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6일 유튜버 진용진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최근 화제가 된 유튜브 방송 <머니게임>의 기획자였던 그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본의 아니게 상황이 시끄러워져서 시청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본의 아니게 시끄러워진 상황’이란 앞서 언급한 화제의 유튜브 방송 <머니게임>과 관련된 사안들이다. <머니게임>은 끝났지만 본격적인 ‘머니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어그로 게임’이 되고 있는 양상이다.
일단 이 글은 <머니게임>과 관련한 모든 논란을 총망라하거나 총정리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임을 밝힌다. 다 떠나서 그럴 자신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을 것이다. <머니게임>에 관한 논란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관련 기사도 상당하다. 대부분 상당히 어지럽고 소모적인 폭로전에 관한 내용이며 집요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느껴지는 내용이 아니기도 하다. 다만 그 내용 가운데 의아하게 느껴지는 바가 있고, 짚어야 할 지점이 있어 보인다. 본방송보다도 방송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이 유튜브 방송 <머니게임>의 정체성을 더 명확하게 대변하는 사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머니게임>은 여덟 명의 참가자가 외부와 단절된 스튜디오에서 14일 동안 4억 80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버티는 리얼리티쇼 형식의 방송이다. 참가자가 가져온 물건은 스튜디오에 입소한 뒤 반납해야 하며 유니폼을 제외한 어떠한 생필품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제공된 금액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서 생활할 수 있다. 다만 실제 가격의 100배의 금액이 적용되므로 신중한 소비가 필요하다. 14일 동안 버틴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즉 상금이 처음 제시된 4억 8000만 원으로부터 남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돈을 두고 벌이는 생존 게임이다. 돈을 쓸수록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생존에 필요한 물품 외의 소비를 제한하며 돈을 아끼며 버틸수록 이윤이 남는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고 실수를 반복한다. <머니게임>의 참가자들이 견디지 못하는 건 의외로 생존과 무관한 문제였다. 먹고, 자고, 싸는 불편함은 견디지만 지겨운 건 견디기가 어렵다. 그래서 무료한 시간을 지우고자 술을 마시자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주문한 술이 한 병에서 두 병으로, 두 병에서 세 병으로 늘어나면서 취기와 소비가 함께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머니게임>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자신의 것이 될지도 모를 돈을 아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참가자들이 지겨움을 견디지 못해서 돈을 쓰게 되는 상황은 바람과 해의 내기에 관한, 오래된 동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리 매섭고 강한 바람도 벗기지 못했던 행인의 옷을 무덥고 쨍한 햇빛이 행인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샤워 문제나 화장실 문제는 견뎌도 흐르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아이러니. 그런 면에서 <머니게임>은 무료함이 인간의 이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정교한 실험은 아니다. 그리고 <머니게임>에 거는 기대 역시 이런 게 아니었을 거다.
<머니게임>을 둘러싼 논란과 비난은 이런 기대감을 배신했다고 여겨지는 몇몇 출연진을 향한 십자포화 양상으로 번진 지 오래다. 정리해보자면, 지금 <머니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분쟁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특정 출연진의 태도 문제처럼 보인다. 특정 출연진이 방송 자체를 무산시켜버리겠다는 협박을 동원해 제작진과 출연진을 조종했다는 정황을 <머니게임>과 연관이 있는 한 유튜버가 폭로하면서 그로 인해 방송 자체의 기조가 완전히 상실됐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몇몇 출연진이 공평하게 상금을 나눠 갖는 것을 전제로 연합을 결의해 우승자를 배출하자고 모의했다는 정황도 밝혀졌다.
실제로 최종 우승자 2인은 자신들에게 배분된 최종 상금을 자신들의 우승에 기여한 다른 참가자와 함께 배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증여세 부과가 누락됐다는 지적도 나왔는데 기천만원의 돈을 타인에게 증여하는 상황이므로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논란 가운데 가장 의아한 건 집단 퇴소와 관련한 문제다. 자발적인 의사로 게임 참가를 포기하는 인원이 4인 이상이 되면 게임이 종료된다는 규칙에 따라 일부 남성 참가자와의 갈등 상황에서 집단 퇴소를 결정한 여성 참가자 4인이 제작진의 사정과 읍소 끝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제작진이 게임의 효력을 말소시켜버린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편집된 영상을 통해서는 알 수 없던 부분이 제작진과 관계가 있는 듯한 한 유튜버의 폭로를 통해 수면 위에 올라오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이를 시인하며 실제 상황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결국 그 상황을 주도했다고 여겨지는 특정 참가자가 비난의 대상이 됐고,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 사이에서 지난한 폭로전이 이어지며 저마다 ‘떡상’과 ‘떡락’의 희비가 심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의아한 건 게임의 규칙에 따라 행동한 참가자가 궁극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설정한 제작진보다도 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참가자 개인의 태도 문제를 겨냥한 비판이나 비난은 개개인의 행위이기에 관여할 수도, 관리할 수도없는 문제이지만 특정 참가자가 방송을 망치고 시청자를 우롱했다는 관점으로 던지는 비난은 어딘가 의아하다. 해당 문제는 기본적으로 제작진이 세운 규칙을 이용해서 게임을 무산시키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제작진이 의도한 게임의 영역 안에 있다. 문제는 그렇게 끝났어야 할 게임이 끝나지 않았고, 제작진의 사정과 읍소로 재개됐다는 것이다. 제작진 스스로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세운 규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꼴이 됐다. 그 지점부터 <머니게임>은 ‘규칙’이 무색한 ‘게임’이 돼버렸다. 결과적으로 제작진이 <머니게임>의 보이지 않는 멤버가 돼버린 꼴이다.
