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의 싸다구보다 중요한, 올해 오스카에서 나타난 징후에 관하여.
또 한 번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났다. 올해를 포함해 지난 세 번의 오스카는 어쩌면 한국인에게는 다시 기약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이벤트였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기생충> 팀과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이 수상자와 시상자로 연이어 등장한 세 번의 오스카는 한국영화사에서 두고두고 곱씹을 즐거운 자리였다. 게다가 <코다>에 출연해 남우조연상 부문 후보로 올라 오스카 최초로 농인 배우 수상자가 된 트로이 코처를 위해 수화로 수상 발표를 한 윤여정의 사려 깊은 시상 역시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크리스 록의 ‘썩은 농담’에 작렬한 윌 스미스의 ‘라이트 싸다구’가 올해 오스카와 관련한 모든 이슈를 불명예스럽게 잡아먹는 듯한 상황은 유감이지만 올해 오스카 수상 결과에는 분명 짚어볼 만한 특이점이 있다.
올 것이 왔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코다>는 OTT 서비스 플랫폼인 애플TV플러스에서 배급한 스트리밍 영화다.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OTT 영화가 됐다. OTT 영화의 선전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꼽혔던 <파워 오브 도그>를 비롯한 후보작 열 편 가운데 세 편이 OTT 영화로 분류됐고, 후보작 가운데 화제성이나 예술성 면에서도 두각을 드러낸다고 평가받고 언급되는 작품도 대체로 OTT 후보작으로 수렴했다. 그밖에도 덴젤 워싱턴이 주연을 맡은 애플TV플러스 영화 <멕배스의 비극>과 앤드류 가필드와 올리비아 콜맨이 각각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영화 <틱, 틱… 붐!> <로스트 도터>도 배우 부문 후보에 올랐다.
<코다>의 수상이 완전한 이변인 것만은 아니었다. <코다>는 오스카 레이스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주요 시상식으로 꼽히는 미국제작자협회상, 일명 PGA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파워 오브 도그>의 강력한 경쟁작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감독상 후보에 지명되지 못한 작품상 후보가 상을 받는 사례는 드물었다. 물론 없던 일은 아니었다. 2019년 넷플릭스 영화 <로마>가 감독상을 수상했을 당시 작품상을 수상한 건 감독상 후보로 지명되지 않았던 <그린 북>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넷플릭스 영화가 유력한 작품상 후보가 될 때마다 일어나는 이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오스카의 넷플릭스 저주 혹은 넷플릭스 오스카 징크스라 일컬어도 좋을 것 같다.
OTT 서비스 플랫폼에서 배급하는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로마>가 감독상과 촬영상을 수상한 2019년부터였다. 그 뒤로 2020년에는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아이리시맨>과 노아 바움백이 연출한 <결혼 이야기>가, 2021년에는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맹크>와 아론 소킨이 연출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2022년에는 제인 캠피온이 연출한 <파워 오브 도그>와 아담 맥케이가 연출한 <돈 룩 업>이 작품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여느 개봉작보다도 시네마틱 한 예술성으로 무장한 걸작 영화를 넷플릭스가 연이어 내놓은 것이다. 이 모든 작품은 한시적으로 극장에 개봉하는 제한적 상영 후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공개됐다. 사실상 극장보다 안방에서, 스크린 대신 여타의 디바이스로 시청했을 가능성이 큰 영화들이 거듭 아카데미 최고 부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시작된 팬데믹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극장 통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2020년 미국의 극장 매출은 전년과 비교했을 때 81.4%나 감소한 21억 불 수준이었다. 2021년에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같은 화제작이 개봉하면서 44억 불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100억 불 이상의 매출을 올리던 팬데믹 이전의 수준과 비교했을 때에는 여전히 낮은 수치다. 텐트폴 영화로 분류되는 블록버스터 화제작들이 개봉을 미룬 탓이기도 했지만 팬데믹 여파 속에서 극장 자체가 문을 닫기도 했고, 관객들이 극장을 찾길 기피하는 현상이 이어지며 극장과 관객의 심리적 거리가 눈에 보일 정도로 멀어진 탓이다. 이는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코다>는 본래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영화였다. 한국에서도 작년 8월경에 정식 개봉했고 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8월에 한시적으로 개봉했지만 개봉과 동시에 애플TV플러스에서 공개됐다. 미국 내 배급 판권을 애플TV플러스에서 구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애플TV플러스에서 <코다>를 볼 수 없다. 애플TV플러스의 한국 서비스가 결정되기 전에 국내 수입사애 의해 정식 개봉한 <코다>는 이미 국내에서 IPTV를 비롯한 2차 판권 서비스까지 시작된 상황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코다>가 애플TV플러스 영화가 아닌 것이다. 반대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시카 차스테인의 <타미 페이의 눈>은 국내에서 극장 개봉 대애플TV플러스의 한국 서비스가 결정되기 전에 국내 수입사애 의해 정식 개봉한 <코다>는 이미 국내에서 IPTV를 비롯한 2차 판권 서비스까지 시작된 상황이다.