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희사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Apr 28. 2021

'모범택시' 드라마는 현실을 구하지 못한다

사회적 공분 해소용 드라마의 인기 현상을 증명하는 '모범택시'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가 승리하길 바라지만 늘 정의로운 승리만을 갈망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건 정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정의롭게 승리하는 꼴을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실의 정의가 남기는 답답한 물음을 견뎌낼 답변을 얻을 길이 요원한 탓이다. 권선징악이라는 내러티브가 현실적인 미장센을 바탕에 둔 판타지를 위한 주요 서사로 동원되는 건 그래서다. 현실에서 좀처럼 목격하게 힘든 권선징악의 인과에 대한 갈증을 극장이나 TV로나마 즐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경이로운 소문>이나 <빈센조>처럼 특정 장르물을 표방한 드라마가 하나 같이 인과응보 서사를 바탕에 두고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함으로써 성공 사례가 되고 있다는 건 하나의 징후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정직한 역반응에 가깝다. 그리고 동명의 인기 웹툰을 미니시리즈로 실사화한, 지난 4월 9일에 방영을 시작한 SBS 금토 드라마 <모범택시> 역시 그런 인과응보 트렌드에 합승한 작품처럼 보인다. 

<모범택시>는 제목 그대로 모범택시를 타고 다니며 악인들을 처단하는 자경단 조직에 관한 이야기다. 무지개 운수는 택시회사로 위장한 복수 대행 서비스 업체이며 그들이 운영하는 모범택시는 배트맨의 배트카 같은 역할을 한다. 주인공 김도기(이제훈)는 복수 대행 서비스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해결사인데 그 역시 과거 억울한 사연이 있는 인물로 사적인 울분을 공적 서비스 형식으로 해소하는 자경단 안티 히어로에 가깝다.


정보력과 무력이 뛰어난 조직과 개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악인을 제압한다는 점에서는 안티 히어로물에 가깝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세워놓으며 극적인 활기를 띄워 올리는 케이퍼 무비의 장점을 접목했고, 이를 통해 복수극의 쾌감을 보다 높게 끌어올린다.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의 역할극이 강화됐다는 건 동명 웹툰 원작과 큰 차이를 벌리는 드라마만의 설정이다. 이는 드라마에 보다 대중적인 화법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바탕에 둔 선택처럼 보인다. 


복수를 대행하는 이가 개인이 아닌 조직이란 점은 시청자의 공감대를 너르게 증폭시켜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부연하자면 무지개 운수에 의뢰하는 피해자의 사연이 단 한 사람의 분노로 수렴하는 것을 넘어 다수의 공분을 자극하는 일임을 전시하며 시청자들의 분노 역시 합당하다는 근거를 친절하게 제공하는 수단이 된다는 의미다. 자칫 소화하기 버거울 수 있는 원안을 시청자 입장에서 쉽게 씹어 넘길 수 있도록 가공하는 각색이 동원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선택은 성공한 것 같다. 지난 4월 9일에 시작한 1화는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4월 18일에 방영한 6화는 16%에 이르는 시청률을 견인하며 좋은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지체장애인을 착취하는 사업가와 학교폭력을 일삼는 고등학생 무리들 그리고 모 웹하드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갑질 사장을 응징하거나 응징할 것으로 보이는 6화까지의 에피소드는 다소 허무맹랑한 면도 있지만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바 있는 어떤 사건들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보다 현실적인 복수극의 대리만족 쾌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제각각 쓸모가 뚜렷한 다양한 캐릭터를 곳곳에 잘 배치하며 극적인 활기를 넓게 펼친 각본의 장점이 돋보인다. 이는 단순히 사건의 이야기 구조 즉 플롯의 디테일과 스케일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넘어 세계관 자체가 품은 가능성을 키우고, 시청자에게 매력적인 호기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기도 한데 전형적이거나 이색적인 캐릭터들이 맞물려 이루는 액션과 리액션의 리듬이 준수하고 그렇게 구현되는 세계관의 비현실성과 현실성의 맞물림은 세계관의 전형성을 보존하면서도 이색적인 방향을 유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극적인 호기심을 잉태하는 근원지 노릇을 한다. 역할과 비중에 관계없이 제 역할을 해내는 배우들의 호연이 작품을 받치는 너른 반석 노릇을 해내는 덕분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종종 액션 연출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인데 이는 액션 신에 임하는 배우의 문제가 아니라 액션 연출의 동선과 스턴트 신의 편집 완성도가 종종 떨어지는 탓으로 보인다. 물론 드라마 전반의 감상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액션 신의 빈도가 적지 않고, 그것이 주요한 장기처럼 보이는 드라마라는 점을 염두에 뒀을 때 이는 <모범택시>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라 여겨진다. 


한편으론 <모범택시> 같은 류의 대리만족 복수극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상황은 드라마 밖의 세상을 더욱 근심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법치주의를 근간에 둔 제도와 공권력이 해소해주지 못하는 개개인의 억울함을 대행하는 서비스를 다룬 드라마의 공감대란 결국 공감할 수 없는 사회와 시대에 대한 유감의 공감대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청자 혹은 대중들의 공분 해소를 대행하는 드라마를 즐긴 뒤에도 해소되지 않는 혹은 더해지는 분노를 수렴할 드라마의 인기를 통해 이 사회의 저변에 끓고 있는 공분의 온도가 느껴진다. 허구는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드라마가 현실을 구원할 순 없다. <모범택시>의 카타르시스를 마냥 즐길 수 없는 이유란 거기 있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철부대' 끝까지 완주하는 강인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