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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Nov 11. 2020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을 보내며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남긴 마지막 인사로 돌아본 박지선의 빈 자리.

지금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재미와 의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프로그램을 하나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을 꼽을 것이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본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을 즉석에서 섭외해서 대화를 나누고 퀴즈를 내고 정답을 맞히면 그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ATM을 찾아가 100만 원을 출금해 전달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니, 진행됐다.


갑자기 서술어를 과거형으로 수정하는 이유는 코로나 19 유행으로 인해 형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선택해 무작정 길을 걸어 다니는 두 진행자가 눈에 띄는 일반인을 섭외하던 형식은 코로나 19의 유행과 함께 갈 수 없는 길이 돼버렸다. 시즌3를 맞이하는 지금은 특정 분야의 인물을 미리 섭외해 실내공간에서 인터뷰와 퀴즈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범상치 않은 성취를 이룬 이들의 뒷얘기를 듣고,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전문가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염탐하는 흥미를 전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퀴즈를 내는 예능이 하나 더 생겼구나 생각했지만 보면 볼수록 퀴즈는 거들뿐, 결국 사람에 관한 예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누구도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할 평범한 사람과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던 유쾌함과 엉뚱함에 함께 웃게 되는 낙을 전하기도 했고, 예기치 못한 속 깊은 사연이 전하는 울림을 대면하게 만들었다. <유퀴즈>는 그렇게 평범한 얼굴 너머에 자리한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이자 발견하는 모험과도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손쉽게 휘발되는 웃음에 의지하지 않고, 거창한 설정에 기대지 않고도 귀한 즐거움을 거둘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1월 4일에 방영된 <유퀴즈> 79회에서는 ‘유퀴즈 온더 국과수’ 특집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일하는 다양한 전문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부검을 통해 사인을 판명하는 법치 의학자와 법의조사관을 비롯해 거짓말 탐지 전문가, 유전자과와 화재 감식 전문가 등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범죄나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국과수의 일원을 만나 평소 좀처럼 알 수 없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이 모든 흥미 이후 프로그램의 엔딩과 함께 등장한 한 사람을 향한 애도는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작년 여름, 우리는 당신의 유쾌함에 기대어 잠시 더위를 식혔을 때가 있었습니다. 늦는 게 고민이라던 당신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가슴 깊이 오래도록 존재할 것입니다. 故 박지선(1984~2020) 님을 기억하며.’ 지난 11월 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탄식을 부른 개그맨 박지선은 <유퀴즈>에 처음으로 등장한 연예인이기도 했다. 2019년 7월 23일 한여름에 출연한 그는 평소 <유퀴즈>를 즐겨보는 애시청자임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독립을 하게 됐다는 근황을 전하는 등 특유의 기분 좋은 활기로 웃음을 자아냈다.


당시 새롭게 독립을 하게 된 박지선에게 자기백 찬스를 권하는 조세호에게 박지선은 자기백에 얄궂은 게 너무 많다며 특히 어머니가 치킨 쿠션만 보면 징그럽다고 채널을 돌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얄궂은 치킨 쿠션을 뽑게 된 박지선을 보며 포복절도하던 순간은 이제 역설적이지만 가장 슬픈 순간이 된 것만 같다. 웃음을 전하던 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 밝고 씩씩했던 사람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스며들어있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해맑던 전구 하나가 맥없이 꺼져버린 것만 같아 어둡기 그지없다.


날벼락처럼 날아온 비보에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고, 허무를 느낀 건 뒤늦게 그 빈자리가 지독하게 어둡게 뚫린 구멍이라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힐난하거나 바보로 만들지 않고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웃음을 전하는 이가 결국 만인의 눈물을 대신 닦아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손이 사라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 탓이다. 진정한 코미디는 페이소스에 있다는 말처럼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전하는 웃음은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피부질환으로 인해 한여름에 햇빛을 피하고자 긴 팔 옷을 입고 양산을 써야 했다는 박지선이 긴 팔 트레이닝복을 입고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쓰고 다니며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는 일화를 뒤늦게 듣고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은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박지선의 선택을 통해 형형하게 환기된다. 마치 희극의 종말 같다. 완전히 드리운 비극의 무대를 지켜보는 어둠과 대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뒤늦게나마 세상이 돌보지 못했던 웃음의 업보가 눈물로 돌아오는 풍경은 이렇게 쓸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사람은 살아서 그 명랑하고 씩씩했던 웃음을 떠올리며 잊지 않음으로써 뒤늦게라도 갚아나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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