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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n 07. 2021

'마인' 이것은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막장드라마가 아닌 새로운 웰메이드 드라마 '마인'에 관하여.

막장드라마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온 이야기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지금까지도 전승되는 구전 서사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신화부터 그렇다. 신이라 불리는 이들이 여느 인간보다도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심심찮게 온갖 패악질을 벌인다. 물론 영웅적인 면모를 지닌 존재도 있지만 간통과 살인은 물론 출생의 비밀까지, 요즘 막장드라마에서 하는 짓은 이미 거기 다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일찍부터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해 쑥덕이는 것을 즐겼다.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은 아마도 그 시절 누군가를 비유하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신화 대신 막장드라마가 있다. 신이 아니라 부자가 대중의 입방아에 오른다. ‘대한민국 1%’라는 수식어를 손쉽게 발음하는 상류층을 주인공으로 둔 드라마는 우악스럽고 노골적으로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서로 뒤엉켜 이전투구를 벌인다. <스카이캐슬> <부부의 세계> 그리고 <펜트하우스>까지, 소위 막장드라마로 꼽히는 이 제목들은 지난 몇 년 사이 여느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견인하며 막장드라마를 주류 장르처럼 언급하게 만들었다. 비판을 위해 고안된 언어가 고유명사처럼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부유한 상류층 가문을 주인공으로 둔 드라마라면 자연스럽게 ‘막장’이라는 단어를 동원해 수식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난 5월 8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tvN 미니시리즈 <마인> 역시 그런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어느 상류층 재벌가에 관한 드라마다. 효원이라는 대기업 가문의 가족들과 그들을 보필하기 위해 고용된 이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대기업 가문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고용한 평범한 사람들 역시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마인>은 단순히 어느 부유층의 저속한 행위를 적나라하게 전시하고 거침없이 전개하는 막장드라마와 결이 다른 막장을 들여다본 드라마처럼 보인다.


밑도 끝도 없는 죽음의 징후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프롤로그 형식의 첫 회 도입부는 <스카이캐슬>이나 <펜트하우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시작부터 역치가 높은 의혹을 제시하며 시청자를 묶어 두려는 서사적 전략이 엿보인다. 그리고 극 중 인물인 엠마 수녀(예수정)의 목소리로 거듭되는 내레이션의 시제가 과거형이란 사실은 이 작품 자체가 거대한 플래시백이라는 사실을 매번 직감하게 만든다. 매회마다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면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조금씩 드러내며 시청자를 감질나게 만든다.


그러니까 <마인>은 일어날 일을 따라가는 서사가 아니라 일어난 일의 근원을 쫓아가는 서사를 그리는 작품이다. ‘누가, 어떻게, 왜’라는 후더닛 구조의 미스터리를 강화하는 새로운 정황이 매회마다 새롭게 등장하고 예상 밖의 파국으로 극을 밀어간다. 그 모든 파국은 ‘내 것’이라 여기는 것을 갖겠다는 저마다의 욕망이 부추긴 행위로부터 비롯되고 점진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든 인물이 저마다 크고 작은 비밀을 드러내거나 품는다. 그렇게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지뢰’ 같은 존재가 된다. 그렇게 각기 다른 약점을 갖고, 서로 다른 상성으로 복잡다단한 관계도를 그려 나가며 회가 거듭할수록 시청의 묘미를 더한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마인>이 흥미진진해지는 건 저마다 폭탄 같은 비밀을 품은 인물들의 뇌관이 어지럽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인>은 덧없이 큰 욕망의 충돌과 갈등을 그린 여타의 막장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세게 휘두르고 크게 소리내는 데 압도되는 것보다도 팽팽하게 당기고 복잡하게 엉키는 상황 자체를 관전하는 흥미를 안겨주는 장르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주도하는 인물이 남성보다도 여성이란 점에서 막장드라마 세계관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마인>의 주요 인물은 재벌가의 3세대 가족이다. 그런데 여기서 3세대에 해당하는 한수혁(차학연)과 한하준(정현준)의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다. 심지어 하준의 아빠인 한지용(이현욱) 역시 한 집에 사는 엄마의 친아들이 아니다. 효원가 한회장(정동환)의 두 아들 중 첫째 한진호(박혁권)는 친아들이지만 둘째 아들 한지용은 외도로 인해 집 밖에서 낳은 아들이다. 그리고 한지용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하준의 새로운 튜더와 깊은 연관이 있고, 이는 지용의 아내이자 하준의 엄마인 서희수(이보영)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안긴다. 그리고 첫째 며느리 정서현(김서형)은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되는 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수습할 방책을 세운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갈등의 양상이 가문의 내부자와 외부자의 충돌과 반목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자와 내부자의 대결 구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인>에서 효원가가 겪는 본질적인 문제는 대체로 혼외자식을 낳은 아버지로 인한 것이다. 결혼한 아내와 낳은 첫째와 혼외자와 낳은 둘째가 한 집에 살면서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그리고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모두 아들이 한 명씩 있지만 두 아들 모두 친엄마가 없다. 지금의 엄마는 모두 친엄마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예기치 않은 갈등을 야기하는 뜻밖의 방아쇠가 된다.


그러니까 <마인>의 가족들이 겪는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혼외자식 문제다. 간단히 말하면 집안의 대를 잇는 남성들로부터 비롯된 사태다. 일찍이 한회장이 밖에서 낳은 자식인 한지용을 집안에 들였고, 한지용은 자라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임신하게 만들었고 친엄마와 자식을 떨어져 지내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과정이 거짓말로 점철됐다든 사실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거짓말의 주체인 한지용이 아닌 서희수의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니까 이런 끊임없이 문제를 싸지르는 남자들로 인해 고생하는 어떤 여자들에 대한 서사다. 서희수를 괴롭히는 건 아들 하준의 친엄마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런 문제를 야기한 남편 한지용인 셈이다.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마인>은 그렇게 명확한 선언을 한다. 그리고 선언의 주체는 정서현이다. 그는 재벌가의 그림자를 가리기 위해 온갖 패악질을 동원하는 막장드라마의 여제가 아니라 막장드라마나 다름없는 행동을 불사하는 집안 내력에 선을 긋는 여자다. 그런 정서현과 함께 서희수는 집안을 어지럽히는 남편들의 음흉한 욕망을 단죄하고, 무능한 자격을 박탈하는 존재로서 자기 역할을 강화하고자 한다. 이는 이 모든 사태를 방관한 시어머니와 그 일가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마인>은 부유층의 이기적인 탐욕과 비윤리적인 행동을 무분별하게 전시하는 막장드라마와는 궤가 다른 야심을 품은 작품처럼 보인다. 막장드라마가 간과하고 팔아온 공분 대신 새로운 것을 주목한다. 막장드라마가 손쉽게 팔아먹던 공분의 근원을 명확히 가리킨다. <마인>은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막장드라마의 껍데기를 깬 웰메이드 드라마다. 분명 그렇다. 그럴 것이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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