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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Nov 25. 2020

'산후조리원' 그렇게 엄마가 됐다

엄마에 대한 유쾌하고 속 깊은 고찰이 담긴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보고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때 모성애라는 것이 자연처럼 주어지는 것이라 여긴 시절이 있었다. 너무 어려서 뭘 몰랐던 것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믿는 것을 따라갔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기도 하다. 엄마란 애초에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믿어버린 세월이 있었다. 아직 부모가 된 적이 없고, 될 생각도 없어서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이제 그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누구나 다 부모가 될 준비가 돼서 부모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타고난 모성애라는 것이 갑자기 반짝하고 터져 나와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제 알고 있다.

TV를 통해 처음 <산후조리원> 예고편을 봤을 때에는 이게 무슨 스릴러물인가 잠시 생각했다. 내 탓이 아니다. 첫 예고편은 마치 스릴러 미스터리 같은 콘셉트로 불길한 MSG를 팍팍 쳐놓은 결과물이었으니까. 그리고 <산후조리원>은 정말 말 그대로 ‘산후조리원’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생활하는 산모들을 비롯해 그 공간에 머무른 이들을 주인공으로 둔 본격 산후조리 드라마였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을 보게 된 덕분에 ‘산후조리’에 막연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산후조리라 함은 아이를 낳은 산모가 푹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이 그렇게 격정적인 스릴의 장이 될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산후조리원>의 마지막화인 8화에서는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비로소 집에서 직접 모든 육아를 시작하게 되는 엄마와 아빠의 고단한 삶이 노출된다.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엄마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가 천국’이라 하는 말을 보며 수긍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갓난아이와 어느 정도 분리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산후조리원에서의 삶이 그나마 편안했다는 것이 실감 난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나마’다. 산후조리원에는 산후조리원 나름의 부침이 있다. 


<산후조리원>의 주인공 현진(엄지원)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다. 능력 있는 전무로 부하직원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서만큼은 좀처럼 기를 펴기 힘든 엄마다. 아이를 낳은 것은 처음이라 당연히 엄마도 처음이라 서툴고 낯설지만 다른 엄마들에 비해 모성애도 떨어지는 것 같아서 늘 고민이다. 일에 대한 열의만큼이나 아이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지 않아 걱정이다. 그래서 종종 다른 엄마들과 부딪히고 갈등한다. 유난히 육아에 호들갑을 떨고 극성인 엄마들 사이에서 엄마 자격 없는 소리를 하는 통에 왕따까지 당하고 꿋꿋이 외길인생을 걸어보려 하나 마음이 바뀐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모유를 수유한다는 건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젖을 물린다는 것은 아이에게 그저 젖을 물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님을 현진은 깨닫는다. 다들 하는 모유수유를 거부하는 건 엄마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일 같은데 도무지 아이는 엄마의 젖을 빨 생각이 없고, 그만큼 주변의 눈총도 심해진다. 엄마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결국 극성이라 생각했던 사랑이 엄마 은정(박하선)을 찾아가 자존심을 버리고 도움을 청한다. 그 와중에 모유수유를 거부하고 유별난 짓을 한다고 여겨지는 이루다(최리)의 등장에 경계심을 품지만 정작 그가 엄마이기 전에 자신으로서의 모습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고 역시 마음을 열게 된다. 


흥미로운 건 <산후조리원>은 극적으로 과장된 갈등과 화해 과정을 그리는 데 그것이 대체로 납득 가능한 공감대를 품게 만든다는 것이다. 단순히 아이를 낳고 키우기의 어려움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된 다양한 엄마들이 경험하는 다채로운 삶의 고민들을 하나씩 지켜보며 엄마가 아닌 개인으로서, 여자로서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법을 익히고 깨닫는 과정에 함께 공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결국 엄마로서 자신의 아이를 위해 삶의 한 자리를 비워가는 필연적 선택 역시 간과하지 않는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결국 엄마가 된다는 건 엄마로서 완벽한 모성을 갖추는 길이 아니라 엄마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삶의 균형점을 찾아내야 하는 발버둥에 가깝다는 것을 공감하게 만든다. 


엄마로서 인정받고 싶지만 여자로서도 사랑받고 싶고, 개인으로서도 성공하고 싶고, 자신으로서도 인정받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산후조리원>은 깨닫게 만든다. 모성애라는 신화에 갇혀서 자신을 온전히 돌보지 못하는 것 역시 결국 엄마로서의 길이 아닐지 모른다는 수긍을 권한다. 모유를 먹이기 힘들 때는 분유를 먹일 수도 있고, 아이가 우는 이유를 당장 잘 몰라도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알아갈 수 있는 법임을 적당한 웃음과 눈물을 배합해 마음에 물린다. 결국 엄마도, 아빠도 개인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은 아이 하나를 키운다는 게 그만큼 보통 일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의 책임은 결국 어느 부모들만의 문제만은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건강하게 잘 자란 아이가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비단 부모만의 책무만은 아닌 것이다.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모두가 함께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지금처럼 저출산 문제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육아의 짐을 덜어주는 대책을 면밀히 세우지 못한다는 건 치명적이다. 더 나아가 미혼여성이 시험관 시술을 할 수도 없고, 정자 기증도 받을 수 없다는 법이 명문화된 사회에서 저출산 문제를 고민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 아닐까. 


<산후조리원>은 엄마라는 미명 하에 가려진 여성들의 삶을 유쾌하고 진솔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마음 편하게 속 깊은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드라마다. 종종 다소 과장된 연출로 감정을 고양시키지만 그런 과정을 단점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만끽할 수 있는 재미로 성취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무엇보다도 엄지원, 박하선, 최리, 장혜진을 비롯한 산후조리원 엄마가 된 배우들의 열연은 <산후조리원>에 생생한 현실감을 더하는 진면목과 같다. 8부작이라는 짧은 호흡으로 완성된 드라마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도 꽉 찬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게 엄마가 된다는 것, 결코 완벽하진 않아도 그래도 엄마로서 안간힘을 쓴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모두 다 이미 그 그늘 아래서 자란 존재다. 엄마라는 그늘에서. 그녀가 드리운 안간힘을 통해.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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