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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r 31. 2021

'유퀴즈 X BTS' 스타도, 시청자도 원하는 편안함

BTS가 선택한 편안함, '유 퀴즈온 더 블럭'에관하여.

‘국뽕을 빤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자조적인 비아냥에 가깝게 들리지만 때때로 반어적인 자축성 표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를 테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작으로 호명됐을 때에도, 손흥민이 푸스카스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에도, SNS상에서는 기꺼이 국뽕을 빤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너도나도 한 사발씩 들이킨다. 한국 출신의 누군가가 해외에서 대단한 재능을 인정받고 유명인사가 되는 것을 함께 즐긴다. 로컬이 아닌 글로벌 인싸가 된 한국인에게는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태극마크가 따라붙는다. 분야를 막론하고 그렇다.


아마 근래에 가장 많은 ‘국뽕’을 빨게 만든 국가대표급 셀럽은 BTS였을 것이다. 한류라는 영역을 넘어 세계적인 팝그룹이 된 BTS는 한국 뮤지션 최초로 핫 100 차트와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심지어 영어가 아닌 한국어 노래 가사로 된 앨범으로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했는데 비영어권 노래가 빌보드 200 차트 정상에 오른 건 12년 만의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한국 뮤지션 최초로 후보에 올랐고, 비록 수상은 불발됐지만 단독 무대에 서며 그 자체로 새로운 역사가 됐다. 기꺼이 국뽕을 한 사발 들이키고 리필해서 다시 들이켜도 무방한 성과였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이 정도로 인정받는 프로그램이 됐구나’라고 새삼 생각하게 된 것도 BTS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지난 3월 24일에 방영한 <유퀴즈> 99회 BTS 특집편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방송사를 비롯한 여타의 모든 매체에서 셀럽 섭외와 관계된 일을 하는 이들의 섭외 희망 리스트 1순위에 자리한 고유명사는 아마 BTS일 것이다. 그러니까 BTS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은 이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 BTS를 <유퀴즈>에서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멤버 7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 프로그램이 <유퀴즈>였다는 RM의 말처럼, BTS가 <유퀴즈>를 선택한 것이다.


BTS가 출연한 <유퀴즈> 99회는 6.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평균 4%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BTS의 출연 자체가 화제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어느 정도 입증된 셈이다. 한편으로는 <유퀴즈>가 어떤 정체성을 가진 프로그램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처음 <유퀴즈>가 시작할 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문제를 내고 상금을 주는 퀴즈 프로그램 같았지만 회차가 하나씩 쌓여가면서 퀴즈보다도 일반인과의 대화 즉 인터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며 웃음을 파는 예능을 넘어 사회의 저변을 널리 돌아보게 만드는 시사교양의 미덕까지 흡수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유재석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기대감에 비해 초반 시청률이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퀴즈>가 계속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미덕이 장기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투자해도 좋다는 가치 평가가 이뤄진 덕분이었을 거다. 이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분야에서도 다양한 방향성을 확보하려는 tvN의 야심과도 어느 정도 맞물린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종합편성채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tvN에서는 웃음의 휘발성으로 점철된 예능의 영역을 넘어선 예 시사교양이나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이를 테면 <어쩌다 어른>이나 <알쓸신잡>을 비롯해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미래수업> <벌거벗은 세계사> 등 프로그램의 완성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떠나 해당 프로그램의 지향점을 놓고 보자면 이런 시도들은 방송사 입장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세간의 흥미를 주목하고 반영환 결과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유퀴즈>는 예능으로 분류됐지만 이러한 tvN의 지향점을 잘 녹인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특정 거리에서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을 만나 인터뷰를 나누고 퀴즈를 제안한다는 기존 설정을 변경하며 실내 공간에서 특정 주제에 어울리는 명사를 초대하는 포맷으로 변경됐지만 그렇게 변경된 설정 안에서 나름의 장점을 찾아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인터뷰이와의 만남을 통해 뜻밖의 희로애락의 사연을 전해 듣는 재미는 사라졌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전문분야의 인사나 흥미로운 인생을 살아온 인물들의 입을 빌려 얻게 되는 지식과 경험은 분명 예능의 재미와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인터뷰 기반의 토크쇼 형식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가미된 출연진은 쉽게 접하기 힘든 배우나 연예인의 출연이었다. 여기서 ‘쉽게 접하기 힘든’이라는 수사를 동원한 건 정말 말 그대로 예능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이들이 출연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공유나 배두나, 신민아, 주지훈 같은 유명 배우들이 연이어 출연하며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높였고 소탈한 대화로 프로그램 특유의 매력을 입증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편으로는 일거수일투족 주목받는 삶을 살아가는 스타 입장에서도 자연인으로서의 관점을 편안하고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존재가 반가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BTS 멤버 전원이 <유퀴즈> 출연을 희망했다는 것이 단순한 립서비스처럼 들리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기가 편한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하는 이들에게도 분명 편안한 느낌을 주는, 좋은 경험일 것이다.


<유퀴즈>에서 한국 최초의 세계적인 팝스타가 된 BTS를 만날 수 있게 된 건 결국 그동안 <유퀴즈>가 성실하게 걸어온 길 덕분이다. 그리고 BTS가 출연한 99회 역시 <유퀴즈>다운 방송이었다. 7명의 멤버를 세 파트로 나눠 진행한 토크에서는 각 멤버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동시에 지금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것 같지 않은 그들의 진솔한 고민을 엿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진귀한 경험이었다. 연습생 시절의 고단함과 불안함을 넘어 아이돌로 데뷔하고 예상치 못한 성공담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의외의 막막함과 뜻밖의 공허함 같은 것은 그만한 무게를 견뎌본 자만이 소회할 수 있는 언어이자 감정이었다. 대단한 성공이나 영예를 예찬하는데 급급하거나 소모하는데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털어놓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은 출연자에게도 시청자에게도 귀하고 중할 수밖에 없다.


<유퀴즈>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출연자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주는 두 진행자 유재석과 조세호의 공헌도가 크다. 귀여운 티키타카로 출연자들에게 웃음을 전하면서도 속 깊은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위로를 전하는 유재석과 조세호는 그야말로 환상의 듀오다. 자리한다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부르는 유재석의 존재감과 그런 존재감을 잘 보좌하며 공감대를 증폭시키는 조세호가 ‘자기’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유퀴즈>를 꾸준히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라 해도 좋을 것이다. 결국 앉아있는 사람이 편안해 보이는 풍경은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고 끝내 함께 앉고 싶도록 마음을 이끄는 법이다. 그리고 3월 31일에는 ‘최고존엄’ 아이유가 <유퀴즈>에 나온다. 보고 싶은 출연자가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그야말로 방송 복지다. <유퀴즈>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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