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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ug 16. 2021

방탄소년단은 그렇게 BTS가 됐다

아마도 한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팝스타, 방탄소년단이라는 신화에 관하여.

빌보드 ‘핫 100’ 차트 10주 연속 1위. 알만한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이 기록은 해외 팝스타의 것이 아니다. BTS, 즉 방탄소년단이 세운 기록이다. 지난 6월 5일에 발표하자마자 빌보드 핫 100 차트에 1위로 ‘핫샷 데뷔’한 ‘Butter’로 7주 연속 1위를 수성한데 이어 지난 7월 24일에 발표한 신곡 ‘Permission to Dance’ 역시 핫샷 데뷔하며 8주 연속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이어받았고, 미국 현지시간으로 7월 26일에 공개된 차트에 따르면 지난주 7위를 기록했던 ‘Butter’가 다시 1위를 탈환한 뒤 2주 연속 1위를 이어가며 방탄소년단의 차트 1위를 10주간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방탄소년단이 방탄소년단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랄까.


한주 동안 가장 인기 있는 앨범을 발표하는 ‘빌보드 200’과 함께 빌보드 메인차트로 꼽히는 핫 100은 한주 동안 가장 인기 있는 곡을 선정하는 차트다. 그러니까 곡을 발표하자마자 핫 100의 1위를 차지한다는 건 해당 곡의 인기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새롭게 1위를 차지한 곡의 가수가 이미 7주간 차트 1위를 차지했던 곡의 주인공이라면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히 곡의 영향력을 넘어 가수의 영향력 자체가 차트를 지배하는 셈이다. 방탄소년단은 그렇게 빌보드 차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과시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팝스타인 셈이다.

빌보드 차트의 새로운 역사

빌보드 차트와 관련해 방탄소년단이 세운 기록을 살펴보자. 핫 100에서 8주 연속 차트 1위를 차지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표한 두 신곡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가 모두 발표 직후 곧바로 차트 1위에 오르는 핫샷 데뷔를 기록했다는 것 또한 굉장한 사건이다. 심지어 방탄소년단의 핫샷 데뷔는 지난 2020년 9월 5일과 12월 5일에 각각 발표한 ‘Dynamite’와 ‘Life Goes On’ 이후로 네 번째인데 1958년 이후로 지금껏 빌보드 핫 100에서 핫샷 데뷔한 곡은 55곡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방탄소년단의 곡이 무려 4곡이나 포함된 것이다. 핫 100에서 네 곡 이상 핫샷 데뷔한 가수나 그룹은 아리아나 그란데, 저스틴 비버, 드레이크 이후 외에 방탄소년단뿐이다.


그리고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의 곡은 총 5곡인데 이 모든 곡이 차트 1위에 오른 건 불과 10개월 2주 안에 달성한 기록이다. 이는 1987년에 <Bad> 앨범을 발표한 마이클 잭슨이 9개월 2주 동안 해당 앨범에 수록된 다섯 곡을 핫 100 차트 1위에 올린 기록 이후로 최단기간 기록이라고 한다. 참고로 최단기간 기록은 비틀스의 것인데 첫 미국 진출이 이뤄진 1964년에 6개월 만에 다섯 곡을 핫 100 차트 1위에 올린 바 있다. 물론 LP나 CD처럼 물리적 형태의 피지컬 음반 판매량만이 집계되던 과거와 달리 청취에 있어서 물리적 제한이 없는 오늘날의 디지털 음원 시대의 성취를 개별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방탄소년단이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스의 기록과 비견할만한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누구라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핫 100에서 한 뮤지션이 새로운 곡으로 기존 1위곡을 대체하며 1위를 이어가는 배턴 패스 기록 역시 진귀한 것인데 방탄소년단의 이번 기록은 2018년 드레이크 이후로 3년 만에 달성한 것이라고 하며 방탄소년단의 배턴 패스 기록은 비틀스, 테일러 스위프트, 위켄드 등에 이어 14번째라고 한다. 그리고 핫 100에 핫샷 데뷔한 곡으로 7주 이상 1위를 차지한 경우도 퍼프 대디, 드레이크, 방탄소년단까지 단 세 번에 불과한데 그룹으로서 세운 기록은 방탄소년단이 유일하다. 동시에 차트 1위를 차지한 곡을 또 다른 신곡으로 배턴 패스하며 1위 기록을 이어간 뒤 다시 이전의 1위 곡으로 또 한 번 배턴 패스 1위를 차지한 것 역시 최초의 기록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컬이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음원 시장이 없던 1990년대까지 빌보드 차트에 영향을 주는 건 피지컬 앨범 판매량과 라디오 방송 횟수였다. 엄연히 북미에서 활동하지 않는 가수의 노래는 빌보드 차트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비틀스나 롤링스톤스 같은 전설적인 밴드 역시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 명명된 미국 진출에 성공한 뒤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디지털 음원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됐고, 빌보드 차트에서도 이를 집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2005년부터 디지털 음원의 유료 다운로드 횟수를, 2007년부터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횟수를 차트 집계에 반영했고, 최근에는 유튜브 조회수까지도 반영하는 추세다.


