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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29. 2021

'소울'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창의적인

픽사가 여전히 진화하는 창작 집단임을 증명하는 영화 '소울'에 대하여.

픽사의 15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2015년 한 해에만 8억 6750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고, 이듬해엔 오스카 트로피까지 차지했다. <몬스터 주식회사>와 <업>을 연출한 픽사의 브레인 피트 닥터는 또 한 번 픽사의 최고작이라 불릴만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생각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만한 경험도 없을 텐데 왜 아직도 내 인생이 완전히 채워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걸까? 해결하지 못한 게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는 걸까?’ 

픽사의 23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소울>은 바로 그 물음표를 구체화한 작품이다. 명랑한 성격의 열한 살짜리 딸이 갑자기 말수가 줄어든 것을 본 피트 닥터의 고민으로부터 착안한 <인사이드 아웃>과 마찬가지로 <소울> 역시 자기 삶에서 발견한 물음표를 심어 키워낸 결실인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삶에서 발전시킨 가장 창의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이 다양한 감정 가운데 간과되던 슬픔의 가치를 발굴하는 작품이었던 것처럼 <소울> 역시 인생에서 손쉽게 간과하는 어떤 소중함을 돌아보고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뉴욕의 재즈 피아니스트다. 보다 정확하게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꿈꾸는 남자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음악에 별반 관심이 없는 어린 학생들이다. 그는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파트타임 교사로 일하며 밥벌이를 하는 신세다. 나름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친 덕분인지 정규교사로 채용돼서 건강보험과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아들이 음악을 한다는 사실이 늘 못마땅했던 어머니의 환대를 받지만 정작 당사자 마음은 심란하다. 그리고 그 심란한 마음을 들뜨게 만들 전화가 걸려온다.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재즈 클럽 공연에서 피아노 세션을 맡게 될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소울>이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작품의 주요 배경인 사후세계의 영혼을 직시하는 제목이기도 하지만 재즈 음악에서 소위 말하는 소울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활용하는 소재를 포괄하는 흥미를 제공하는 제목처럼 여겨지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짧은 단어가 품고 있는 깨달음의 너비가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소울>은 죽은 자로부터 분리된 영혼의 존재를 영화적으로 관찰하는 재미만큼이나 영혼을 담은 육체로 맞이하는 매일의 감각을 깨우고 보다 생생하게 체감하는 울림이 상당한 영화다. 우리가 인식하는 영혼이란 죽음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내적 존재이겠지만 ‘영혼을 느낀다’는 산자들의 말처럼 삶에서도 종종 느끼게 되는 무언가로서 다가오는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울>이 말하는 ‘소울’ 즉 영혼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그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자아를 지칭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소울>은 결국 나라는 존재가 지나치기만 했던 나라는 세계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방치했던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후세계에 발이 묶인 영혼이 된 조 가드너는 지구에 남아있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 그토록 고대하던 꿈의 무대에 서고자 한다.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나는데 필요한 불꽃 하나를 채우지 못하고 수많은 멘토를 좌절시킨 이력이 있는 영혼 '22'는 조 가드너에게 조력하며 본의 아니게 그의 몸을 통해 지구에서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오직 꿈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던 인간과 지구에서 살아갈 목적을 찾을 의지가 없던 영혼이 카운터 파트너가 되어 서로에게 생의 변곡점이 되는 발견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과정은 아이러니해서 더욱 감동적이다. 성장하는 존재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마음을 울린다.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까지, 독창적인 세계관 속에서 보편적인 울림을 전해온 픽사의 최고 브레인 피트 닥터가 만들어낸 <소울>은 지금까지 픽사가 증명해온 가치를 또 한 번 갱신한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어진 ‘머나먼 저 세상(The great beyond)’과 지구로 내려가기 전의 영혼을 돌보는 ‘유 세미나’를 비롯한 사후 세계 그리고 피카소의 큐비즘을 연상시키는 입체적인 선으로 구현된 사후세계의 관리자 제리와 테리 등 독창적인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이에 생기를 불어넣는 재능은 <소울>을 통해 또 한 번 진화한 인상이다. 작품을 이루는 세계관의 요소를 넘어 하나의 예술적 성취라 여겨도 좋을 만한 놀라운 성취가 작품 곳곳에서 느껴진다. <소울>은 기술적 완성도를 예술적 영감으로 끌어올리는 픽사의 정수가 여전히 창작의 원천임을 증명하는 최신의 결과다. 


