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로 점철된 오늘을 위한 작은 공동체의 이야기 '미나리'에 관하여.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국인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역사였을 것이다.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기생충>은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장편국제영화상까지 네 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 역시 한국인에게 또 한 번 특별한 역사로 기억될 것 같다. 재미교포 2세인 정이삭 감독이 만든 <미나리>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고, 결국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는 아니지만 한국어 대사가 대부분인 <미나리>가 아카데미 유력 후보로 꼽히며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이어진 상황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풍경이다. <미나리>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이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배우 윤여정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배우로서 두 번째로 64년만에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되는 상황은 한국인에게도, 미국인에게도, 어쩌면 전세계인에게도 분명 놀랍고 흥분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나리>는 미국과 한국 모두에게 특별한 인상의 이방인처럼 다가오는 영화인 셈이다.
아이의 눈으로 관통하는 가족사
<미나리>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어린 소년 데이빗(엘런 김)의 얼굴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리고 데이빗의 시선이 닿는 자동차 앞좌석에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엄마 모니카(한예리)와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는 누나 앤(노엘 케이트 조)의 뒷모습 그리고 세 사람이 탄 차를 이끄는 것으로 보이는 트럭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너른 평원을 지나 수풀이 우거진 길에 들어선 두 차는 곧 바퀴가 달린 트레일러 집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모니카가 묻는다. “여기 대체 어디야?” 트럭에서 내린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이 답한다. “집이지.”
모니카와 제이콥은 같은 희망을 바라보면서도 각자 다른 곳에 놓인 희망을 가리키기에 갈등하고 충돌한다. 그런 엄마와 아빠의 불안과 기대를 바라보며 자라는 앤과 데이빗을 돌보는 건 한국에서 온 외할머니(윤여정)다. 미국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는 한국산 고춧가루와 멸치를 바리바리 싸온 엄마가 뭉클하기만 한 모니카와 달리 데이빗은 갑작스럽게 한 방에서 지내게 된 불청객 같은 외할머니가 반갑지 않다. 심지어 먹기 싫은 보약까지 지어온 외할머니가 괘씸하기까지 하다. 요리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외할머니에게 ‘할머니 같지 않다’며 투정한다.
<미나리>는 어느 한국인 가족의 미국 이민기를 다룬 영화이자 데이빗의 성장담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공적인 시대상을 환기하는 동시에 사적인 기억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 질환을 갖고 태어난 탓에 마음대로 뛰지도 못하던 아이가 뒤늦게 할머니를 위해 질주하는 순간, 한 아이의 성장을 증명하는 나이테를 마주하는 환희와 끝내 단단한 애정을 회복하게 될 한 가족의 희망이 벅차게 떠오른다. 절망의 순간을 지나가던 가족의 역사는 아이의 성장과 함께 희망으로 북돋운다.
아메리칸드림 2세대의 자전 영화
“단지 식물에 불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미나리에는 시적인 영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나리는 다른 어떤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열악한 토양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풍성하게 자란다. 그 결과 토양에 활력을 불어넣고 물을 정화한다. 그런 미나리의 효과로부터 시적 울림이 느껴졌다.” 정이삭 감독이 <미나리>라는 제목을 붙인 건 우연이 아니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미나리>는 어쩌다 발견한 미나리를 통해 이야기를 구상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드림을 아주 개인적인 수준으로 다루고자 노력했다. 아버지는 할리우드 영화를 봤기 때문에 미국에 왔다고 말했다. 그를 위한 아메리칸드림은 그가 본 영화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려는 이 덧없는 꿈을 좇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이것은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라는 자막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정이삭 감독 스스로의 말처럼 <미나리>는 감독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겪은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에 둔 작품이다. 윌라 캐더의 소설 <나의 안토니아>에서 이야기 구조에 대한 영감을 얻긴 했지만 그 안의 이야기는 온전히 자신이 지나온 삶으로부터 길어 올린 것이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부모님의 녹록하지 않은 인생을 함께 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오래전에 지나온 기억을 더듬어 조우하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조심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본을 완성하기까지 직접적인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부모님과 누나를 비롯한 가족 누구에게도 관련한 내용을 전혀 발설하지 않았고 눈치챌 수 없도록 철저히 보안을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완성한 영화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큰 긴장감을 느꼈지만 <미나리>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부모님과 누나의 모습 덕분에 이 영화가 그 시절을 지나온 모두에게 위안을 전하고 있음을 알고, 안도하게 됐다.
가장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이야기
외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이 무성하게 자라는 풍경을 목도한 정이삭 감독의 경험은 영화를 통해 시적인 은유로 재생된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이 자라 한 편의 영화가 된 셈이니 그 자체가 시적인 비유가 실체화된 세계나 다름없다. 기댈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으로 건너온 부모의 역사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서사일 것이다. 당시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온 한국인을 비롯한 이방인들이 뿌리내린 아메리칸드림의 시대를 지나온 이들에게 전하는 보편적인 공감대나 다름없다.
역설적인 사실은 <미나리>의 가족이 정작 그들의 뿌리였던 한국인 관객에게는 다소 낯선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그들의 역사는 오히려 미국인보다도 한국인에게 보다 멀게 느껴지는 이방인의 역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선 역사에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건 한국인 배우들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와 한국어 대사의 익숙함을 통해 전해지는 친밀함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나리>는 모두의 굴레이자 울타리였던 가족에 관한 영화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꿈이고, 누군가에게 가족은 삶이다. 어쩌면 다를 게 없을 것 같은 1음절의 절박함에 멀어지다가도 끝내 서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영화 속의 운명공동체가 함께 일상의 희로애락을 감내하는 매 순간을 목격할 관객 모두가 저마다의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미나리>라는 제목의 발음만큼이나 정겹고 애틋한 예감을 통해 안도했을 것이다. 혐오와 경계로 점철된 작금의 세계를 지나는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 미나리 원더풀!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교정>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