<머니게임> 제작진이 사정과 읍소를 통해 집단 퇴소를 결정한 참가자를 다시 게임에 참여하게 만든 건 게임을 끝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머니게임>에 제작비를 후원한 스폰서 ‘우리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촬영한 스튜디오 제작비용도, 제작진 스태프를 고용한 인건비도,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상금도, 스폰서를 통해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작이 완료되고 방송이 돼야 정상적인 후원도 완료된다. 집단 퇴소와 함께 게임이 끝나는 리얼리티는 <머니게임>이 원하는 리얼리티가 아니었다. 그러면 쇼가 될 수 없으니까, 방송도 할 수 없으니까, 스폰서와의 계약도 망가지니까. 이는 결국 게임을 기획하고 설계한 유튜버 진용진을 비롯한 제작진의 리스크가 된다. 그렇게 제작진은 <머니게임>의 보이지 않는 참가자가 됐고, 그 여파가 지금의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머니게임>과 관련한 논란은 여러모로 <가짜 사나이>와 관련한 논란을 떠오르게 만든다. <가짜 사나이>는 해당 방송의 잔혹함과 가학성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방송에 출연하는 교관들의 사생활에 대한 추문이 수면 위에 올라오면서 방송 자체가 존폐 위기에 몰렸다. <머니게임>와 <가짜 사나이>의 논란은 서로 양상이 다르지만 출연진을 잡음이란 점에서는 유사하다. 게다가 <머니게임>의 잡음은 출연진끼리의 논쟁이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며 일파만파가 되는 형국이다. 방송 안에서 끝났어야 할 게임이 끝나지 않고 상금도 없는 현실까지 옭아매는 인상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상황 자체가 <머니게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머니게임>은 세계관 구축에 실패한 결과물이다. 게임을 끝낸 출연진이 장외에서도 해당 게임과 관련이 있는 감정싸움을 거듭하는 건 애초에 서로 게임을 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승상금을 걸고 벌인 리얼리티쇼는 게임의 법칙을 설득하는 쇼가 아니라 법칙이 무색한 게임으로 인해 적나라한 리얼리티만 드러냈다. 그 결과가 제작진의 해명과 참가자들의 폭로다. ‘머니게임’이라고 썼지만 ‘어그로 게임’으로 읽힌다. <머니게임>이 낳은 대단한 화제성이라는 것도 실질적으로 ‘게임’을 보는 재미가 아니라 ‘머니’를 향한 욕망에서 기인한 것 같다. 종영 이후로 불거진 모든 상황 자체가 사실상 <머니게임>의 기획이 안고 있었던 근본적 한계를 되짚게 만든다.
누군가는 <머니게임>을 통해 신박한 두뇌 싸움 같은 걸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동명의 원작 웹툰은 그런 게임과는 거리가 먼 세계관이었다. 원작 웹툰은 극단적인 자본주의 생태계에 관한 우화다. 우화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현실적인 사고와 감각을 부여하는 세계관이다. 작품의 극단성도 비유적인 장치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우화를 현실적인 게임으로 이관했을 때 벌어지는 문제는 실제로 구현된 세계관이 생각보다 시시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뭔가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보다시피 현실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욕망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까지 다다르는 인간들의 지옥 같은 욕망을 그린 웹툰의 잔혹함 대신 지겨움을 버티기 위해 몸부림치고, 술에 취해서 서로 언성이나 높이는 꼴을 그럴듯하게 편집하고자 안간힘을 쓴 결과물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게임의 법칙을 스스로 무색하게 만든 게임이었다는 정황까지 알게 된 건 덤이다.
이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방만한 게임의 설계에서 비롯됐다. 스토리가 없는 방 안에 캐릭터들만 뒹구는 상황에서 유효한 건 뇌를 작동시키는 게임의 묘미가 아니라 불편하고 심심한 상황 속에서 골이 깊어진 이들 간의 감정적 갈등과 충돌이다. <머니게임>의 화제성을 견인한 건 이성이 아닌 감정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의외의 변수가 튀어나와 게임 자체를 잡아먹어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 모든 상황을 방기한 게임이 맞이할 운명이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머니게임>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게임에 가장 열중한 참가자가 제작진이었다는 사실이다. 제작비에 충당한 협찬금을 살리기 위해 장외에서 진짜 ‘머니게임’을 벌인 제작진이야말로 가장 성실한 참가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짜 리얼리티쇼는 방송이 끝난 지금 갖은 잡음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2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화제성이 돈이 되는 시대라는 것이 실감된다. 머니가 없으면 게임은 안되지만, 게임은 없어도 머니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