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는 한국인이 모르는 한국영화일 것이다.
지난 5월 17일에 개막하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여섯 번째 칸 경쟁부문 초청작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첫 한국영화다. 사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영화를 연출할 계획이라는 소식은 2019년쯤 사석에서 우연히 듣게 됐다. 배우 송강호를 주연으로 한 영화라는 소식도 함께 들었다. 난데없는 일은 아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국 영화계와 활발히 교류해온 지한파 감독이다. 게다가 2019년에는 이미 까뜨린느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가 주연을 맡은 프랑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연출한 뒤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게 된 건 일찍이 줄리엣 비노쉬의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9년 당시 몇몇 인터뷰나 기자회견을 통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밝힌 바에 따르면 10여 년 전부터 줄리엣 비노쉬로부터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연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일본이 아닌 타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실감을 할 수 없어서 쉽게 수락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칸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내적인 자신감을 얻었다. 일본이 아닌 타국에서도 자신이 만든 영화가 통하는 언어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각성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줄리엣 비노쉬에서 시나리오를 건넨 건 2015년의 일이었다. 그가 원하는 배우는 줄리엣 비노쉬만이 아니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분명 까뜨린느 드뇌브를 위한 영화다. 시나리오 첫 페이지에도 줄리엣 비노쉬와 함께 까뜨린드 드뇌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애초에 모녀 관계를 연기해줄 두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목표인 영화였다. 그렇게 고국이 아닌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로 만들어질 영화의 첫 수를 뒀다. 그런데 2015년 당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구상하는 영화의 언어에는 프랑스어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브로커> 기획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정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작은 역시 배우였습니다.’ 지난 2020년 8월에 공식 발표된 <브로커> 제작 소식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밝힌 제작 배경은 앞서 인용한 두 문장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배우는 일찍이 부산국제영화제와 도쿄에서 각각 만난 송강호와 강동원이었다. 언젠가 함께 영화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했던 막연한 인사가 2015년에 이르러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찍이 <공기인형>으로 함께했던 배두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캐스팅 제안에 응했다. 그렇게 세 배우가 출연하는 한국영화를 만든다는 계획이 먼저 찾아왔다. <브로커>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완성된 건 그 이후였다.
그러니까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 모든 이름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던 건 거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각본을 쓰고, 연출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극영화 연출 데뷔작인 <환상의 빛>을 제외한 모든 작품의 각본을 직접 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동시대 최고의 작가주의 감독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기회라는 건 배우 입장에서는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이창동 같은 거장 감독의 영화를 거듭 경험해온 송강호 같은 배우에게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은 들여다보고 싶은 새로운 경지였을 것이다.
데뷔작 <환상의 빛>부터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최고작 <어느 가족> 그리고 최근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열네 편의 영화로 일관되게 응시해온 소재는 바로 가족이다. <브로커> 역시 한국의 ‘어느 가족’을 그리는 영화로 보인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가 평범한 가족애 같은 것을 자아내기 위한 작품을 만들었을 리 없다. <브로커>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는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고아 입양 브로커가 친모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늘 등장하는 혈연의 딜레마와 유사가족의 아이러니가 또 한 번 새로운 이야기 양식 안에서 익숙하듯 새롭게 변주되는 인상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그리는 가족은 종종 혈연이라는 유대감으로부터 방출되거나 탈출했거나 해체된 존재가 모여 이룬 대안적인 풍경으로 제시된다. 그의 최고작이라 할 수 있는 <어느 가족>은 낡은 집에서 홀로 살던 할머니를 지붕 삼아 모인 가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일찍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에 명성을 더한 <아무도 모른다>는 부모로부터 유기견처럼 방치된 어린 네 남매의 일상에 관한 영화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규격이 붕괴된 사회의 한편에 방치된 아이들의 삶을 묵묵히 관찰하기도 하고, 어느 구석으로 모여든 가족적 연대를 살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 어떤 질문이 맺힌다.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린 남매들의 일상은 점차 가혹해진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가족이란 사회로부터 방치된 그늘처럼 드리우는 운명이 되기도 한다. 한편 가족처럼 한 집에 모여 살지만 실제로 가족이 아닌 이들의 밝고 유쾌한 일상은 그것이 끝내 백일몽 같은 행복이었다 해도 그 순간에 자리한 위안만큼은 결코 가짜가 아닐 것 같다는 믿음을 안긴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늘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잘못됐다고 여겨지는 것이 모두 다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가족이 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당연하지도 않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렇게 각기 다른 가족의 군상을 응시하며 이 세계를 보다 너르게 사유한다.
생생한 거짓말처럼 다가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야기는 실상 현실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도쿄에서 벌어진 아이 방치 사건에서, <어느 가족>은 부모의 사망진단서를 제출하지 않고 연금을 부정 수급해왔던 어느 가족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초기작인 <디스턴스>는 옴 진리교의 테러 사건을 직접적으로 인용한 작품이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1970년대 도쿄에서 유아가 뒤바뀐 사건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커>가 입양 브로커를 소재로 둔 한국영화라는 점은 일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다.
<브로커>에서 입양 브로커가 운영한다는 베이비 박스는 한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서울에 자리한 어느 교회의 목사가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아이를 유기하는 부모들에게 차라리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이는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을 자랑하는 한국이 20세기부터 꾸준히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어떤 기록과 연관된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2020년 기록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에서 고아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로 우크라이나와 중국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고아가 된 한국 아이들은 국내보단 해외로 입양될 확률이 현저히 높다. 한국은 고아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육성할 실력이 여전히 현저히 낮은 국가다.
<브로커>는 아마 그런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한국인이 외면한 한국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마냥 불편하게 여겨지는 영화일지도 모르지만 거장의 통찰력으로 마주하게 될 한국의 현실은 그 자체로 귀한 체험일 것이다.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 사회의 깊은 그늘을 들여다볼 뜻밖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낯선 이국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하고 견지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거장의 시선과 관점을 드디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팬이라면 흥분되는 순간일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거장이 발견한 한국이 실로 궁금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곳은 아마 한국인이 처음 보는 한국일 것이다. 실로 궁금하다.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1st Look' 매거진 5월 두 번째 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