장관의 재량으로 제한할 수 있는 출입국관리법에 의거한 입국금지 명령 또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유승준의 한국행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유승준의 입국 가능 여부에 새로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넘어 보다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에서는 법무부가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입국금지 대상이었던 유승준에게 이를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이것이 적합한 행정처분이 아닌 내부적 합의에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내부적 합의를 근거로 LA영사관에서 비자발급 거부를 결정한 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해당 기관의 의무를 저버린 위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동시에 “비자발금 거부처분 당시 재외동포법에 따르면 ‘병역기피 목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해 외국인이 된 경우 38세가 되면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관계 등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외동포체류자격의 부여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다양한 이견들이 오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2년 당시 명령된 법무부의 입국금지 조치가 행정처분으로서 효력을 발휘한 것인가에 대한 쟁점이 가장 뜨겁다. 법무부에서 유승준의 입국금지가 결정한 건 2002년 2월 1일이었다. 그리고 유승준의 입국금지가 효력을 발휘한 건 바로 다음날인 2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장에서였다. 당시 유승준은 자신이 입국금지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통보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이것이 행정처분으로서의 효력을 갖기 전의 상황으로 해석했다. 반대로 법조계 일각에서는 해당장소에서 유승준에게 입국금지가 통보되는 것을 통해 행정처분으로서 효력을 갖게 된 계기라고 해석한다. 처음으로 유승준의 입국금지 기준을 설정하는 법적 기준에 대한 법조계의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법적 절차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작동하는 매커니즘이어야 한다. 대법원의 판결은 바로 그런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법무부장관의 재량을 통해 결정할 수 있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결정한 건 국군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들의 병역의무 경시를 염려했다는 병무청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으로 규정돼서 17년 동안 입국금지를 당할 만한 사안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2002년의 결정이 2019년에도 유효한 것인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 우리는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 그저 묵인했을 뿐이다. 


지난 2018년에는 복수국적 가운데 한국국적을 포기한 국적이탈자들이 6천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병역면제를 목적에 둔 18세 미만의 한인 2세 남성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최근 화제가 된 추신수 선수의 두 아들도 이에 해당된다. 물론 그들을 유승준과 같은 선상에 놓고 봐선 안될 일이다. 대중을 향해 군입대를 약속한 바도 없고, 한국에서의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본 적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병역의 의무에서 벗어난 그들이 외국인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면, 유승준과 그들은 차이는 무엇일까? ‘국민을 기만한 적이 있었는가?’라는 차이? 지난 2015년 유승준은 온라인 방송을 통해 “한국에는 저와 같은 방법으로 국적을 포기한 채 외국 국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법적인 형평성을 주장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병역의무를 기피했다는 이유로 입국이 제한된 사람은 지금껏 유승준이 유일하다. 


그러니까 이건 가혹함보다도 이상한 형벌이다. 기준이 모호하다. 법적 절차가 원칙이 아니라 감정에 좌우해 칼을 씌우는 모양새처럼 보이는 건 곤란하다. 적확한 원칙과 적절한 절차에 따라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법치 국가로서의 실력이 의심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린 지나치게 의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라도 17년 동안 방치했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건 유승준을 위한 일이 아니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미국 국적을 선택한 외국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본심이 어떻건, 정황이 어떠했건, 유승준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책임지지 못했다. 가혹함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그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다. 다만 그 가혹함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처음으로 불거진 논의에 보다 귀를 기울이고, 입을 열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법치 국가의 실력을 재점검하고 보다 이성적인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한다. 누군가가 미워진다는 이유로 현명하고 떳떳한 품격까지 잃어버릴 이유는 없으니까. 이건 대한민국과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그래야만 한다.


('GQ KOREA'에 기고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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