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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Feb 26. 2021

'시지프스: the myth' 조승우로도 막을 수 없는

'시지프스: the myth'는 야심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는 드라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는 영원한 형벌에 갇힌 존재였다. 살아생전 제우스와 하데스의 노여움을 산 그는 사후에 무한한 형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쫓아 내려가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 덕분에 시지프스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탓에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쪼아 먹히는 신세가 된 프로메테우스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그리스 신화 안에서 자주 인용하는 고유명사로 꼽힌다. 시지프스와 프로메테우스는 무한한 고통을 비유할 때 손쉽게 인용하는 형벌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JTBC 창사 1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이하 <시지프스>)를 보기 전부터 지난한 운명을 다룬 서사를 예감하게 되는 건 바로 그 제목 덕분이다. 돌고도는 물레방아처럼 반복되는 고행을 떠올리게 만드는 고유명사를 제목으로 내건 것도 그런 의도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만만치 않은 고행을 피할 수 없는 캐릭터의 운명 자체가 이 작품의 구력일 것임에 틀림없다는 예감을 증명하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야심이 제목에서 읽힌다. 그리고 본격적인 방영이 시작하기 전에 공개된 예고편은 시간대가 불확실하나 디스토피아 배경의 미래를 그린 작품이라는 단서를 흘리는 것이기도 했다. 창사 10주년 특별기획이라는 수사에 어울리는 SF 대작을 준비했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시지프스>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주연을 맡은 배우 조승우 때문이었다. 최소한 연기적으로는 상당한 만족감을 줄 것이라 신뢰할만한 배우가 출연한다니 그것만으로도 봐야 할 이유는 확실했다. 그리고 지난 2월 17일과 18일에 방영한 1화와 2화를 보며 그런 기대감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다만 시작부터 어떤 작품들의 아류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기시감이 선명한 세계관과 극적인 분위기를 좀처럼 조이지 못하는 연출력으로 인해 극이 진행될수록 극적인 흥미가 반비례하게 낮아지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불과 1화 만에 말이다.


그리고 문득 조승우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 같다고 생각했다. 1화만 놓고 보자면 심각하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지프스>를 홀로 고군분투하듯 밀어 올리는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2화에 이르러 다른 배우들의 분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조승우의 짐을 덜어주는(?) 인상이긴 했지만 <시지프스>는 조승우의 연기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대단한 장점을 찾기 힘든 드라마처럼 보인다. 제작비만 200억 원에 달한다는 대작 드라마가 불과 2화 만에 심폐소생이 어려울 것 같다는 불길한 정황만 연이어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지난 2화까지 <시지프스>가 보여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035년의 미래에서 2020년으로 시간을 이동해온 강서해(박신혜)가 천재 공학자로 알려진 한태술(조승우)을 구하러 왔다는 것이 <시지프스>의 주요한 줄기다. 누가 봐도 <터미네이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 와중에 천재 공학자 한태술은 역시 누가 봐도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설정을 두르고 있다. 집안 곳곳에 자리한 로봇과 홀로그램 터치 스크린을 익숙하게 운용하는 한태술의 제스처는 대체로 토니 스타크를 고스란히 참고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바람둥이 기질까지 닮았다. 


물론 어떤 영화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문제라는 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고, 성공적인 선례를 새롭게 응용하고 재창조하는 것은 장르물에서 익숙하고 가능한 변용이며 선택이다. 문제는 그냥 떠오른다는 것 이상의 독창성이 없다는 것이다. <시지프스>는 <시지프스>만의 무엇을 만들었다고 말하기엔 스케일도 디테일도 열악한 드라마다. 어디선가 이미 본듯한 뼈대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부피가 아니라 밀도다. 스케일이 아니라 디테일이다. 그게 없다. 모티브가 아니라 코스프레가 됐고, 참고가 아니라 모방에 불과하다. 세계관에 좀처럼 매력을 입히지 못하는 디자인만 그득하고, 일말의 긴장감을 불어넣지 못하는 연출의 안이함도 견디기 어렵다. 


역시 놀라운 건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것을 해내는 배우를 지켜보는 일말의 흥미는 건졌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토니 스타크 흉내를 내는 조승우의 연기에서 하등의 어색함도 느끼지 못한 건 온전히 배우의 덕이다. 각본과 연출의 열악함을 온전히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이 빤히 보임에도 함께 무너지지 않는 배우의 연기는 때때로 경이롭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현란한 액션 신을 연출한다해도 전반적인 내러티브가 엉망이라면 순간의 현란함은 그저 어지러움일뿐이다. <시지프스>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뭔가 거창한 것을 준비한 것 같지만 대체로 허술하고, 대단히 멋진 것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은 대부분 식상하다.


이제 2화밖에 방영되지 않은 드라마에 지독하게 박한 평가가 아니냐고 따져묻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름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일단 나는 <시지프스>가 만인에게 재미없는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하지만 분명 장르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만족할만한 구석이 별로 없는 드라마라는 것 정도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첨단 영상 기술을 동원한다고 해서 스펙터클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작품 자체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작품에서는 아무리 카메라를 흔들어도 소용이 없다. 


SF라는 껍데기를 두른 <시지프스>가 증명하는 건 결국 장르에 대한 오해다. 매력적인 세계관과 공감할 수 있는 서사와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한 세계가 아무리 진짜처럼 보인다고 한들 작품을 구원하는 동아줄이 될 순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으로 채워진 아류의 콜라주 같은 것이라면 더더욱 의미가 없다. 그리고 덩치가 크다고 해서 다 강한 건 아니다. 그리고 SF 장르가 꼭 대작의 모양새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세트와 CG보다 중요한 건 각본과 연출이다. <시지프스>는 바로 그런 실패의 교본 같다. 그나마 믿을만한 배우들의 호연이 마지막 보루처럼 감상의 의지를 붙잡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믿을 게 배우밖에 없다는 건 역시 칭찬일리 없다. 여러모로 안타깝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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