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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06. 2021

박나래 그리고 실패한 유머의 역습

박나래의 위기는 박나래의 실패한 유머로부터 비롯됐다.

가끔씩은 꼭 알아야 할 일인가 싶은 사실들이 뉴스라는 미명 하에 지나치게 간편하게 전해진다. 요즘은 대체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유튜버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서 주워듣게 되는 연예뉴스들이 그렇다. 그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세상 모두가 다 관심 있게 지켜보던 존재를 나 혼자만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대체로 주변인의 반응도 그렇다. 물론 구독자 수가 수십만에 이르는, 나름 유명한 유튜버라고 하니 관심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름을 헤드라인에 넣어서 굉장한 이슈처럼 포장하는 온라인 기사의 의도가 더 먼저 읽힌다. 필요한 소식을 전하겠다는 명분보다도 자극적인 검색어로 클릭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훤하다.


박나래가 성희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도 그런 류의 온라인 기사 덕분이었다. 박나래가 한 유튜브 채널에서 성희롱 행위를 했다는 것이 골자였다. 물론 박나래는 유명 유튜버에 비해 훨씬 영향력이 센 방송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해당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뉴스의 파급력은 보다 막강한 것이었다. 소위 초통령이라 불리는 크리에이터 헤이지니와 함께 시작한 <헤이나래>라는 유튜브 방송에서 박나래가 성희롱에 가까운 행위를 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그리고 지난 30일 서울 강북경찰서는 박나래에 관한 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유통 혐의로 수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을 접수했고 고발인 조사를 마쳤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박나래가 성희롱 논란에 휘말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박나래를 피고소인으로 만든 혐의는 성희롱 피해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논란이 된 영상에서 박나래가 했다는 행위는 속옷만 입은 남자 인형의 성기 부위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인형을 대상으로 유사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행위를 했다는 것인데 결국 여기서 직접적인 성희롱의 대상은 사람이 아닌 인형이기 때문에 해당 인형이 성적인 수치심을 느꼈는지는 그 누구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성희롱 피해자로 추정되는 특정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성희롱 혐의로 고발이 불가능한 것이다. 혹자는 시청자로서 인형의 입장에서 수치심을 느꼈고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토이 스토리> 속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러한 입장을 대변하는 법적 판단은 불가능해 보인다. 대부분의 법조인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 성희롱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추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나래가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유통 혐의’로 고발을 당한 것도 이런 까닭으로 보인다. 정보통신망을 활용해서 음란한 영상을 유통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정보통신망법상의 규정에 의거해 박나래의 행위가 해당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고발인의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해당 고발에 따른 처벌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회의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음란하다’는 단어가 개개인의 해석 안에서 그렇다고 여겨지는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포르노 수준의 음란한 성인물 자체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해당 영상 수준의 행위가 관련 법을 위반했다고 여겨질 확률은 낮다는 것이 주된 견해다. 이런 견해를 고려했을 때 박나래에 대한 경찰 조사는 고발인이 존재하는 상황이기에 절차대로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연예인으로서 대중적인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연예인인 박나래의 입장을 두고 봤을 때 해당 논란으로 인해 법적 처벌을 넘어선 사회적 처벌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30일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는 조부모가 살고 있는 목포를 찾았다. 당일 방송에서는 논란에 휘말리며 기가 죽은 손녀를 다독이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박나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남아있던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등장했다. 그 이후로 스튜디오에 앉아있던 박나래의 사죄가 이어졌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출연한 몇몇 패널들의 격려가 더해졌다. 박나래 옆에 앉아있던 기안84 역시 “우리만 잘하면 돼”라며 격려했다. 해당 방송은 여러모로 여론을 의식한 결과처럼 보인다. MBC 간판 예능이라 할 수 있는 <나 혼자 산다>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는 박나래 하차를 요구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나 혼자 산다>뿐만 아니라 박나래가 출연하는 방송과 관련한 게시판 분위기가 대체로 이렇다.


일단 박나래의 행위나 언어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박나래의 해당 행위를 '성희롱 논란'이라고 몰아가는 일부 여론과 이에 동조하듯 헤드라인을 남발하는 온라인 기사들의 납작한 주장에 동조할 생각도 없다. 해당 영상을 통해 불쾌함을 느꼈다고 하는 이들이 개인적인 의견을 표현할 자유는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물리적인 피해자임을 증명할 길이 없는 현상황을 고려한다면 그 의견은 개인적인 느낌 이상의 논리가 없는 것이기에 구제할 대상이 없는 문제다. 불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과 불쾌함을 실질적인 피해로 입증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인형의 사주를 받아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성희롱 피해에 대한 고발을 진행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므로 수많은 온라인 뉴스에서 헤드라인에 걸고 있는 ‘성희롱 논란’이라는 것 역시 발 없는 말에 가깝다. 결국 이런 논란을 부추기는 주체가 명확한 취재원 없이 논란만 확산시키는 연예뉴스처럼 보인다면 오해일까. 진실을 규명하고 싶은 의지보다도 트래픽 장삿속처럼 보이는 건 단순한 기우일까.


물론 시청자는 불쾌한 영상을 보게 된 입장으로서 항의할 순 있을 것이다. 다만 성희롱 피해자라는 입장에 선 항의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헤이나래>에서 박나래가 드러낸 문제는 실패한 유머였다. 소위 말하는 19금 ‘섹드립’을 쳤지만 전혀 웃기지 않았다. 그저 수위가 높았을 뿐이다. 그리고 웃기는 데 실패한 유머가 유죄인지는 몰라도 유머에 실패한 코미디언이 된 박나래는 덕분에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박나래의 사죄는 스스로도 그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사죄는 실패한 농담에서 비롯된 결과다. 박나래의 농담이 웃기지 않는 수준을 넘어 불쾌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박나래만의 문제가 아니다. <헤이나래> 제작진의 문제이기도 하다. <헤이나래> 제작진은 문제가 된 해당 영상의 썸네일에 '39금 못된 손 감당불가 수위조절 대실패'라는 자막을 걸었다. 제작진도 해당 영상이 어떤 논란을 야기할지 1도 몰랐다는 의미다. 오히려 해당 영상의 내용을 토대로 이슈를 만드는데 골몰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슈가 되긴 했다.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겠지만 의도대로 된 것이다. 유튜브 방송의 파급력은 양날의 검이다. 무엇이라도 해서 화제성을 만들겠다는 집념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무엇이든 한 결과가 결국 지금의 논란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해선 안되는지 판단하는 머리가 제기능을 하지 못할 때 무엇이든 해버린 손이 머리를 베어버린 꼴이 됐다.


결국 <헤이나래>는 폐지됐고, 제작진과 박나래는 사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박나래를 향한 비난과 하차 요구는 거세고 관련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헤이나래>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시청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즐겨보던 프로그램에서 박나래가 하차하는 모습을 볼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다. 과연 이 상황이 어디까지 번질지 몰라도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여러모로 골치가 아플 것이다. 갑작스럽게 공석이 된 전현무의 빈자리를 몇 년간 메운 건 박나래였고, 지금도 그 존재감은 유효하다. 그 자리를 다시 공석으로 만든다는 건 프로그램 입장에서는 존폐의 위기감으로 와 닿는 사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0일 방송은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보였다. 그 이후로도 논란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고 여겨진다면 또 한 번 주요 진행자가 사라질 판이다. 실패한 유머가 이렇게 위험한 것인지 누가 알았겠냐만 이젠 알아야 한다. 농담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그건 비단 박나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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