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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r 26. 2021

'어쩌다 사장' 시골 슈퍼에서 슈퍼스타를 만난다는 것은

나영석 PD와 같은 듯 다른 유호진 PD의 '어쩌다 사장'에 관하여.

스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획이다. 존재 자체가 콘텐츠이고, 플랫폼이다. 특히 좀처럼 쉽게 접할 기회가 없는 스타는 등장하는 것만으로 열광의 대상이 된다. 최소한 자리한다는 것만으로 관심을 끈다. 그리고 한국 예능 신에서 그걸 가장 먼저 이해한 제작자는 나영석이었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스타 배우들을 섭외해서 멀리 해외로 여행을 보내고, 시골에서 생활하며 직접 밥을 지어먹게 만들고, 식당을 운영하게 하더니 숙박시설 주인장 노릇까지 시킨다. 연기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생활하는 자연인의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세운다.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모인다. 궁금한 사람들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좀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기가 힘든 스타 배우나 스타 연예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숙박시설을 찾는 일반인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리얼리티쇼 콘셉트의 예능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흥행성이 검증된 포맷이 됐다. 심지어 시즌제로 운영되는 스테디셀러다. <윤식당>이나 <강식당> 그리고 <효리네 민박>과 <윤스테이>까지, 유명 배우나 연예인이 운영하는 공간을 찾은 일반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은 스타라는 낯선 이들을 보다 친숙한 존재로 여기게 만듦으로써 그들의 스타성을 더욱 강화한다. 그리고 그들도 안다. 어쩌다 낯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이들이 매 시즌마다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 건 그렇기 때문이다. 


tvN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방영하는 <어쩌다 사장>은 이런 시류를 방증하는 또 하나의 리얼리티 예능이다. 배우 차태현과 조인성이 10일 동안 강원도 화천의 원천리에 있는 원천상회라는 시골 슈퍼를 운영한다. 그러니까 예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조인성이 절친인 차태현과 함께 강원도 시골마을의 슈퍼 사장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이미 예능 친화형 배우로 인정받은 차태현과 유호진 PD가 함께하는 네 번째 예능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나영석 PD가 연출했던 <1박 2일> 연출부 출신인 유호진 PD는 쇠락한 <1박 2일>을 다시 부활시켰다는 평을 얻은 시즌3를 연출하며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한 바 있다. 유호진 PD가 나영석 PD와 유사한 행보를 걷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호진 PD가 주도하는 리얼리티가 나영석 PD의 리얼리티와 동일한 쇼로 보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영석 PD의 예능은 이방인들의 개별적인 경험으로 보존된다. 자신의 주거지가 아닌 타 지역을 찾아간 이방인들은 온전히 이방인으로서 존재하거나 행위한다. <꽃보다> 시리즈로 대두된 나영석 PD의 여행 예능은 농촌과 어촌으로 내려가 자급자족을 경험하는 <삼시세끼>로 진전됐고, 지적인 견문을 설파하는 지식인들의 지방 여행기 <알쓸신잡>으로 확장됐다. 해외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윤식당>과 지방 소도시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윤스테이>는 이방인들에게 제공하는 한국적 정서 기반의 서비스를 관찰하는 나영석 예능식 스핀오프에 가깝다. 결국 나영석 PD의 예능은 지역성을 병풍 삼아 출연자들의 능력과 매력을 부각하는 캐릭터 예능이다. 출연자들의 개성을 지역적 특징 위에 캐릭터처럼 쌓아 올리는 아이코닉한 쇼에 가깝다.


반대로 유호진 PD의 예능은 해당 지역을 찾은 이방인들이 적극적으로 지역적 특징과 교류하며 체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1박 2일> 시즌3 이후로 기획한 <거기가 어딘데??>는 네 명의 남성 출연자가 대자연을 탐험하는 탐사 예능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인데 대자연과 일체화되는 경험을 치열하게 그린다는 점에서 예능이라기보단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기획처럼 보였다. 캐릭터를 부각한다기보단 지역의 특징 안에 캐릭터들이 이입하는 방식에 가깝다. 작년에 방영된 <서울촌놈> 역시 지방 도시 출신 연예인들과 함께 해당 도시를 돌아보는 기획이란 점에서 이방인에 가까운 출연자 혹은 시청자를 해당 지역에 녹여내는 방식에 가깝다. 결국 유호진 PD의 예능은 아이코닉한 캐릭터가 낯선 지역에 체화되는 과정을 그리는 로컬리즘 예능에 가깝다.

이는 특정 지역을 여행하며 자신의 견문을 드러내는 <알쓸신잡>의 테마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나영석 PD는 낯선 지역을 방문하거나 생활하는 인물의 개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유호진 PD는 낯선 지역에 방문하거나 머무르게 된 이방인이 교류하는 지역민과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니까 나영석 PD의 예능이 지역성 위에 새롭게 내건 팝업스토어 간판 같은 형식이라면 유호진 PD의 예능은 해당 지역의 간판을 유지하고 사람을 밀어 넣어 함께 호흡하게 만드는 형식에 가깝다. <어쩌다 사장>은 이런 특징이 보다 구체화된 기획처럼 보인다. 


<어쩌다 사장>과 비교할만한 나영석 PD의 예능은 <윤식당>과 <강식당> 혹은 <윤스테이>일 것이다. 여기서부터 유호진 PD와 나영석 PD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이 간판 이름부터 새롭게 내걸고 영업을 시작하는 것과 달리 유호진 PD의 <어쩌다 사장>은 있는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영업을 대행한다는 것이다. 나영석 PD의 예능이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테마를 브랜딩 하는 방식이라면 유호진 PD의 <어쩌다 사장>은 해당 지역의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험에 가깝다. 물론 예능에서 보기 힘든 스타 배우들을 섭외하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당긴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다.


그러니까 <어쩌다 사장>은 조인성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차태현보다도 예능에서 보기 드문 조인성이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잘 생겼다. 그게 무엇이건 예쁘고 잘 생긴 건 역시 눈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조인성이 일회성으로 등장하는 스타 게스트가 아니라 슈퍼 사장님으로 고정 출연한다. 그리고 <어쩌다 사장>은 슈퍼지만 밥도 팔고, 술도 팔고, 안주도 파는 가게 맥주집, 즉 ‘가맥집’인 원천상회를 운영하는 예능이다. 조인성이 끓이고 차태현이 차려주는 대게라면과 계란말이를 비롯한 식사와 안주를 맛보는 원천리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이다. 결국 스타 배우들이 생활하는 원천리의 풍경과 사람들이 주인공인 예능 프로그램인 것이다. 


포털사이트나 SNS에서 <어쩌다 사장>에 나온 원천상회에 다녀온 후기를 더러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은 <어쩌다 사장>이 원천상회와 화천 원천리를 주인공으로 삼은 예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스타의 존재감을 환기시킨다. 이런 류의 예능에서 가장 반가운 순간은 뜻밖의 공간에서 스타를 만난 이들이 보이는 놀라움을 맞닥뜨릴 때다.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받았다는 기분이 화면 밖의 시청자에게도 전해질 때 잔잔한 전율이 느껴진다. 만나기만 해도 반갑고, 보기만 해도 좋은 그런 존재가 주는 낙은 생각 이상으로 크고 너르다. 스타란 그런 존재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이 전해지는 예능이 전하는 평화로운 낙이란 즐길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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