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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Feb 10. 2021

설맞이 추천 영화 5

제대로 설 맞은 당신을 위한 극약 처방 영화 5편.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명절이라 해서 모두가 고향에 내려가고 싶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명절이 아니면 볼 일 없는 친척들로부터 결혼계획 여부 같은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해서 아예 감각이 없어질 지경인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그냥 휴가라 생각하고 빨간 날 내내 혼자 푹 쉬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에도 고향에는 내려가야 하는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를 소개해주고 싶다.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처럼 살아가다 급작스러운 사고로 무인도에 갇힌다. 아무도 모른다. 그가 무인도에 갇혀있다는 걸. 탈출할 방도도 없다. 결국 4년여의 시간 동안 그가 의지하는 건 대답이 없는 배구공 윌슨뿐이다. 그러니까 고독하고 싶을 땐 끔찍한 고독만한 게 없다. 무인도에 갇혀 배구공에 의지할 정도로 고독해진 남자의 기구한 사연과 마주하다 보면 명절의 번뇌도 생각보다 즐길만한 것이라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만날 때마다 화기애애한 가족도 있겠지만 이번만큼은 기분 좋게 만나자고 다짐해도 끝내 얼굴을 붉히며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는 가족도 있을 것이다.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없다고 느끼는 가족과의 재회가 매번 두렵다면 <미스 리틀 선샤인>의 콩가루 가족과 좌충우돌 화합 여행을 떠나보자. 육두문자 섞인 식단 투정을 내뱉는 할아버지, 커밍아웃과 자살 경험담을 털어놓는 외삼촌, 이를 비꼬며 완강한 흑백논리로 대화를 경직시키는 아버지, 염세주의적인 태도로 묵언수행 중인 아들, 소녀 미인 선발대회에 집착하는 어린 딸까지, 식탁에서부터 콩가루 풀풀 날리는 이 가족이 어린 딸의 대회 출전을 위해 다 함께 소형 버스에 몸을 싣고 미국을 횡단한다. 그리고 갖은 고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콩가루처럼 흩날릴 줄 알았던 가족들이 차진 반죽처럼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당신도 가족이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물론 약효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토믹 블론드 Atomic Blonde

설날이면 꼬박꼬박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 장만하느라 허리가 휘고, 그놈의 전 부치느라 어깨가 나갈 지경인데 음식 타박이나 하고 있는 남자들 때문에 성질이 뻗쳐서 화끈하게 때려 부수는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면 <아토믹 블론드>가 어떨까. 각국의 스파이들이 갖은 첩보전을 펼치고 있는 냉전시대의 베를린에 긴급하게 작전 수행차 급파된 영국의 스파이 로레인(샤를리즈 테론)은 동독과 서독을 오가며 임무를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음모에 휘말리고, 정체불명의 상대로부터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아토믹 블론드>는 <존 윅>을 연출한 데이비드 레이치가 연출한 여성 원톱 스파이 액션물이다. 실전적인 타격감이 상당하게 느껴지는 샤를리즈 테론의 박력 있는 액션 신을 보면 전 부치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갈지도 모른다. 물론 실생활에서 사용 혹은 응용은 금물이다. 명절에 뉴스 출연할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많이 먹었다. 그래도 당장 다이어트 생각하기 전에 일단 즐기시라. 어차피 입에 들어온 음식은 맛있게 씹어 삼켜야 한다. 그리고 죄책감 금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그런 당신을 위해 내려주는 면죄부 같은 영화다. 뉴욕 맨해튼에서 모든 것이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던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문득 진짜 자신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결국 이탈리아로, 인도로, 발리로 무작정 떠난다. 그리고 맘껏 먹고, 성실하게 기도하고, 뜨겁게 사랑한다. 그러니까 피할 수 없을 때가 아니라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거다. 결국 먼 미래의 안정을 위해 지금의 욕망을 내려놓는 삶도 좋은 선택지가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의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도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줄리아 로버츠의 함박웃음으로 알려주는 영화라는 것. 여행을 기약하기 힘든 요즘 여행 기분 나는 영화라는 사실은 덤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매번 돌아오는 연휴의 시작은 반갑지만 끝은 허망하다. 빨간 날은 다 끝났다. 출근 이즈 커밍. 거짓말처럼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 싶겠지만 허망함에 제곱근을 더할 생각을 더할 바에야 재미있는 영화나 한 편 보고 일찍 자는 게 낫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세진(정유미)은 반지하 방에서 근근이 버티며 방에도, 삶에도 볕 들 날을 기다리는 취업준비생이다. 언젠가 반듯한 직장을 구해서 삼류 건달 동철(박중훈)의 이웃 신세를 면하고 싶다. 그렇게 지질한 삼류 건달과 짠한 취업준비생은 서로 결이 다른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서로 예기치 않은 교감을 형성하며 연인 같은 연인 아닌 연인 같은 관계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 여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절박한 심정으로 면접에 임하는 세진의 모습을 보면 풋풋한 첫 출근의 다짐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자. 사람도, 직장도.


('ELLE KOREA' 온라인에 쓴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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