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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Feb 22. 2021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선사하는 추천도서 5

예술적 경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승화시킨 책 다섯 권.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 바다출판사

아마 제목 때문에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처럼 여겨질 가능성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이 책은 영화감독 지망생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지,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닌 것이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잘 안다면 보다 실감 나게 느낄만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그의 영화를 단 한 편도 보지 않았다 해도 이 책을 통해 얻어갈 지혜가 축소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면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보고 싶어질 겁니다. 


TV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해 극영화 감독이 되고,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영화들을 만들어오기까지, 자신이 연출한 작품들이 그 이전에 보지 못한 관점과 다가가지 못했던 경험의 공백을 다지고 메우는 징검다리 같은 시간이 됐다는 것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담담하면서도 나직한 문체로 서술합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새롭게 도전하고, 시도하고, 성장하길 갈망한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누군가가 이룩한 현재의 성취가 어떻게 건축되는 것인지 호기심이 동해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유용한 저서일 것 같습니다. <영화를 찍으면 생각한 것>은 결국 무언가 해내고자 하는 이들이 생각해야 할 것에 관한 담담한 조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 을유문화사

유현준은 방송을 통해 보다 유명해진 건축가이기 전에 건축에 대한 관점을 확장해주는 책을 더러 써온 작가이기도 합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부제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으로 보는, 도시 생활자를 위한 도시 안내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시란 그저 살아가야만 하는 터전이겠지만 누군가에게 도시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할 겁니다. 누군가에게 도시란 아파트 한 채 이상의 대안이 없는 정형화된 삶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도시란 한옥일 수도 있고, 빌라일 수도 있고, 단독주택일 수도 있는 법이죠. 이렇듯 수많은 규격의 합으로 구성되는 도시에서의 다양한 삶은 건축이라는 명제를 통해 들여다볼 때 보다 명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시라는 공간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렇게 형성된 도시가 문화와 시대와 지역적 특성에 따라 어떻게 차별화된 특징을 지니게 됐는지, 열다섯 개의 물음을 바탕으로 하나씩 찬찬히 답해나가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도시의 역사는 결국 인류의 역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의 형태는 인간의 삶을 기반으로 건축된 것입니다. 어떤 과거는 허물어지고, 어떤 과거는 보존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미래를 건설해나갑니다. 결국 도시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지금을 마주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포트레이트 인 재즈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자연인이기도 합니다. 재즈 음악을 좋아하고, 위스키를 음미하고, 꾸준히 달리기를 하며, 틈틈이 세계를 여행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취향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중 하나인 <포트레이트 인 재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본래 이 책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와다 마코토로부터 시작된 기획입니다. 역시나 재즈 음악 마니아인 와다 마코토는 스무 명의 재즈 뮤지션을 임의로 골라 포트레이트 형식의 그림을 그린 후 개인전을 열기로 했는데 이에 흥미를 느낀 무라카미 하루키가 와다 마코토가 고른 재즈 뮤지션에 관한 개인적인 글을 쓰게 된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유명 작가의 취향을 들여다보는 흥미와 함께 자신의 취향을 활자로 풀어내는 것에 능한 작가의 기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한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의 너른 관심사를 공유하는 동시에 영역이 다른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작동하는 작가의 관점과 사고를 수긍하게 만드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예술가가 향유하는 세계 속을 여행하며 간접적인 삶의 풍요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 프랜시스 보르젤로 / 아트북스

그린다는 행위가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은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림은 타고난 계급과 부유한 재산을 가진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전리품과 같던 시절이 있었죠. 성별 역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격처럼 여겨지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은 단순한 미술서적이 아닙니다. 회화의 역사에 좀처럼 이름을 올리기 어려웠던 여성 역사서에 가깝습니다.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이 그려지는 대상에서 그리는 주체가 되기까지의 흐름을 면밀하고 심중하게 다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 작가의 자화상이 미술의 형식성을 넘어 나라는 자아를 발견하고 고찰하게 만드는 어떤 주장이자 투쟁이었음을 깨닫게 만듭니다.


나를 표현하는 것이 자유로운 시대에서 나를 억압하는 시대의 풍경을 마주하기란 때론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시대를 보다 명료하게 살피게 만드는 안경 노릇을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불가한 일이 되는 세상은 아닌지 들여다보게 됩니다.


세상의 변화는 계절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긴 시간 동안 그려진 수많은 자화상 속의 여성상은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자 시대의 한계를 밀어낸 여성 미술가들의 발자국인 셈입니다. 결국 예술이란 나를 보다 나답게 만드는, 자아의 거울과 마주하고 손을 마주잡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 존 파웰 / 뮤진트리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길 좋아하지만 ‘왜 좋아하는가?’라는 물음표에 매달리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건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 별다른 이유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음향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존 파웰은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이전에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을 쓴 작가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기호와 취향의 산물이라 신격화된 음악을 벽시계처럼 해체해 그것이 신비한 감각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불경한 존재인 셈이죠. 물론 농담입니다.


제목처럼 이 책은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책에 가깝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음악이 뇌에 제공하는 자극의 메커니즘 설명서라 해도 좋겠습니다. 음악을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음이란 공기를 진동시키는 것이고 그 진동이 우리 고막을 자극하면 음으로 변환된 감각을 우리가 느끼는 것이죠.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런 감각적 변이가 일어나는 방식의 구조를 하나씩 뜯어 살피며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신비를 살피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의 고막을 진동하고 뇌를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예술의 신비를 더욱 면밀하게 사랑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룸 엄마의 서재에 추천한 도서 북마크에 수록한 글을 업로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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