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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Feb 22. 2021

패티 스미스의 나날들

'저스트 키드'에서 'M 트레인'까지,  패티 스미스가 기록한 지난 날들

<M 트레인>은 록의 대모로 불리는 패티 스미스가 직접 서술한 사소한 나날들에 관한 기록이다. 건조한 바람처럼 감성의 물기를 말리는 문장 사이에서 패티 스미스가 살아가는 나날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저스트 키즈>는 패티 스미스가 자신의 소울메이트였던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함께 보낸 젊은 시절에 관한 기록이다. 패티 스미스의 첫 번째 앨범이자 록음악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데뷔 앨범이기도 한 <Horses>의 커버 사진을 촬영한 주인공인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패티 스미스에게 있어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생의 조력자였다. 패티 스미스가 노래를 부를 때면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넌 노래를 더 많이 불러야 해”라고 말했고, 패티 스미스가 밴드 투어를 다닐 때에는 그녀에게 전화해 “전시 준비는 하고 있어? 그림은 그리고 있어?”라고 묻곤 했다. 록의 대모라 불리는 패티 스미스가 시인이자 화가이자 연극배우이자 모델이자, 전방위적인 예술가로 거듭난 데에는 그녀의 빛나는 재능을 보다 담금질하도록 부추기고 영감을 불어넣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함께한 나날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89년에 세상을 떠났고, 패티 스미스는 홀로 남았다. 하지만 삶은 종착역에 다다르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 기차처럼 흘러갔고, 패티 스미스의 삶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만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M 트레인>은 패티 스미스가 살아온 혹은 살아가고 있는 어떤 날들에 관한 수기다. 사실 <M 트레인>에서 기술된 그 날들은 대단히 불명확하고, 불확실하기도 해서 이것이 실제로 그녀가 겪은 것을 기록한 글인지 혹은 그녀의 상상 속에서 부유하는 문장들을 헤매고 있는 것인지, 그 문장 속을 유영하다 보면 이 책을 통해 발을 딛게 된 세상의 실체가 모호해지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 책에 기술된 나날들 혹은 생각들은 텅 비어 있기에 그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는 이야기를 애써 읽는다는 허무가 느껴지기도 한다. 애초에 책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건 그리 쉽지 않아.”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결국 삶이라는 것이 그 어떠한 날들의 총합으로 채워진 결과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었던 어떤 날 사이에 나이테처럼 깊게 박힌 기억을 통해 재생되고 환원되는 것임을, <M 트레인>은, 패티 스미스는 문득 깨닫게 만드는 것과 같다. 커피를 사고, 하늘을 바라보다 태풍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고, 불쑥 사진을 찍고 싶단 생각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챙기는 도중에 불쑥 집으로 찾아온 지인과 함께 해변으로 걸어가는 과정에는 그 어떠한 삶의 교훈도 지혜도 없다. 그저 살아가기에 무언가를 하게 되고,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지나온 생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동행해온 존재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생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결국 <M 트레인>은 수많은 죽음을 관통해온 패티 스미스가 여전히 살아가야만 하는 불명확한 이유에 관한 기록일 것이다.

패티 스미스

<M 트레인>은 당신이 여전히 자신만의 상상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더군요.

사실 저는 그다지 총명한 아이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언어도, 과학도, 수학도 잘하지 못했죠. 그런데 상상력만큼은 늘 풍부했어요. 유년 시절엔 장난감과 나무 또는 칫솔에게 말을 걸곤 했는데 어머니도 그런 제 상상력을 부추기셨죠.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게 만들려고 모두 다 깨끗하게 치우지 않는다면 곧 비밀 경찰이 들이닥쳐서 너를 잡아갈 거란 식의 이야기를 믿게 만들고자 하셨죠. 하지만 저는 그게 장난인 걸 알았죠. 그럼에도 그런 어머니의 의도를 좋아했어요.


<M 트레인>에선 당신의 취향을 대변하는 오브제와 패션, 일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독자로서는 이런 취향을 읽어가면서 패티 스미스라는 사람에게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프랑스의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가 쓴 브뤼셀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먹고 마신 것이 그려지는 기분이었어요. 19세기 프랑스 문학에 어울리는 감성인데 그만의 감성이 좋았어요. 결국 그런 감성이 독자들을 자신만의 세상으로 초대하는 열쇠가 되는 셈이었죠. 결국 앨리스가 토끼굴에 들어가듯이 독자들이 이 책으로 빠져들어야만 저를 따라올 수 있는 셈이니까요.