<소울>에서 음악은 영화적인 요소를 넘어 주요한 캐릭터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커스 로스 듀오가 만들어낸 스코어는 사후세계의 신비감을 고양시키면서도 극 전반에 따듯한 온기를 실어 나르는 파이프라인과도 같다. 트렌트 레즈너는 ‘지구의 것이 아닌 듯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로 “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기구를 활용해 소리를 합성하면서도 그 세계에 걸맞은 소리 구조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감정적으로 옳게 느껴지는 것들을 보는데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영롱하게 반짝이듯 은은하게 퍼지거나 리드미컬한 울림을 잔잔하게 쌓아가는 음악은 <소울>의 핵심 캐릭터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즈 신의 신예 거장으로 꼽히는 존 바티스티가 리드한 재즈 스코어와 트렌트 레즈너, 아티커스 로스의 스코어가 이루는 대비는 사후세계와 뉴욕이라는 공간의 대비를 사운드의 대비감으로 확장하며 시각과 청각이 맞물린 공감각적 묘미를 선사한다. 


본래 조 가드너로 정착하기 전까지 그 자리를 차지한 캐릭터는 주인공으로 고려되는 대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염두에 둔 영혼 22의 길잡이 정도 역할을 하는 인물 정도로 구상했으며 흑인이 아닌 백인이었고, 직업도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닌 배우나 과학자였다. 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더 강하게 당길만한 직업군을 다시 고려하게 됐고 그 결과 재즈 뮤지션이 보다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그에 걸맞은 흑인 캐릭터를 구상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파트타임 작가로 고용했던 캠프 파워스의 자문을 받으며 캐릭터를 세공해나갔다. 그리고 점차 캐릭터의 비중이 커지면서 캠프 파워스의 역할도 보다 중요해졌고, 그런 중요성을 존중해 공동감독의 지위를 부여했다.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픽사 최초의 흑인 주인공이며, 캠프 파워스는 픽사의 크레딧에 처음 이름을 올린 흑인 감독이다. 

“픽사가 단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보기 드문 집단이라고 느꼈다. <소울>이 바로 그 노력의 증거다.” 캠프 파워스의 말처럼 픽사는, 피트 닥터는 <소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시행착오를 새로운 발견과 발전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로 삼았다. 그리고 피트 닥터는 <소울>에서 지금껏 수많은 애니메이션들이 해왔던 실수를 <소울>에서만큼은 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유색인종 캐릭터를 동물로 변화시키거나 그들의 특성을 반영해 의인화한 동물 캐릭터를 그리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이전까지의 관습을 철저히 밀어내고자 했다. <소울>의 유 세미나에 머무는 영혼들이 어떠한 인격도 갖추지 않은 무의 성질로 그려지는 것도 그런 성찰의 결과다. 그러니까 매너가 남자를 만들고, 영화도 만든다. 참고로 <소울>은 피트 닥터가 픽사의 창작 부문 최고책임자로 부임한 이후애 만든 첫 작품이기도 하다. <소울>은 전임자였던 존 래세터의 그림자를 완전히 잊게 만든 작품이란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다.


누군가는 꿈을 먹고 산다고 했지만 가끔씩 어떤 꿈은 삶을 잡아먹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꿈을 이루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 믿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인생을 살고 그런 이들의 일상이 모여 세계의 하루가 흘러간다. 결국 위대한 악보를 완성하는 삶만큼이나 음표를 따라가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결국 산다는 건 종착이 아닌 진행이기에, 그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잊지 않는 것이 어쩌면 가장 성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위해 위대해지고자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세상을 둘러보게 만든다. 그렇게 영혼을 맑게 울린다. 그 소리를 따라가고 싶게 만든다. <소울>은 그런 영화다. 


(네이버 영화판을 운영하는 '씨네플레이'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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