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희사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Apr 23. 2021

'강철부대' 끝까지 완주하는 강인함

'강철부대'는 가학적인 극한 군인 쇼가 아니다.

어쩌다 보니 리얼리티 쇼가 누군가의 인생을 검증하는 장으로 변모한 것 같다. 지난 3월 23일에 방영을 시작한, 채널A와 스카이 채널에서 공동제작한 <강철부대>에서 ‘개인적인 문제를 이유로 더 이상 출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차했다고 알려진 707특임단중사 출신 박수민 씨에 관한 논란도 그 중 하나다. 그가 음란물 유포 혐의자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심지어 MBC <실화탐사대>에서는 오는 17일 방송에서 해당 인물과 관련된 혐의를 조명하는 방송을 예고했다. 방영 4회 만에 5%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프로그램이 예상치 못한 추문에 휘말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강철부대>의 화제성을 흔드는 심각한 위협이 될 것 같진 않다. 박수민 씨의 하차를 둘러싼 세간의 관심도 사실상 <강철부대>를 주목하는 시선을 간접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이슈처럼 보인다. TV화제성 분석 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월 2주차 ‘비드라마 TV 화제성 TOP10’ 차트에서 <강철부대>는 엠넷 <킹덤: 레전더리 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주 전 차트와 비교했을 때 네 개 순위가 상승한 결과다. 


해당 차트는 포털 사이트 등의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다. 그만큼 온라인상에서 <강철부대>를 언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1위를 차지한 <킹덤: 레전더리 워>는 시청률이 0.2%에 불과한 반면 <강철부대>는 5%에 다다른다. 시청률과 화제성이 어느 정도 정비례하게 상승한다는 건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온라인상에서의 언어로 휘발되는 것을 넘어 방송사에 안겨줄 수익성에 상응하는 실리를 보장하는 프로그램이 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강철부대>의 화제성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강철부대>는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출신 부대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리얼리티 쇼다. <진짜 사나이>와 <가짜 사나이> 이후로 등장한 또 하나의 극한 군인 쇼인 것이다. 하지만 <강철부대>가 <진짜 사나이>와 <가짜 사나이>와 다른 큰 차이는 군대라는 환경에 몰아넣은 일반인들의 어설프고 나약한 면모를 전시하고 이를 성장 스토리로 착취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강철부대>는 제목 그대로 ‘강철부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특수부대 출신의 예비역들이 일반인이 견디기 힘든 미션을 소화하며 남다른 능력의 경합을 벌이는, 특별한 군인들의 경쟁을 보여주는 쇼이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와 <가짜 사나이>가 일반인이 버틸 수 없는, 보다 정확하게는 그런 극한의 서바이벌을 견딜 필요 없는 이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거듭하고 그 끝에서 얻어지는 눈물을 짠내 나는 감동으로 위장하는 거짓 쇼라면 <강철부대>는 만만치 않은 미션을 어느 정도 극복할 저력이 있는 능력자들이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벌이는 승부를 지켜보는 쾌감을 선사하는 진짜 쇼다. <강철부대>를 보면서 가학적인 불편함을 느낄 시청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 폭력적인 언어로 정신력을 탈탈 털어내며 체력의 한계뿐만 아니라 부상 위협이 여실한 환경에서 인내하는 것을 성장이라 여기게 만들며 기이한 고통 포르노를 제시하는 <가짜 사나이>와 비교했을 때 <강철부대>는 건강한 프로그램이다.

군인은 특수한 직업군이다. 여타의 직업과 마찬가지로 밥벌이를 위해 종사하는 업 중 하나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담보로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보장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는 건 여타의 직업과 다른 정신적인, 육체적인 조건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분명 그렇다. 개인이 아닌 만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직업인만큼 특수한 상황에서도 작전을 수행하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그들에게 주어지는 업무란 개인의 만족감으로 수렴하는 노동이 아닌 셈이다. <강철부대>는 그런 자격 혹은 책임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기꺼이 감내했던 세월을 바탕에 두고 벌이는 경쟁이다. 그만큼 그 자리에 선 이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부대의 명예를 걸고 벌이는 자존심 대결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명예로 수렴한다. 그만큼 시청자 입장에서도 가학성을 즐긴다는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고, 그저 그 특별한 쇼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강철부대>가 단순히 남다른 체력을 가진 이들의 육체적 대결을 즐기는 쇼 이상의 감화를 전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4화에서는 최초의 탈락팀을 선정하는 탈락 미션을 진행했는데 250kg에 육박하는 거대한 타이어를 탈락 후보 세 팀의 네 팀원이 함께 뒤집어 400m를 전진하는 ‘타이어 뒤집기’ 미션이 바로 그것이었다. 남다른 피지컬을 자랑하던 이들도 차례로 지쳐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과정 자체의 피로감도 상당했지만 역설적으로 탈락팀이 확정되고 승부가 끝났다고 판명된 상황에서 오히려 해당 미션에서 낙오한 이들의 사명감이 되살아나며 끝난 승부를 끝까지 주목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탈락이 확정된 해병대수색팀이 마지막까지 무거운 타이어를 뒤집어 나아가며 완주하는 모습은 지금까지의 모든 방송 분량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클라이맥스라 꼽을만한 장면이 됐다.


“진 건 진 거고, 해야 할 것은 해야 하는 거니까.” 탈락이 확정된 후에도 완주를 선택한 해병대수색대의 예비역 팀원 오종혁의 말은 생각 이상으로 마음을 울리는 것이었다. 단순히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 같은 수사에 큰 의미를 두며 일상을 돌아보자고 권할 마음은 없지만 그들이 누군가의 일상과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존재였음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목적으로 지금과 같은 정신력과 체력을 무장한 존재로 거듭났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은 궁극적으로 이타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보는 이가 모종의 숭고함을 느꼈다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포기하지 않는 해병대수색대의 모습에 여느 때와 달리 말문을 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스튜디오의 패널들의 모습은 저마다의 공간에 자리한 시청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4화 말미에서 MC 김성주가 내뱉은 말은 4화를 지켜본 <강철부대>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조금 잘못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은 승부를 내는 경기 중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사실 1등이 누가 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그런 중계를 많이 했고 이기는 승부만 (주목)했었는데, 군인의 삶은, 군인들의 승부는 끝까지 하는 게 있네요.” 


모두가 승리를 좋아한다. 승자를 추앙하고, 승자가 되길 염원한다. 하지만 이기는 것이 세상의 기준은 아닐 것이다. 결과보단 과정을 중시한다고 말하지만 대체로 과정은 무시당하거나 잊힌다. 하지만 의외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건 늘 결승선에 있는 것이 아니다. 패배한 이야기에도 미덕이 있다. 그리고 메달의 색깔과 등수의 우위가 전부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는 오히려 그 울림이 더욱 커지는 법이다. 그리고 <강철부대>는 예상과 달리 그런 미덕을 선사하는 프로그램이 됐다. 그 미덕을 끝까지 잃지 않고 강인하게 완주했으면 좋겠다. 진짜든, 가짜든 사나이 같은 거 가리지 말고 정말 멋있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선구마사'가 건드린 역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