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 역시 극장 개봉 대신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됐다. 지난 2020년 1월에 개봉한 픽사의 <소울>이 팬데믹 상황에서도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는 놀라운 선택이다. 물론 이는 국내 사정에 불과하다. <소울>은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극장 개봉을 건너뛰고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됐다. 극장 개봉작에만 후보작 선정 자격을 부여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소울>이 장편 애니메이션 상과 음악상을 수상한 건 지난 2021년부터 팬데믹 상황의 특수성을 인정해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된 작품까지 후보작에 오를 기회를 제공한 덕분이다.
아마 이런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디즈니 플러스나 HBO맥스 같은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 배급사의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할 권한을 가진 OTT 서비스 플랫폼은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의 실익을 끊임없이 저울질할 것이다. 넷플릭스와 애플TV플러스처럼 독자적인 콘텐츠 제작과 확보에 나서야 하는 경우에는 직접적인 제작 투자 외에도 개봉을 앞둔 영화 판권을 사들여 스트리밍 플랫폼의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할 것이다. 애플TV플러스가 <코다>의 판권 구입에 들인 돈은 2500만 달러였다. <코다>의 오스카 캠페인을 위해 1천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코다>의 제작비는 1천만 달러가 안 되는 금액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력을 지닌 OTT 서비스 플랫폼의 투자는 웬만한 메이저 스튜디오 배급사의 수준을 압도한다.
어쩌면 관객 입장에선 알게 뭔가 싶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볼 수 있는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도 때가 되면 손쉽게 집에서 볼 수 있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데 무리가 없는 시대라는 의미다. 하지만 극장 개봉 이후 IPTV나 다운로드,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부가 판권 시장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는 상황과 극장 개봉을 건너뛰고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가 늘어나는 상황은 결코 같지 않다. 이는 결국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제작하는 산업이 고려해야 할 다양성의 한 부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극장주의자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준비 중인 신작 <오펜하이머>의 제작 배급 권한 계약을 오랜 파트너였던 워너브라더스 대신 유니버설 픽쳐스와 맺은 것도 이런 반발 때문이었다. 지난해 워너브라더스는 자사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될 때 자사 OTT 플랫폼인 HBO맥스에서도 동시에 공개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극장 개봉을 옹호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편 마틴 스코세이지는 파라마운트를 비롯한 메이저 스튜디오 배급사에서 제작을 거절당한 <아이리시맨>에 대자본을 투자하고 감독의 연출 권한을 자유롭게 보장한 넷플릭스에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극장 개봉이 한시적으로 이뤄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여러모로 과도기적인 시대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펜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맞물려 벌어진 한시적인 혼란일 수도 있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당장 극장이 사라질 리도 없고, 아마 극장은 긴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과도기를 지나는 입장에서는 과도기 이후의 상황에 대한 염려를 피할 길이 없다. 넷플릭스에서 만들지 않으면 볼 수 없을 걸작이라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영화의 처지가 아니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의 처지이기도 하다. 극장은 영화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결국 영화를 보는 관객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극장의 영화가 사라진다는 건 관객을 위한 극장도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무방한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실로 허무한 일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후자 쪽이다. 극장 개봉을 건너뛴 영화를 보기 위해 OTT 채널을 뒤지는 건 왠지 허무한 일이다. 부디 팬데믹과 함께 도래한 일시적 현상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제발.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1st Look' 매거진 4월 첫 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