혹시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함께 했던 시절을 다룬 저서 <저스트 키드>의 성공을 기대하셨나요?

전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그 책이 로버트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죠. 물론 그는 이미 고인이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 책을 절대 읽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요. 정말 놀라운 점은 그 책이 거의 100만 부나 팔렸고 마흔네 개의 언어로 번역된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이 책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었죠. 전세계의 거리에서 말이에요. 저와 같은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되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자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죠.


일찍이 남편과 사별한 이후로 재혼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단 한번의 사랑만 하고 싶었던 건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제가 아는 이들 중엔 첫사랑이 죽은 뒤에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다시 사랑에 빠졌죠. 결국 주관적인 일이겠죠. 그리고 제게 다른 이를 사랑할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뿐이고요. 어린 아이 둘을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으니, 쉽지 않은 일이었죠. 10년간 정말 외로웠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고독을 좀더 견딜 수 있게 되더군요. 육체적인 욕구도 달라져요. 내게는 아이들이 있고, 일도 있고, 성공도 있어요. 물론 대중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내가 보기에 만족할만한 성공 말이죠. 게다가 좋아하는 남자 친구들도 많아서 이 친구들과 약간의 로맨틱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요. 심지어 저는 웬만해선 지루해하지 않는 편이에요. 시와 새로 산 부츠 그리고 연속극에 등장한 수사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그런데 정말 죽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제 주변에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절친한 사진 작가였던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마흔두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제 남동생 역시 그와 같은 나이에 떠났고요. 남편인 프레드는 마흔 다섯에 떠났죠.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 모두가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로버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시선을 물리적으로 느끼기도 해요. 비트제네레이션을 이끌던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시선도 그렇고. 반대로 남편 같은 경우에는 좀더 추상적이에요. 다만 남편은 자신을 닮은 아이들을 통해 늘 저를 보고 있죠. 파솔리니는 이런 말을 했어요. 고인이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듣는 방식을 잊은 거라고. 맞아요. 사실 저는 그들의 말을 대부분 들어주는 것뿐이에요. 기도하는 것과 비슷하죠.


젊었을 때 이상하다거나 비정상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물론, 있죠(웃음). 사는 내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과 달랐으니까. 나는 1946년에 아주 평범한 시골의 아주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내가 살던 마을에는 카페도, 갤러리도, 미술관도 없었어요. 유일하게 접촉했던 문화가 로큰롤이었죠. 60년대 소녀들은 모두 헤어스프레이를 잔뜩 뿌려서 머리카락을 위로 땋아 올리고는 결혼해서 미용사나 타이피스트가 되기를 바랬죠. 그러니 키도 크고 삐쩍 말랐는데 긴 머리를 지저분하게 땋아 내린 제가 비웃음을 사리라는 건 분명했죠. 때로는 힘들었지만 그냥 버텼어요. 예술에 관한 책을 충분히 읽었던 터라 고통을 참아내야 시인이나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을 확신했거든요. 그래서 가난하고 이해 받지 못할지언정 어떤 틀에 갇히지 않기를 기대했어요. 아주 똑똑하지도 않고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어떤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는 건 알았거든요. 그 덕분에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전혀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뉴욕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사방에 있었고 모든 이들이 나처럼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요.


남편이나 남동생의 죽음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상처는 절대 아물지 않는다고 쓰셨는데, 미련 없이 잊는다는 건 불가능할까요?

감정적인 상처는 절대 아물지 않아요. 다만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겨우 배우는 거죠. 때로는 남편을 생각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어떤 때에는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과 지난 주까지 함께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정말 미치도록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게 돼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게 삶의 아름다움이기도 해요. 그토록 많은 기쁨을 느끼면서 동시에 많은 고통을 느끼는 것.


(2016년경 'ELLE KOREA'에 직접 쓴 글과 직접 편집한 해외판 인터뷰의 텍스트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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