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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ug 14. 2021

2020 도쿄올림픽을 보며 생각한 것들

2020 도쿄올림픽이 남긴 단상들에 대하여.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2020 도쿄올림픽 말이다. 여전히 진정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대에서 전 세계적으로 변이 바이러스까지 확산되는 상황인데 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기천명씩 쏟아지는 도쿄에서 올림픽이라니, 이게 무슨 지구 멸망 카니발 쇼인가. 하지만 올림픽은 열리기로 했고, 개막식 하루 전날까지도 ‘이거 실화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쿄올림픽을 보면서 다른 의미로 이게 정말 실화인가 생각했다. 올림픽이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그렇다. 도쿄올림픽이 없었다면 올여름은 정말 심심했을 것 같다. 2020 도쿄올림픽은 코로나 시대에 찾아온 극강의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런데 2020 도쿄올림픽을 보면서 어딘가 낯선 기분을 느꼈다.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이후로 사상 최초 노골드를 기록했다는 태권도 때문도,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10전 10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야구팀이 매가리 없이 노메달의 수모를 당해서도 아니다. 원래 이랬나 싶을 정도로 메달 색깔에 관대해진 것 같다고 할까. 전통적으로 지난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에게 따라붙는 언어란 일반적으로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위로였다. 하지만 지난 올림픽과 달리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만큼은 메달의 색깔보다도 최선을 다해 멋진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드높고 세찼다.

시작은 양궁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신묘한 경지를 보여주는 한국 양궁의 올림픽 경기는 그래서 부담스러워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남녀 불문하고 한국팀이 따놓은 당상처럼 보이는 금메달을 향한 여정을 옮기는 한 걸음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여겨지기 십상인 탓이다. 그만큼 정적이 감도는 양궁경기장에 난데없이 나타난 포효는 수많은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올림픽 토너먼트보다도 더 힘들다는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고 올라와 처음 신설된 혼성 단체전에 출전한 신궁 국가대표 김제덕, 안산 듀오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짝패였다.


경기 전후로 틈틈이 ‘코오리아 화이티잉!’을 외치는 김제덕의 포효는 이제 들을 수 없어서 섭섭할 지경인데 그 옆에서는 좀처럼 감정적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안산의 포커페이스가 함께 자리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좀처럼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당긴 활시위로부터 쏘아져 나간 활이 ‘텐!’을 외치게 만들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과 전율에서 전해지는 중독성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다 떠나서 이렇게 젊은 재능이 또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가 싶기도 한데 한국 양궁계는 아마 올림픽 역사에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최상단에 놓여야 하는 것 아닐까.

이번 도쿄올림픽을 통해 한국인의 눈길을 끈 종목 중 하나는 아마 펜싱일 것이다. 사실 한국 펜싱이 처음 주목을 받게 된 건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플뢰레 종목에서 한국과 아시아 남자 선수 최초로 펜싱 금메달을 안겨준 김영호 덕분이었다. 그 뒤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며 한국 여자 펜싱 역사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남현희 이후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무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까지 도합 6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선전하며 금메달과 동메달을 하나씩 가져왔다. 펜싱 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펜싱은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과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가져다주며 한국의 효자 종목 노릇을 톡톡히 했다. 흥미로운 건 이중 네 개의 메달이 단체전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이다.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남자 에페 단체전과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시청자의 시선에서 펜싱 경기란 마주한 두 선수가 나란히 보이는 측면의 경기겠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외나무다리처럼 앞뒤로 길게 뻗은 피스트 위에서 상대 선수만을 시야에 두고 대치한 정면의 경기일 것이다. 그만큼 종목과 무관하게 펜싱 개인전은 고독해 보이는 면이 있는데 단체전은 그런 고독함을 조금이라도 무마해주는 인상이라 다른 관점으로 경기를 보게 된다.


펜싱의 모든 종목을 통틀어 3분씩 총 9회 세트로 진행하는 단체전은 한 세트마다 양 팀 선수 중 누군가가 먼저 5점을 내면 다음 라운드로 넘어간다. 예비선수를 포함해 네 명의 선수가 엔트리에 등록되지만 보통 선발 선수 세 명이 주로 경기에 임하기 때문에 보통은 한 선수가 세 번씩 피스트에 올라간다. 그러니까 한 선수가 15점씩을 따내면 각자의 개인전을 벌이는 셈이다. 논리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단체전에서는 선수마다 득점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실점을 하고, 누군가는 득점한다. 그러니까 단체전은 팀원 중 누군가의 실점을 다른 누군가가 득점으로 메우는 경기다. 여느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외나무다리 위에서 싸우는 듯한 펜싱 경기이기에 함께 버티고 나아간다는 한 팀으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인상이었다.

