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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Dec 02. 2020

'위 아 후 위 아' 나 그리고 우리라는 물음표

물음표의 경계에 선 아이들의 성장통 '위 아 후 위 아'에 관하여.

뉴욕에서 이탈리아 북부 도시 키오자로 오게 된 소년 프레이저(잭 딜런 그레이저)는 여러 면에서 주목받는 존재다. 남다른 패션감각을 가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가 머무는 곳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프레이저가 뉴욕에서 키오자로 날아온 건 그곳에 미군이 주둔하는 기지가 있기 때문이고, 엄마가 미군 기지를 지휘하는 사령관으로 전출을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레이저는 아빠 대신 엄마만 둘을 가진 아들이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미군 기지를 지휘하는 사령관의 아들이자 레즈비언 커플을 부모로 둔 14세 소년은 말하지 않아도 이름을 아는 이방인들에게 포위된 셈이다.


프레이저는 자기 주변을 신경 쓰면서도 결국에는 멋대로 행동한다. 새롭게 만난 친구들 앞에서는 주눅 들어있는 듯하면서도 딱히 억눌려 다니는 것 같지도 않다. 주도하지는 않지만 끌려다니는 것 같진 않다. 엄밀히 말하면 함께 몰려다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소울메이트라 부를만한 친구 하나를 만난다. 항상 속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틀린(조단 크리스틴 시먼)은 처음 프레이저를 경계했지만 자신의 비밀 하나를 들킨 후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도 무방한 친구임을 깨닫고 절친이 된다. 그리고 프레이저와 케이틀린을 비롯해 이탈리아 미군기지에서 살아가는 미국 아이들의 고민이 매일 같이 이어진다. 자신이 놓인 수많은 경계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해 저마다 크고 작은 방황을 거듭한다.

왓챠플레이에서 공개한 <위 아 후 위 아>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서스페리아>를 연출한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연출한 8부작 미니시리즈다. 미국의 유명 케이블 방송사 HBO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올해 9월부터 11월 사이에 방영된 작품이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품답게 이탈리아를 배경에 둔 작품이자 다양한 성적 취향이 묘사된다. 그리고 이탈리아 내 미군기지라는 특수한 환경은 이 작품이 두른 풍경과 정서를 다층적이고 다각도로 이해하고 들여다보게 만드는 동시에 이탈리아 미군기지의 병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10대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그런 의도를 대변한다.


“그 환경의 특수함과 협소함을 보편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었다. 경직된 세계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청년을 그리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군사시설이란 지켜야 할 규율이 분명한 장소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인의 세계만큼이나 보편적인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말처럼 <위 아 후 위 아>는 군기지라는 환경의 특이성을 독특한 병풍처럼 활용하는 작품이다. 마치 10대를 주인공으로 둔 틴에이저 무비에 새로운 개성을 불어넣기 위해 마련된 무대에 가깝다.


해외로 전출된 부모와 함께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게 된 미군기자 내의 10대 청소년들은 사실상 작은 미국이나 다름없는 환경에 잘 적응해 살아가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정착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매 순간 고민한다. 새로운 곳에서 친구를 사귄다 해도 부모님이 전출을 가게 되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니지만 무언가가 결정되는 그 시기에 세상이 규정하는 자기 자신과 스스로가 원하는 자기 자신의 괴리를 극복해야 한다. 사랑과 우정을 두고 벌이는 관계의 고민 속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성역할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온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하이틴 드라마의 야심에만 멈춰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위 아 후 위 아>는 구체적으로 시간의 연대를 드러내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는 해당 시대가 언제인지 매우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특정 사건이 묘사된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 출마하고, 끝내 당선돼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바로 그 시간이 <위 아 후 위 아>의 시간대와 평행하게 나열된다. 이는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로 확대된다.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찾아오는 어떤 변화는 한 시대의 종말과 새 시대의 시작이 서로 맞붙어있는 시간임에도 지층처럼 구분되는 전후의 세계로 분리되는 감각으로 다가온다는 아이러니를 온전히 전이한다.


“나는 관객이 동시대를 인위적인 감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게 싫다. 그래서 4년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 감각을 부여하고 그 시간 안에서 극을 통제하기로 했다. 동시에 인간의 삶을 전후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매혹적이었다. 이전에는 화해를 외치던 나라가 그 이후로는 분열을 거듭한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이 이뤄지더니 갑자기 잔혹한 현실이 도래한다. 그런 종류의 전후 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케이틀린과 프레이저의 사랑은 현재 미국 정치판의 잔혹한 현실을 위한 해독제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바로 그 어려운 대통령부터 시작해볼 수 없을까?”

루카 구아다니노는 오바마와 트럼프로 이어지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거대한 아이러니의 흐름 속으로 휘말려들어가는 시대상을 <위 아 후 위 아>로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전후 상황이 연결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통해 역설적이지만 인간성의 다양함과 그 내면의 다채로움을 의식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 각자에게는 너무나 다양한 내면이 있고, 그만큼 우리라는 존재는 그 다양함을 통해 이해될 수밖에 없는 무질서이자 무정형의 자아로서 온전해진다는 것을, 그 수많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위 아 후 위 아>라는 그 제목의 명확한 의미를 멀리 돌아 끝내 짚어낸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는 규정과 평가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포용과 인정이어야 한다는 것. 다만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인정하기 위해선 끝내 우리가 되는 나에 대한 번민과 고뇌가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 <위 아 후 위 아>는 바로 그 계절에 관한 드라마다.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기까지 선행돼야 하는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건너 지금이 된다 해도 어쩌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고민이라 해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어떤 시절은 때론 창백해도 끝내 푸르다. 젊은 날에 마주한 나라는 불완전함이 모여 이루는 우리라는 세계의 아름다움. <위 아 후 위 아>는 그 제목처럼 뚜렷하게 찍기 힘들어서 물음표처럼 와 닿는 성장통의 경계를 지나는 수많은 자화상에 관한 시간이다. 궁극의 한 점으로 수렴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물음표의 여정, 불완전하기에 가능한 무언가가 있는 어느 계절에 관한 송가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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