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운명공동체, '미나리'가 전하는 보편적 감동에 대하여.
2020년과 2021년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코로나 19로 점철된 해로 기억되겠지만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는 그 어느 해보다도 특별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기억되는 해가 될지도 모른다. 지난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오스카 4관왕을 차지했던 것에 이어 2021년에는 한국인 배우 최초로 오스카 배우 부문 후보로 지명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니 말이다.
윤여정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준 영화 <미나리>는 엄연히 미국 영화이지만 영어 대사보다 한국어 대사 분량이 월등히 많아서 한국영화라고 해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 작품이다. 도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던 1980년대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부부의 아메리칸드림을 그린 이 작품은 미국 이름으로 아이삭 정이라 불리는 재미교포 2세 정이삭 감독이 유년시절 겪었던 가족과의 일화를 바탕으로 쓴 각본을 토대로 연출한 영화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함’이라는 자막은 등장하진 않지만 지극히 자전적인 영화인 셈이다.
<미나리>는 두 대의 차를 나눠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가족으로 모습에서 시작한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엄마와 누나가 앉아있는 자동차 앞좌석을 응시하는 소년 데이빗(앨런 김)의 시선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앞좌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엄마 모니카(한예리)와 그 옆에서 고개를 꾸벅이며 조는 누나 앤(노엘 케이트 조) 그리고 그들이 탄 차를 이끌 듯 앞서 달리는 트럭을 홀로 운전하는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까지, 네 가족은 마치 자신들의 영토를 찾아 달리는 서부시대의 개척자처럼 길을 달려간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 남자와 기대와 다른 풍경에 질려버린 여자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낯선 땅에서의 첫날부터 언성을 높이며 싸움을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부모를 말리려 애써도 딱히 소용이 없다. 그렇게 천둥번개가 치던 밤의 소란 이후로 부모는 먼 한국 땅의 외할머니 순자(윤여정)를 불러와 어린아이들을 돌보자는 결론에 다다른다. 미국에 가서 서로를 구원하자고 약속했던 젊은 부부는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며 각자의 꿈과 삶으로 천착한 지 오래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가족은 꿈이고, 누군가에게 가족은 삶이다.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더 이상 ‘병아리 똥구멍’만 보는 일상에 머무를 수 없으니 ‘빅 가든’을 만들겠다는 제이콥의 꿈도 가족을 위한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을 지키고, 그것이 비록 힘겨운 일상이라 해도 가장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삶일 것이라는 모니카의 믿음도 끝내 가족을 위한 것이다. 꿈과 삶이라는, 어쩌면 다를 게 없을 것 같은 1음절의 절박함에 멀어지는 것도 가족이고, 끝내 서로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깨닫는 것도 가족이다.
<미나리>는 가족이라는 운명공동체에 관한 영화다. 국적과 인종을 넘어 보편적인 공감대를 획득하는 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겪었던 개별적인 경험에 내재된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체감하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를 보며 자라나고, 부모는 자라나는 자식을 보며 살아간다. 서로에게 꿈이 되고, 삶이 된다. 어느 곳에 놓여있다 해도 가족이 된 이상 함께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가족은 그 자체로 터전이 된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이방인이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모국어가 되는 존재이기에 서로의 결핍을 메우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정이삭 감독은 유년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외할머니가 키운 미나리가 무성하게 자라는 풍경으로부터 <미나리>를 떠올렸다. “미나리에는 시적인 영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나리는 다른 어떤 식물도 자랄 수 없는 열악한 토양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풍성하게 자란다. 그 결과 토양에 활력을 불어넣고 물을 정화한다. 그런 미나리의 효과가 시적 울림처럼 느껴졌다.” 정이삭 감독의 말처럼 미나리는 뿌리내릴 토양만 있다면 어디서든 잘 자란다. 그만큼 억척스럽게 보이지만 미나리는 자신이 뿌리내린 생태계를 건강하게 돌본다.
‘건강에도 좋고, 몸에도 좋고, 맛도 좋고, 아플 땐 약으로 쓰이고, 원더풀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극 중 순자의 대사는 궁극적으로 미나리를 향한 예찬이지만 미국 땅에서 뿌리내리게 된 자신의 딸과 사위 그리고 손주들이 미나리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주문 같기도 하다. 물이 높은 데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어디서든 잘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자식에게 전해져 그다음 세대까지 전승된다.
비록 가끔씩 삶이 황폐해져도 삶이란 결국 억척스럽게 살아지는 것이므로, 기적처럼 다가오는 구름의 형상처럼 사소하게 지나치던 풍경 사이에 깃든 누군가의 체온을 떠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삶은 형형한 생명력을 품고 박동하는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가족은 가끔씩 그런 삶에 거친 비바람 같은 갈등을 부르는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다시 듣고 싶은 옛 노래처럼 문득 떠올라 삶을 돌아보게 만들거나 지금을 꿈꾸게 만드는 존재로도 다가온다. <미나리>는 바로 그런 삶이자 꿈이었던 가족에 관한 송가다. 발음만큼 정겹고 애틋한 영화다.
(한국전력공사에서 발행하는 사보 월간 <kepco> 5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