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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21. 2021

히치콕의 후예들

알프레드 히치콕을 추종한 후대의 영화 거장들에 대하여.

서스펜스의 거장, 스릴러의 아버지, 거창한 수사로 일컬어지는 히치콕은 후대의 거장 감독들에게 숭배와 극복의 대상이었다. 히치콕은 서스펜스를 지배하는 스타일이며, 규칙이고, 철학으로 군림한다. 히치콕을 추종한, 히치콕의 후예들을 소개한다. 


히치콕의 영향력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1순위로 언급되는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는 <드레스드 투 킬>(1980)을 통해 히치콕의 양자가 됐다. 너무나도 유명한 <싸이코>(1960)의 욕실 살해 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드레스드 투 킬>의 관능적인 도입부 샤워신은 드 팔마가 히치콕에게 얼마나 매료됐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드 팔마는 스스로의 입으로 ‘히치콕의 영향력’을 공언함으로써 그 명예를 공고히 다지고자 했다. 


그 후로도 <필사의 추적>(1981)의 우스꽝스러운 샤워신으로 <싸이코>의 샤워신을 다시 한번 재해석한 뒤, <이창>(1954)과 <현기증>(1959)을 아우르는 <침실의 표적>을 통해 히치콕의 영향력을 온전히 전시해낸다. 그 외에도 <그리팅>(1968)과 <시스터즈>(1973) 등의 작품으로 히치콕의 ‘관음증’과 ‘현기증’을 흠모했던 드 팔마는 히치콕의 후광을 통해 영예를 얻었으나 히치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방범으로 저평가당했고, 스스로도 히치콕과의 비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일 지경이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불행은 ‘히치콕을 너무 많이 안 사나이’였다는 점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브라이언 드 팔마만큼이나 동시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감독 마틴 스콜세즈는 보다 영리한 방식으로 히치콕을 흠모했다. 드 팔마가 히치콕의 명장면을 재해석하며 모방의 오명을 썼던 것과 달리 마틴 스콜세즈는 히치콕을 참고하는 방식으로서 그의 장기를 자신의 영화에 녹여냈다. <택시 드라이버>(1976)의 오프닝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하는 트래비스의 눈동자 클로즈업은 <현기증>의 오프닝 시퀀스의 확실한 인용이다. 히치콕의 <오인>(1956)을 연상시키는 카메라 기교 등 <택시 드라이버>는 히치콕을 참고한 마틴 스콜세즈의 전리품에 가깝다. 


히치콕의 걸작 대부분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버나드 허만을 삼고초려 끝에 음악감독으로 모신 것도 우연이 아니다. <택시 드라이버>는 결국 버나드 허만이 마지막으로 영화음악을 만든, 그의 유작이 됐다. 심지어 히치콕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오프닝 타이틀 디자이너를 만들었던 솔 바스에게 자신의 영화를 맡겼다. <좋은 친구들>(1990)부터 <카지노>(1995)까지 솔 바스가 디자인한 오프닝 타이틀이 등장한다. 그리고 <카지노>의 오프닝 타이틀은 솔 바스의 유작이 됐다. 히치콕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두 사람이 스콜세즈의 영화를 통해 마지막 인장을 남긴 셈이다.

마틴 스콜세지와 솔 바스
알프레드 히치콕과 버나드 허먼

할리우드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히치콕의 양자를 자처한다. 히치콕은 <현기증>에서 주인공의 고소공포증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자 줌렌즈를 안으로 당겨 ‘줌 아웃’ 시킨 후 카메라는 시야 방향으로 이동하는 ‘트랙 인’을 함께 구사하는 ‘줌 아웃 트랙 인’ 방식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심리적 공포감을 시각적으로 체화하게 만드는 방식으로서 기술적 효과를 고안한 명장면으로 회자되는데 스필버그는 <죠스>(1978)에서 이를 해변가의 상어를 처음 목격하는 장면에서 활용하며 바다 멀리 떨어진 백상어가 순간적으로 눈 앞에 쑥 나타나는 공포감을 주입한다. 동시에 <죠스>는 히치콕이 연출한 <새>의 해양 버전이라는 극찬을 얻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J.D. 카루소 감독의 영화 <디스터비아>(2007)와 <이글 아이>(2008)는 노골적으로 히치콕의 <이창>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를 차용한 작품이다. 하지만 히치콕의 두 작품이 잘 볶은 원두커피처럼 중후한 향을 낸다면 스필버그가 제작한 두 작품은 커피우유처럼 가향된 단맛을 뽐내는 것에 불과하다. 동시에 스필버그는 <이창>의 판권 소유자로부터 도용 혐의로 피소당하기까지 했다. 이는 히치콕과의 만남을 간청한 스필버그가 ‘물고기를 만든 소년’이란 비하와 함께 만남을 거절당한 일화만큼이나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알프레드 히치콕

그 외에도 히치콕의 영향을 받은 감독은 시대와 국경, 장르를 초월한다. 히치콕은 서스펜스를 증폭시키는 트릭에 가까운 맥거핀 이론의 창시자로 꼽히는데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1995)는 바로 그런 맥거핀 이론을 온전히 영화적 결과로 반영한 듯한 작품이다. 현존하는 대작가 스티븐 킹은 ‘좀비 영화의 아버지’로 꼽히는 조지 로메로의 <모터사이클의 기사들>(1981)에 ‘대형 샌드위치를 먹는 남자’로 카메오 출연하며 자신의 영화에서 늘 카메오 출연을 자처한 히치콕의 관습을 오마주 한다. 


히치콕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되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는 칸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됐을 당시 히치콕의 <현기증>에 비견되며 호평을 받았다. 오명을 쓴 남자, 관음증, 미묘하게 엇물려 돌아가는 내러티브 그리고 맥거핀을 이루는 스토리까지, 곳곳에서 히치콕의 영향력이 감지된다. 히치콕에 비견되는 또 다른 한국의 거장 박찬욱은 대학생 시절 <현기증>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길 결심했다고 밝힐 정도로 히치콕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바 있다. 특히 박찬욱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13)의 스토리는 히치콕의 <의혹의 그림자>(1943)를 그대로 인용한 결과나 다름없다.


구스 반 산트가 연출한 <싸이코>(1998)는 히치콕의 <싸이코>를 숏 바이 숏으로 필사하듯 리메이크한 결과물이지만 원작과 대조를 이룰 정도로 감흥이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다. 역설적이지만 이는 ‘히치콕의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자기희생적인 방식으로 증명한 결과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구스 반 산트야말로 진정한 히치콕의 추종자, 즉 완벽한 ‘히치코키언(Hitchcockian)’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삼성생명에서 발행하는 금융,경제 정보지 <WEALTH> 매거진 2월호에 실린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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