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디스패치'에서 만날 수 있는 웨스 앤더슨이라는 궁극의 스타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채우는 것이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거듭 이어지는 강박적인 좌우 대칭 구도 안에 자리한 모든 것이 하나 같이 눈길을 끈다. 하나하나 떼어 액자로 걸어 두고 싶은 장면이 쉼 없이 이어진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량만큼이나 시각적인 자극이 그득한 프레임 구석까지 분주하게 시선을 움직여야 한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란 그런 세계다. 감각의 만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개봉한 <프렌치 디스패치>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웨스 앤더슨의 감각을 증명하는 또 한 번의 만찬이다.
가상의 도시 프랑스 앙뉘에서 발행한다는 미국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를 만드는 편집부와 저널리스트들에 관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웨스 앤더슨을 일찍이 청년 시절부터 사로잡았던 매거진 <뉴요커>에 바치는 헌사의 영화다. 실제 <뉴요커> 매거진 편집부의 풍경을 반영해 영화 속 미장센을 채웠고, 실제 <뉴요커> 편집자와 유명 저널리스트를 모델로 영화 속 캐릭터를 구상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답게 스크린 속에서 꺼내 갖고 싶은 소품들만큼이나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멋진 스타일을 자랑하는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 탁월하고 흥미로운 볼거리다.
웨스 앤더슨의 단골 배우 빌 머레이가 연기한 <프렌치 디스패치>의 편집장 아서 하위처 주니어는 <뉴요커> 초대 창간인이자 편집장인 해럴드 로스를 참고한 인물이다. 밝은 레몬색 셔츠 위에 실크 재질의 갈색 베스트를 입고 세 가지 컬러의 스트라이프 타이를 맨 그의 옷차림은 경쾌함과 엄격함이 공존하는 그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만 같다. 뛰어난 재능을 만끽하면서도 탁월한 필자를 엄선하는 그는 뛰어난 문장으로 구성된 스토리를 한 줄도 자르지 않고 반영한다.
동시에 오웬 윌슨이 연기하는 여행 저널리스트 사제락은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을 누비는데 비비드한 녹색 바지 밑단을 길게 올린 노란 양말에 넣고 옥스퍼드 스타일의 브로그를 신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시에 언제나 납작한 베레모를 눌러쓰고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프렌치 시크 그 자체랄까.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멋스러운 개성을 자랑하는 <프렌치 디스패치>는 누군가의 개성에 부합하는 스타일을 제안하는 룩북 같은 영화라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
한편 컬러풀한 소품과 의상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서 일관성 있게 등장하는 유니폼 같은 의상과 소품은 다채로운 스타일로 가득한 그 세계에서 이색적인 수식어이자 이질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역설적인 개성을 부여한다. <로얄 테넌바움>의 트레이닝 복,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의 선원복과 주황색 비니, <다즐링 주식회사>의 루이비통 클래식 트렁크, <문라이즈 킹덤>의 스카우트복,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호텔리어복과 군복 그리고 죄수복까지,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서는 개성 있는 개개인의 멋진 스타일 곁에 동일한 옷차림을 한 여느 무리들이 눈에 띄게 모여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 역시 마찬가지다. 교도소의 교도관복과 죄수복 그리고 경찰복까지, 한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을 복식만으로 뚜렷하게 증명하는 이들이 저마다의 챕터를 가득 메운다. 이로서 자유로운 점점의 개성이 모인 점묘화 같은 세계의 한 편에 몰개성으로 점철된 다른 세계가 단색화처럼 자리하는 것만 같다. 웨스 앤더슨이 그리는 세계란 이처럼 정면과 이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등을 돌린 채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마주하는 세상이다. 대립하거나 충돌할 수도 있지만 결국 함께 어우러지고 맞물리며 다채로운 삶의 단면들이 콜라주하는 세계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오스카 의상상 트로피를 두 번이나 거머쥔 의상감독 밀레나 카노네로와 웨스 앤더슨이 네 번째 합을 맞춘 영화이기도 하다. “훌륭한 감독은 작품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는데 웨스 앤더슨도 마찬가지였다.” 밀레나 카노네로의 말은 웨스 앤더슨이 추구하는 의상이 캐릭터에게 시대의 취향과 공기를 입히는 궁극의 미장센임을 의미한다.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도 그 의미는 유효하다. 웨스 앤더슨이라는 이름이 보장하는 스타일리시한 여정이 가장 최근에 다다른, 다정다감하면서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궁극의 스타일이다.
(코오롱몰 <OLO 매거진>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