이러한 방향은 빌보드의 지향점이 로컬이 아닌 글로벌에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음악 차트의 영토를 북미 지역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너른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야심에 가깝다. 이를 테면 로컬이 아닌 글로벌이 되기 위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외국어영화상 부문을 국제장편상 부문으로 바꾼 것처럼 빌보드 차트 역시 디지털 음원 소비를 적극 반영한 집계를 통해 국적성의 한계를 탈피한 글로벌 차트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는 미국에 거주하지 않아도 가능한 음원 소비로 빌보드 차트 집계에 영향을 미치는 팬덤의 저변이 너른 뮤지션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방탄소년단이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하게 만든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건 압도적인 음원 다운로드 수다. 방탄소년단의 핫 100 차트 10주 연속 1위를 견인하는 동시에 9주 1위를 달성한 'Butter'만큼이나 사랑 받고 있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Good 4 U'는 11주째 핫 100 차트에 머물며 여전히 2위에 랭크돼 있는데  ‘Good 4 U’는 스트리밍 횟수와 라디오 방송 횟수에서는 ‘Butter’에 비해 높은 지수를 기록했지만 음원 다운로드 횟수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스트리밍 횟수는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 같은 북미 기반의 음원 서비스 플랫폼의 집계가 중요하지만 다운로드 지수는 공식 웹사이트를 통한 무제한 다운로드 횟수를 포함하기 때문에 팬덤의 화력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아미'가 쏘아 올린 슈퍼스타

방탄소년단의 공식 팬클럽 ‘아미(A.R.M.Y)’는 방탄소년단의 친위대를 자처하는 막강한 팬덤이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이 그러하듯 방탄소년단 역시 공식 석상에서 아미를 향한 애정 어린 헌사를 바치곤 한다. 한국을 넘어 미국과 일본 등 국적과 인종과 언어가 다른 팬덤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이고 조직화된다. 기존에도 글로벌 팬덤을 자랑하는 한류 기반의 K팝 아이돌 그룹이 있었지만 방탄소년단의 아미는 규모 면에서 여느 K팝 팬덤과 차원이 다른 화력을 자랑한다.


방탄소년단의 신곡이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연이어 ‘핫샷 데뷔’할 수 있었던 건 아미와의 강력한 유대감이 힘을 발휘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미는 방탄소년단의 신곡이 나오기 전 팬클럽 차원에서 공식적인 모금 활동을 하며 방탄소년단의 신곡 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끌어올리고, 매주마다 어느 정도 횟수로 다운로드 횟수를 유지해야 차트 1위 수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 치밀하게 계산하며 팬클럽에 지령을 내리기도 한다. 덕분에 이런 활동이 편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를 위해 자행하는 행위의 결과이므로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조직적인 활동이 빌보드 핫 100 차트 핫샷 데뷔의 성과로 귀결된다는 건 오히려 방탄소년단의 팬덤이 얼마나 거대한가를 방증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처음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고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던 2017년 무렵에는 이런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누구도 몰랐던 일인 것처럼 방탄소년단의 오늘도, 내일도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여정이자 성취일 것이다. 한류나 K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래로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방탄소년단은 어쩌면 한류나 K팝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 없는, 한국에서 탄생한 첫 번째 팝스타인 것이다. 그리고 동시대에 그런 역사를 목격할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국뽕’은 이럴 때 마시라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교정> 8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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