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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Nov 18. 2020

N잡러 혜민스님의 부캐 라이프

'온앤오프'로 논란이 된 혜민스님의 플렉스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그의 온화한 미소와 인자한 화술에 영합해 이슈를 만들어온 방송관계자들이 비로소 멈추는 타이밍을 망각해버린 건 확실해보였다.

지금은 냉담자가 됐지만 한창 성당을 다니던 중학생 시절에 잠시 신부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장래희망 란에 실제로 적어본 적도 있다. 어릴 적이라 세상을 단순하게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 삶이 대단히 편해 보였다. 신부가 되면 교구에서 살 거처를 마련해주고, 딱히 살아갈 걱정이 없어 보였다. 결혼을 안 하니까 자식도 없어서 여생에 대한 걱정이 없을 것 같았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소소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넘쳐흐르는 삶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을 접은 건 신부님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대단하지 않은 신앙심을 껍데기처럼 두르고 살아간다는 게 그리 마음 편한 일은 아닐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저 성경 구절을 달달 외우는 것만으로 위장할 수 있는 삶이 아닌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철없던 유년시절의 일화를 길어 올린 건 지난 11월 7일에 방영한 tvN <온앤오프> 27회에 출연한 혜민스님 덕분이었다. 사실 본방을 사수한 것도 아니었고, 평소 즐겨보던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연예인의 일상을 마냥 솔직하게 조명한다는 리얼리티 형식을 온전히 믿을만한 순진함이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 위장된 삶을 조명한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기보단 연예인이라 해도 매일매일이 특별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을 위해 당사자가 뭔가 특별한 일을 기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어떤 날을 리얼리티라는 그릇으로 포장해 봐야 하는 아이러니를 짊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즐길 수 있는 이들은 그것을 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고, 그럴 수 없는 이들은 피하면 되는 것이니까, 섭리에 따라 그랬을 뿐이랄까.

그래서 오래간만에 신박하긴 했다. 나도 당연히 스님들은 다 절에만 사는 줄 알았다. 물론 어느 스님들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스님이 절 밖에 집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바닥이 아니라 사무용 의자에 앉아서 불경을 외우는 모습도 신선했지만 AI 스피커로 명상을 하고, 심지어 자신이 서비스하는 명상 앱을 연결해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는 스님의 아침 일과는 너무 21세기라 디지털 부처님이라도 벽면에 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로운 광경이었다. 물론 스님들도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오래된 고정관념 하나가 바사삭 부서지는 느낌을 받은 게 사실이었다.


의문이 생겼다. 그는 왜, 그러니까 혜민 스님은 해당 방송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몰랐던 걸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설파하던 베스트셀러로서의 감각이 정작 본인의 일상성을 판단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진 않았던 걸까?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쫓기는 사람처럼 시곗바늘 보면서 모든 도시인이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니라 해도 대체로 아침출근길부터 고단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현대 도시인들에게 읽히고 먹혔을 것이 분명한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내놓은 스님께서 남산타워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에서 첨단기술의 힘을 빌린 수련과 명상을 하고 백종원의 레시피를 찾아보며 아침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기끼이 반길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혹시 그는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주고자 끝내 자신마저 내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닌 것 같다. 정작 그는 아직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자신의 SNS에 남긴 일종의 사과문을 보자면 그렇다. ‘저의 일들로 지금 이 시간에도 분초를 다투며 산중에서 수행 정진하시는 많은 스님들과 기도하시는 불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절밥도 먹지 않고 사택에 은거하는 스님께서 법당에서 수행 정진하는 일반적인 스님들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던 것처럼 여전히 그는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명확한 대칭을 이루면서도 상당히 대비되는, '혜민스님의 풀소유'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건 깨달음의 경지에서 대중을 교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설득해온 이가 보여준 세속적 물욕 넘치는 삶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세속적인 풍요를 여유롭게 누리는 이가 승복으로 그 모든 욕망을 가린 채 세속적 욕망을 놓으라고 설파하며 돈벌이를 해왔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힐링의 아이콘에서 혹세무민의 아이콘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지만 혜민스님은 여전히 멈출 생각이 별로 없어보인다. 사과문을 올린 SNS 피드에 달린 해시태그 ‘#혜민스님’을 보면 그가 여전히 인플루언서 혹은 셀럽으로서의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렵다. 결국 그가 내려놓는다는 모든 활동이란 것이 수행 정진해야할 스님으로서의 삶과 분리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일찍이 아는 사람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해보인다. 

해당 방송을 보고 혹은 해당 방송에 대한 소식을 듣고 혜민스님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시청자 혹은 대중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체로 속았다는 느낌에 가깝다. 다 떠나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니 상당한 인세를 받을 것이란 예상은 했겠지만 스님이라 하니 나름 수행 기도를 하는 불자의 모습을 기대했을 대중의 시선으로 보기에 그는 승복을 입었을 뿐, 이 세상 누구보다도 세속적인 한 사람에 가까웠다. 법정 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종교인들이 글을 써서 책을 내는 작가가 될 수 있고, 명상 앱에 자신의 목소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 자신의 명상 앱을 홍보해줄 ‘명상하는 연예인’을 직원에게 묻고, 값비싼 맥북프로를 펼쳐놓고 직접 사운드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면 그에게 스님이란 그 모든 일상을 누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정말 의아한 일이다. 혜민스님은 정말 <온앤오프>를 통해 자신의 집을 공개하는 것이 별 문제가 안될 거라 생각했던 걸까? 어쩌면 그건 이미 몇 차례 방송에 출연해서 세속적 행위를 노출했음에도 크게 지탄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도 괜찮을 것이라 방심한 것 아닐까. 이를테면 지식이나 관점을 전하는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냉장고를 부탁해>나 <내 방 안내서>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셰프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만든 음식 맛을 보고, 해외여행을 즐기며 시장에서 두 손 가득 장보는 모습을 노출해도 별 탈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로서 SNS에 셀카 올리기를 즐기는 그의 스웨그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 플렉스는 괜찮다고 느꼈던 걸까. 그러니까 부처를 믿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처핸썹을 즐기는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혹은 이제라도 알아버린 걸까. 무엇보다도 그의 온화한 미소와 인자한 화술에 영합해 이슈를 만들어온 방송관계자들이 비로소 멈추는 타이밍을 망각해버린 건 확실해보였다.


궁극적으로 가장 의문스러운 물음표는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이 방송이 전파를 타면 만인의 호감을 살거라 생각하고 있었을까?’라는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논란이 돼도 좋다는 심산이었을까? 전자라면 무능하고, 후자라면 비열하다. 물론 모를 일이다. 리얼리티 예능은 거들뿐, 출연자의 자질을 사회적으로 검증하겠다는 대단한 야심을 숨겨둔 것일지도. 어쨌든 모든 활동을 내려놓겠다고 한 혜민스님은 그에 관한 온갖 구설수를 뒤에 두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부족했던 모습을 돌아보겠다고도 했다. 그런 그의 진심을 전한 SNS 계정에는 그가 쓴 베스트셀러 목록들과 자신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에서 서비스하는 명상 힐링앱에 접속할 수 있는 웹사이트 주소가 소개돼있다. 아무래도 그의 부캐 라이프는 쉽게 끝나지 않을 거 같다. 그리고 퍼뜩 떠오르는 의문들, 이 시대의 진정한 N잡러 생활을 즐기던 그에게 스님이란 본캐일까, 부캐일까? 그리고 현각스님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참으로 부처님 입장이 궁금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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