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3'로 가는 길, '킹덤: 아신전'에 관하여.
지난 2020년 3월에 공개된 <킹덤 시즌2>(이하 <킹덤2>)에 관한 흥미로운 소문이 돈 건 2019년 말쯤이었다. 전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캐릭터가 깜짝 출연할 예정인데 대단한 톱배우가 등장할 것이라는 게 소문의 골자였다. 넷플릭스에서는 나름대로 극비에 부친 내용이었지만 배우의 이름 석자까지도 언급되며 일파만파 소문이 퍼져나가는 상황이라 넷플릭스 측의 은근한 마케팅 수법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킹덤2>가 공개되면서 파다하던 소문이 억측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시즌1과 마찬가지로 6부작으로 제작한 <킹덤2>의 6화 말미에 전지현이 ‘깜짝 등장’한 것이다.
돌고도는 풍문이 사실로 밝혀지며 비록 김이 새는 ‘깜짝 등장’이 됐지만 시즌2 말미에 전지현이 등장하면서 한 가지 사실은 보다 확실해졌다. <킹덤2>가 결코 끝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 단순히 카메오 출연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얼굴이자 시즌2의 주요 전개가 온전히 소진된 결말 이후에 쿠키 영상처럼 삽입된 분량 안에서 뭔가 새로운 서사를 예감하게 만드는 연출 자체가 새로운 시즌에 대한 예고편이나 다름없었기에 전지현의 출연 자체가 시즌3를 향한 포석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킹덤2>의 화제성과 흥행성을 고려했을 때 시즌3 제작은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시즌2의 결말부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아신이라는 캐릭터의 등장은 여러모로 중요한 포석으로 보였다. 시즌2는 시즌1에서 끝내지 못한 서사를 이어가는 연작에 가까웠다. 시즌2의 끝은 애초에 <킹덤>이라는 세계관을 처음 설계한 도면 안에서 구현할 것을 다 구현해낸 결과였을 것이다. 시즌3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신의 등장은 지난 두 시즌에 없던 이야기의 담보를 마련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시즌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었던 것이다.
일단 <킹덤: 아신전>(이하 <아신전>)은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라는 도입부 타이틀을 통해 알 수 있듯 <킹덤 시즌3>(이하 <킹덤3>)로 진입하기 위한 작은 관문처럼 보인다. 시즌2 말미에서 짧게 등장한 아신이라는 캐릭터의 근본을 설명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난 두 시즌의 서사와 캐릭터의 접점을 만드는 공사 구간인 셈이다. 동시에 <아신전>은 <킹덤>의 근본적인 미스터리인 생사초의 근원지를 밝히는 해설서 역할도 맡고 있다. 그러니까 <아신전>은 아신이라는 인물뿐만 아니라 <킹덤>이라는 세계관의 기원에 관한 프리퀄 에피소드인 셈이다. 지난 이야기가 해소하지 못한 서사적 의문에 답을 하는 동시에 새롭게 확장될 세계관의 방향성을 암시하는 질문을 함께 던지는, 양방향의 야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소품인 것이다.
<아신전>은 북방의 여진족과 국경 수비대 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압록강 유역의 조선 국경지대를 배경에 두고 있다. 실제 역사를 바탕에 둔 가상의 대체 역사물을 표방하는 <킹덤>은 <아신전>에서도 실제 지명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여진족의 출입을 금한 국경지대의 폐사군은 실제 역사에서 여진족을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로 몰아내며 국경을 확장한 세종 때 설치한 국방의 요충지 4군 6진 가운데 4군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영토를 확보한 이후로도 여진족과의 충돌이 잦아 후에 지역민의 이동을 명하고 철폐하며 폐사군으로 불리게 된, 버려진 땅이었다. 그만큼 상상력을 자극하기 적절한 허구의 영토를 찾아낸 셈이다.
이런 지역성을 바탕으로 마련된 <아신전>은 여진족이지만 조선의 첩자 노릇을 하는 아버지 타합(김뢰하)의 어린 딸 아신(김시아)이 생사초에 접근하게 되는 경위를 그리고 끝내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이 과정은 세자 이창(주지훈)의 적인지, 아군인지 정체가 모호했던 아신의 역할을 보다 미스터리하게 끌고 내려가며 시즌3가 지난 두 시즌보다 복잡한 관계의 양상으로 빠져들 것임을 예감하게 만든다. 조선과 여진족 모두를 적대할 수밖에 없는 아신의 사연은 선대의 적폐를 부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이창과 적대와 연대 모든 면에서 열린 캐릭터라는 점에서 시즌3의 열쇠가 될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확실해 보인다.
액션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전지현의 합세는 그 자체로 <킹덤3>의 액션신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은다. 특히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끌어올리는 결말부의 지옥도는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존재감만으로도 캐릭터의 능력과 역할을 납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차후의 역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지만 단순히 <아신전>만을 놓고 평가하자면 맛보기 수준의 활약상만 보여준 인상이라 아쉽기도 하다. <아신전>이 시즌3로 가는 환승역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납득이 되는 바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능력을 보다 호쾌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시청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너무 긴 예고편을 봤다는 것 이상의 특별한 인상을 느끼긴 어려웠을 것이다.
구교환이 연기한 아이다간 역시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줄 같았던 인상과 달리 끝내 역할 자체가 미비해 보여서 의아하게 느껴진다. 이는 90여분의 러닝타임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이유로 작동하기도 하는데 서사적인 개연성을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캐릭터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아신전>이 속편의 기능보다는 전작과 속편 사이에서 전후 과정의 의문을 해소하도록 제시된 가이드북처럼 기획된 소품이라는 면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기우를 시즌3에 대한 의심으로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진 않는다. 다만 화제성을 바탕으로 기획된 속편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가능성을 구축하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캐릭터의 매력을 시즌3에서 보다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선 인물의 능력을 보다 확실하게 묘사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생사초의 기능에 대한 의문도 남는데 애초에 생사초가 사람을 생시로 만든다는 설정 자체가 무리수였기 때문에 이를 납득시키려는 개연성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허점이 노출되는 인상이다. 결국 이러한 근본적인 약점을 기괴한 박력이나 세계관의 스케일로 극복하려는 모양새는 불안하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은 말이 되지 않는 설정 자체로 남겨두고 보다 구체화할 수 있는 이야기나 캐릭터 세공에 보다 공을 들이며 극적인 매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신전>을 통해 확실해지는 것 같다. 좀비물과 같은 재난영화에서 중요한 건 재난 상황의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를 연출하는 능력과 극적인 몰입을 돕는 캐릭터의 매력이지 그 세계의 근원적 미스터리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정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아신전>은 <킹덤>이라는 세계관에 남겨진 숙제일 수도 있고, 찾아온 힌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언어는 <킹덤>이라는 세계관을 향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로지 한국인의 얼굴과 이름으로 채워진 <킹덤>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OTT 서비스를 통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허구처럼 다가온다. <아신전>을 향한 다양한 언어는 결국 그러한 관심의 반증이므로 이 작품이 대중 앞에 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흥미로운 서사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등장한 수많은 허구 가운데 실제와 허구가 공존하는 팩션의 매력을 이 정도로 설득해낸 작품은 없었다. 결국 이 모든 언어는 그로 인한 애정과 응원의 발로인 것이다. 지난 두 시즌을 목격한 입장에서 <킹덤3>가 보고 싶다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