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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06. 2021

정인아 미안해

'그것이 알고 싶다'로 알게된 정인이의 죽음이 알린 것들에 대하여

지난 10월 13일 생후 16개월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실려왔다. 심정지 상태로 실려온 아이의 심장은 긴급 조치 끝에 잠시 뛰었지만 다시 멈췄고, 결국 세 번째 심정지 끝에 아이는 사망했다. 사경을 헤매는 아이의 어머니는 의료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냐’며 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응급전문의는 예상 밖의 의견을 전했다. “양엄마가 너무 슬퍼하니까 ‘진짜 악마구나’라고 생각한 의료진도 있었다.” 의료진이 사망한 아이의 엄마를 악마라고 여긴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1월 2일에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 1244회에서는 ‘정인이는 왜 죽었나? -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라는 주제로 한 아이의 죽음을 다뤘다.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응급의료센터에서 사망했다던 그 아이가 바로 정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정인이의 사인이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라 발표했다. 그리고 외력의 주체라고 의심할만한 정황은 ‘우리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냐’며 소리를 내어 울었다던 정인이의 입양모 장 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현재 장 씨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양부 안 씨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황이다. 


긴급 조치로 정인이의 심정지를 살린 응급전문의에 따르면 CT촬영으로 본 정인이의 뱃속이 피로 가득했다고 한다. 심각한 장기 손상으로 인한 출혈이 심한 탓이었다. 그 외에도 몸 곳곳에서 발견되는 골절상과 타박상의 흔적은 정인이가 지속적으로 심각한 학대를 당해왔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만드는 증거였다. 게다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부진하고 왜소한 체격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학대를 당한 작은 몸에 그 증거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러니까 생후 16개월에 불과한 어린아이가 입양 후 271일 동안 양모의 심각한 학대 속에서 살아가다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정인이의 사망에 관한 의혹이 방영된 이후로 수많은 이들의 슬픔과 분노가 밀려왔다. SNS에서는 ‘정인아 미안해’라는 애도의 문구를 들고 미처 돌보지 못한 어린아이의 고통을 뒤늦게 통감하는 이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까지 추모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에 학대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운동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정인이의 아동 학대 혐의를 세 차례나 신고받고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아동보호기관과 경찰 관계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등 정인이의 죽음을 방조한 이들에 대한 분노가 들불처럼 번져가는 중이다. 


정인이가 사망한 지난 10월 이후로 온라인 상에서는 해당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더러 존재했다. 관련 내용이 방송에서 공개된 것도 처음이 아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244화에서 인용하기도 한, 지난 2020년 10월 23일에 방영된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정인이 양부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었다. 다만 <그것이 알고 싶다>만큼의 관심을 얻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기 전부터 이 사건은 끔찍하고 심각한 일이었다. 만약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인이의 죽음을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면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지금의 애도와 분노는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 1244회는 해당 프로그램의 사회적 필요성을 스스로 입증해낸 사례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모든 애도와 분노가 휘발되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지난 2019년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4만 1389여 건에 이르는데 이중 최종 학대 판단 건수는 3만 4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4년과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아동학대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4년에는 14명이었던 것이 2019년에는 42명으로 정확히 세 배 증가했다. 그리고 재학대 발생 건수는 2014년에는 1027건이었고, 2019년에는 3431건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아동학대 행위자 유형에 따르면 매년마다 부모의 비율이 80% 수준으로 압도적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지옥은 가장 가까이 있는 부모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이 사회의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정인이가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인이의 죽음을 향한 애도와 살인을 저지르고 방조한 이들에 대한 분노는 아동학대라는 문제를 보다 너른 관심으로 환기시키는 방아쇠가 돼야 하는 건 그래서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자료에서 볼 수 있듯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주된 장소는 바로 아이가 거주하는 집이며 아동학대의 주범은 바로 아이의 부모다.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영역과 존재가 어떤 아이들에게는 가장 위험천만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가정에서 일상처럼 반복되는 음흉하고 악랄한 학대를 감지하기 위해선 그만큼 예민하고 진지한 관심이 필요하다. 또 한 명의 아이를 보내고 애도할 시간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지난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어린 의뢰인>은 실화를 바탕에 둔 작품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도 알려진 바 있는, 2013년에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계모가 의붓딸을 살해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의 진실은 병으로 숨진 어린 딸의 장례 절차를 문의하는 양모의 상담을 받던 지역아동센터의 사회복지사의 신고를 통해 밝혀졌다. 그리고 경찰 조사와 부검 결과 여덟 살 소녀의 사인은 장기 파열이었으며 첫째 딸인 열두 살 언니가 가해자로 지목됐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첫째가 동생으로부터 인형을 뺏기지 않으려고 주먹으로 다섯 번을 치고, 발로 한 번 차니까 동생이 죽었다는 자백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실이 아니었다.


자매의 고모는 아버지가 재혼한 이후 아이들이 계모에게 학대를 받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웃에서도, 지역아동센터와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학대를 당하는 정황을 인지하고 있었고 구체적인 증거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그리고 소년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된 아이는 계모가 수차례 발로 밟아 동생을 살해했고 자신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진술했다. 그리고 계모의 끔찍한 학대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해당 내용이 궁금하다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서 찾아보시길 권한다. 지독하게 끔찍한 내용들이라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기분을 체감할 수 있으니 주의를 요망한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잠언은 작금의 시대에서도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절실할지도 모른다. 정인이의 죽음 이전에도 학대로 죽은 아이는 존재했다. 이후에도 존재할지 모를 일이다. 아이들의 끔찍한 죽음을 목도한 애도와 그 너머로 드러난 악마 같은 존재를 향한 분노가 필요한 건 결국 또 한 번 정인이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가 없는 사회를 향한 염원으로 가닿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학대해 죽이고 그 죽음을 방조한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건 이 커다란 공분을 태울 땔감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결국 지금 이 사회 어딘가에서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부모 혹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작동하는 시스템을 보다 면밀히 손봐달라고, 더욱 강력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정인이에게는 세 번의 골든타임이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소아과 선생님의 신고로 정인이의 학대 정황을 알리고 학대 가해자로 추정되는 양부모와 분리해 아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세 번이나 있었다. 사실 그보다 많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애도와 분노로 가닿기 전에 적절한 염려와 걱정으로 살필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역시 잘 알다시피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화재경보를 울린다고 불이 꺼지는 게 아니듯, 경고를 보내도 신호를 읽지 않으면 재난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정인이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한 아이의 삶을 지킬만한 실력이 없다는 것을 다 함께 체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참담한 비극이다. 어린아이의 미래는커녕 현재를 책임질 수 없는 시스템을 방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허망함을 쥐게 만든다. 


지난 1월 5일 행정안전부에서는 2020년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를 밑도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인구감소가 일어난 것이다. 이는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나 다름없다. 그런 사회에서 학대받는 아이의 죽음이란 그야말로 상실의 시간이다. 일말의 미래도 기대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고, 미래의 방관자가 되겠다는 우리 스스로의 선언이나 다름없다. 정인이의 죽음을 향한 애도와 분노는 이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염원과 각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동하지 않는 버튼을 누르던 파수꾼마저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시스템이 방치돼선 안 된다는 것을 정인이의 이름을 걸고 주장해야 한다. 소리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또 하나의 죽음을 막고, 또 하나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품고 있는 2어절의 다짐을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 정인아 미안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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