여자배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김연경이 이끄는 ‘원팀’이었던 여자배구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도쿄올림픽의 클라이맥스이자 하이라이트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조별예선에 출전한 총 12개국 가운데 A조에 속한 한국은 세계 13위에 랭크된 팀이다. 같은 조에 있는 브라질은 세계 2위, 세르비아는 6위, 도미니카 공화국은 7위, 일본은 10위다. 같은 조 가운데 세계 32위에 랭크된 케냐를 제외하면 모두가 한국보다 강팀이다. 예선에서 탈락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예선 첫 경기였던 브라질전에서 세트 스코어 3대 0으로 완패할 때에도, 두 번째 경기인 케냐에게 3대 0 완승을 거둘 때에도 이런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질 만한 팀에게 졌고, 이길 만한 팀을 이겼다.


하지만 실전은 기세다. 이변은 예선 세 번째 경기부터였다. 도미니카 공화국을 풀세트 접전 끝에 3대 2로 꺾은 한국팀은 이번 대회의 변곡점이나 다름없었던 일본전에서 전의를 불태웠다. 한일전은 종목을 불문하고 한국 선수들에게 그 자체로 불씨다. 객관적인 실력의 차이 같은 걸 재로 만들어버린다. 이기겠다는 마음만큼이나 지지 않겠다는 마음도 굳건한 것이고, 어쩌면 보다 강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일전이란 그런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을 이기면 8강 진출은 확정이었다. 하지만 진다면 다음 경기에서 난적 세르비아를 만나야 한다. ‘사즉생 생즉사’나 다름없는 경기였다. 그만큼 한국도, 일본도, 치열했다. 랠리가 이어질수록 마음이 타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경기였다. 풀세트 접전 끝에 듀스 승부까지 이어지는 과정 끝에 얻은 승리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상투적인 말의 의미에 생명력을 불어넣고도 남는 것이었다.


세계 4위에 랭크된 터키와의 8강전은 사실상 승리한다는 전제 자체가 기적을 바란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역대 전적은 2승 7패로 열세였고, 최근 국제전에서는 6연패를 기록 중이었다. 심지어 지난 6월에 열린 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도 1대 3으로 패배한 전적이 있었다. 하지 앞서 말했듯이 실전은 기세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그러했듯이, 단기전에서는 말도 안 될 거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1세트까지만 해도 패색이 짙었지만 2, 3세트를 연이어 승리하고 끝내 풀세트 접전 끝에 신승을 거두는 순간 어떤 방식으로든 해당 경기를 지켜보는 모두의 마음에 전율이 일어났을 것이다. 김연경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한 마음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몸을 날리고 일으키는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이기겠다는 간절함이 새어 나왔다. 도저히 응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경기였다. 승부의 결과와 무관하게 함께 그 코트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그렇게 뜨거운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엇보다도 이번 도쿄올림픽을 흥미롭게 만든 건 4등의 재발견이었던 것 같다. 금메달이 아니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던 과거와 달리 도쿄에서는 4등을 차지한 선수들의 밝은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 선수로서는 25년 만에 올림픽 남자 육상 높이뛰기 결선에 진출해 한국 신기록까지 경신한 우상혁은 순위와 관계없이 장대와 대결을 벌이는 인상이었다. 최고의 무대에 서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듯한 모습에서 경기 결과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넘느냐, 못 넘느냐, 그게 문제였다. 남자 다이빙 3m 스프링보드 결승에 출전한 우하람도, 근대 5종 남자 개인전에 출전해 각각 3,4위를 차지한 전웅태와 정진화도, 자유형 200m와 100m에서 각각 7위와 5위를 차지한 황선우도, 모두가 자신과의 레이스를 펼치며 그 결과를 즐기는 인상이라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승부의 가혹함을 환기시키는 경기도 있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팀끼리 맞붙은 배드민턴 여자복식 김소영, 공희용 조와 이소희, 신승찬 조의 경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고 끝내 승패를 가리게 만들고야 만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승패의 희비를 넘어 서로를 끌어안는 네 선수의 모습 또한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스포츠란 희비가 명확한 결과에서 승자가 되고자 안간힘을 써온 선수들의 삶을 바탕으로 연출된 드라마다. 각본은 없어도 드라마가 된다. 명확한 결과가 있지만 그 결과에 닿기까지의 드라마를 살펴보게 만든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들춰보고 싶게 만든다.

이 지난한 코로나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심지어 ‘2020’이라는 숫자를 걸고 찾아온 올림픽이 가져다준 의외의 감동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회복하고 싶은 일상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새롭게 측정하게 만드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대하는 삶이란 결국 이렇게 함께 마주하며 호흡하고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언젠가 다시 돌아올 세상에 대한 염원의 불을 켜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이란 여러모로 많은 비판을 받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순기능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올림픽이 어쩌면 전 세계의 명절 같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 전 세계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으로 서로 마음의 장벽을 쌓아가는 시대에서 한 자리를 주목하고 세계의 수많은 다양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란 의외로 귀하고 중하다는 깨달음. 그것이 이 지난한 시대에서 다음 올림픽을 기대할만한 이유일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부디 만인의 웃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길.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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