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2화만에 폐지된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초유의 사태다. 300억 이상의 제작비가 투자된 대작 드라마가 이미 80% 이상 촬영을 마친 상황에서 방영 2회 만에 폐지를 결정하고 종영해버리는 사태라니, 그야말로 '이게 무슨 일이고'라 할만한 상황이랄까. 지난 3월 22일에 방영을 시작한 <조선구마사>는 그렇게 2화 만에 갈 길을 잃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길이 사라졌다. 그렇게 마치 세상에 없던 것처럼 증발해버린 드라마가 남긴 건 수많은 말이었다. 어쩌면 이 글 역시 <조선구마사>의 빈 자리에 세워두기 좋은 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3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역사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구마사>의 즉각 방영중지를 요청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만 하루 만에 10만 명 이상이, 29일까지 21만 명 이상이 해당 청원에 동의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5천 건 이상의 민원이 접수됐고, 관련 기사 댓글을 비롯한 온라인 게시판과 SNS상에서는 <조선구마사>를 맹렬히 비난하는 언어가 쏟아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광고주도 압박했다. <조선구마사> 광고주로 이름을 올린 기업들의 SNS와 공식 이메일 계정, 대표 전화 등을 통해 항의가 쏟아졌고, 적극적인 불매운동 의사를 밝혔다.
결국 기업들이 하나씩 <조선구마사>와 ‘손절’했다. 모든 브랜드가 광고 및 협찬을 철회했고, 자금줄뿐만 아니라 촬영 지원을 약속한 지자체마저 지원 불가를 통보하며 촬영할 영토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휴방을 결정했던 SBS는 끝내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 해지와 방송 취소를 결정했다. 제작 중단에 따라 미리 계약한 해외 판권 계약 역시 해지됐다. 그리고 PD와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과 주연배우들이 연이어 사과문을 발표했다. <조선구마사>와 연관이 있는 누구라도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편으론 불과 2화 방영만에 이처럼 거대한 공분을 만들어낸 저력(!)이 놀라울 정도였다.
일단 문제가 된 내용을 살펴보자.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은 살아있는 시체, 즉 생시가 출몰해 백성을 위협한다는 소식에 직접 나서서 그들을 소탕한다. 그런데 갑자기 죽은 아버지 즉 태조 이성계의 환시와 환청에 시달리는 태종은 주변의 무고한 양민을 칼부림하고 학살한다. 그 와중에 궁까지 출몰한 생시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한 조선을 구하고자 태종의 셋째 아들, 즉 훗날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충녕대군은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에서 온 구마사제를 한양으로 인도하라는 명을 받들고 명나라와 인접한 국경지대로 떠난다.
여기서 쟁점이 된 건 ‘태종’과 훗날 ‘세종’이 될 ‘충녕대군’이라는 실존 인물을 그리는 방식의 문제였다. 태종과 세종이 악귀에 휘둘린다는 설정과 그 과정에서 태종을 광폭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불만이 들끓었다. 게다가 최근 중국발 동북공정 이슈로 인해 거세진 반중 감정을 자극할만한 장면까지 등장했다. 중국풍 기방에서 월병과 같은 중국 음식을 대접하는 충녕대군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끌어올렸다. 심지어 태조 이성계가 불교 국가인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기 위해 서역의 구마사제와 손을 잡고 생시를 이용한다는 설정이 담긴 시놉시스가 온라인상에 공유돼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비난이 번져나갔다.
<조선구마사>에 대한 가장 큰 쟁점은 역사를 왜곡했다는 사실이다. 태종과 세종을 사관과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대중이 인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묘사하며 인물과 역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조선구마사>가 퇴마 장르의 판타지를 시대극과 결합한 작품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인정할만한 장르적 시도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예시가 바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뱀파이어 사냥꾼으로 그리는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이하 <링컨>)다. 하지만 <링컨>과 <조선구마사>의 차이는 정사와 야사의 경계를 구획할 줄 아는 각본가의 능력에 있다. <링컨>에서는 도끼를 들고 싸우는 링컨을 인식하는 세간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뱀파이어 헌터라는 사실은 막후의 사실로서 존재한다는 설정을 통해 대중이 이해하는 실제 역사를 보존하고 이를 통해 허구에 보다 안전하게 몰입하도록 배려한다.
<조선구마사>가 인물을 그리는 방식의 문제는 여기 있다. 태종과 세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록적 사실이나 대중적 인식을 장르적으로 뭉개도 된다는 착각은 결국 시청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첫 번째 역린이었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임금 두 사람을, 심지어 이순신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 자리한 역사상 최고의 인플루언서 세종을 이런 식으로 건드리는 것이 과연 대중을 상대로 현명한 선택인지 첨예하게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 여러모로 의아하다. 300억원 이상의 대자본이 투자된 대중적인 드라마에 관계자 누구도 이것을 위험하다고 여기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대중적으로 민감하게 여겨질 설정 자체가 오발탄이 될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한편으론 신기하다. 좋게 말하면 방심했고, 냉정하게 말하면 나태했다.
<조선구마사>의 두 번째 역린은 대중의 반중 정서다. 이는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한데 최근 중국 내에서 김치와 한복을 자기 문화라고 우기는 등의 동북공정이 만연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대중적으로 크고 작은 반중 정서가 확산된 상황에서 <조선구마사>가 그린 중국풍 분위기는 카니발을 위한 땔감이 되기 좋은 소재였다. 심지어 앞서 <여신강림>과 <빈센조>의 맥락 없는 중국 제품 PPL 이슈까지 함께 거론되며 이 모든 불만이 <조선구마사>에 집중됐다. 어떤 면에서는 <조선구마사>가 대중의 반중 정서 온도를 보여주는 실시간 바로미터가 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꼽히는 최영을 비하하는 연변 말투의 대사는 그야말로 자살폭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음표. 과연 <조선구마사>가 대중의 공분을 산 결정적 이유가 역사 왜곡이었을까?
<조선구마사> 논쟁이 쏘아올린 거대한 논쟁에서 가장 유의미한 건 시대극의 부실한 고증 문제였다. 그리고 그 문제에서 예시로 소환되는 사극 중 대부분이 우리가 이미 재미있게 본 작품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조선구마사>에 앞서 17%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박계옥 작가의 <철인왕후>는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에 비유했고, 실존했던 임금 철종이 등장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타임슬립과 신체 교환을 버무려 허구적 설정을 마련한 이 드라마는 실제 역사를 비틀어버리는 주체가 외세가 아닌 현대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를 납득시켰다. 그러니까 한번 상상해보자. 만약 <철인왕후>의 주인공이 중국 출신이었다면, 그의 입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라 언급하는 대사가 발음된다면, 과연 <철인왕후>는 무사했을까? 과연 태종과 세종을 왜곡했다는 이성적 판단이 <조선구마사>를 향한 분노의 발로일까?
드라마 고증의 부실함과 그로 인한 왜곡은 예전부터 비일비재했고, 그런 문제가 사소해지면서 허무맹랑한 설정이 장르라는 미명하에 밀고 들어와 시대극의 기준 자체를 흐릿하게 만든 결과가 바로 <조선구마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극의 고증 문제 제기는 분명 발전적인 논의다. 하지만 이 논의가 지금 발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 <조선구마사>로 인해 뜨거워진 공분은 기획 중인 드라마로 번지는 상황인데 만들어지지 않은 드라마까지 검증하자는 태도는 어딘가 어긋난 심리처럼 보인다. 필요 이상의 사전 검열로 창작적 가능성까지 제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서 다 태울 기세다. 좀 더 이성적인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