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격세지감이다. 지난 4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함께 진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로 제75회를 맞이한 칸영화제는 예년처럼 5월 개막을 결정했다.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지난 2년간 제 자리를 찾지 못했던 영화제를 다시 정상화할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비로소 정상궤도를 회복하는 칸영화제의 중심에 한국영화 두 편이 자리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시간으로 지난 5월 29일 이른 오전에 낭보가 전해졌다.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브로커>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한국영화 두 편이 모두 수상작으로 호명되는 최초의 역사가 된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박찬욱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받은 트로피만 벌써 세 개다. 경쟁부문에 네 번 진출했는데 그중 세 번 호명됐으니 수상 확률이 75%에 달한다. ‘깐느 박’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물론 영화제 수상 여부가 영화의 가치를 온전히 대변하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전 세계 영화 산업 안에서 동시대 최고의 예술적 성취를 평가한다는 국제영화제로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에서 세 번이나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건 분명 자랑할 만한 업적일 것이다. 게다가 지난 2004년 <올드보이>로 그랑프리라 불리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후로 2009년에는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올해에는 감독상을 수상했으니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작가적 역량을 유지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순히 세 차례 상을 받았다는 것을 넘어 자기 세계를 구축해온 거장의 시간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 <브로커>로 일곱 번째 칸 레드카펫을 밟은 송강호는 한국 남자 배우 최초로 칸의 호명을 받았다. 사실 송강호는 늘 거기 있었다. 칸영화제에 방문한 일곱 번 가운데 네 번이 경쟁부문 진출작 출연배우 자격이었고, 네 편의 경쟁작은 어떤 식으로든 수상작 반열에 올랐다. 지난 2007년 한국 배우 최초로 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밀양>의 전도연 옆에는 송강호가 있었다. 2009년에는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과, 2019년에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영화 수상을 돕는 칸영화제 전문 브로커나 다름없는 배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송강호가 <브로커>를 통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건 정말 상징적이다.
사실 송강호의 지난 경력은 2000년대 이후로 한국 영화계가 쌓아온 다단한 지층과도 같다.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김지운 등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낸 대가들의 성취를 위한 영화적 밀도를 채워주는 치트키 같은 배우였다. <공동경비구역 JSA>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괴물> <우아한 세계> <밀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 <의형제>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사도> <밀정> <택시운전사> <기생충> 그리고 <브로커>까지, 한국영화의 내실을 갖추고 외연을 넓히는 화룡점정 같은 역할을 도맡았다. 예술적 성취와 상업적 성과를 모두 담보하고 책임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배우로서 한국 영화계의 해결사 노릇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로 본격적인 경력을 쌓아온 영화적 동지나 다름없는 박찬욱과 송강호가 칸영화제 수상자로 나란히 선 모습은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운, 한국영화사의 결정적 순간처럼 보인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박찬욱이라는 거장의 역사를 위한 발판이 된 작품이다. 그에 앞서 <달은… 해가 꾸는 꿈>과 <3인조>와 같은 작품을 연출했지만 비평 면에서도, 흥행 면에서도 좋은 평가나 성적을 얻지 못한 박찬욱 감독은 남북 분단의 이데올로기를 위트와 페이소스의 드라마로 승화시킨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평단과 대중 모두를 사로잡았다.
주연을 맡은 송강호의 입지도 달라졌다. 극단 연우 무대에서 배우 경력을 시작한 송강호의 영화 데뷔작은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다. 주연을 맡은 김의성의 추천으로 단역을 맡았다. 하지만 진정한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살벌한 건달 연기로 놀라운 인상을 남긴 뒤 송능한 감독의 <넘버 3>,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통해 거칠면서도 신선한 위트를 자아내는 면모로 차차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2000년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과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송강호라는 배우를 한국 영화계의 중심축으로 밀어 넣은 최초운동에너지 같은 영화였다. <반칙왕>을 통해 원톱 주연으로서 작품을 끌고 나가는 재능이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한 동시에 <공동경비구역 JSA>로 진중한 성격파 배우로서 깊이 있는 역량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밀착한 코미디와 페이소스를 능수능란하게 전환해내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게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성공적인 경력을 함께 만들어낸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는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전대미문의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합작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반주류적인 정서와 풍자적인 미학이 기이한 위트를 자아내는 동시에 서스펜스와 페이소스로 뒤엉키는 듯한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는 실로 괴력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딸을 유괴해 죽인 용의자를 직접 뒤쫓는 아버지로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송강호는 처절하면서도 잔혹하고, 연민을 자아내면서도 폭력적인 업보를 부정할 수 없는 딜레마 그 자체를 묵묵하면서도 처연하게 연기해낸다. 불분명한 선악의 경계 속에서 뒤엉킨 인과의 꼬리를 쫓아가는 연쇄적인 파국은 잔혹하지만 명확하고, 가혹하지만 매혹적이다. 비록 대중적으로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올렸지만 박찬욱이라는 거장의 세계를 여는 진정한 출발선이었다. 거기 송강호가 있었다.
뒤늦게 명명된 복수3부작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올드보이>는 <복수는 나의 것>으로 시작한 박찬욱이라는 세계의 첫 번째 폭발이었다. 한국영화사가 세계영화사로 중첩되는 첫 번째 접점이었다. 물론 <올드보이> 이전에도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 있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진출한 한국영화인 <춘향뎐>과 한국영화 최초로 칸 경쟁부문 수상작으로 호명돼 감독상을 수상한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 말이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고전적인 전통에 기반한 한국영화를 세계영화사에 제시하는 고전적인 인상이었다면 <올드보이>는 보다 현대적인 풍경 안에서 제시하는 한국영화와 세계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였다. 폭력적인 카타르시스와 B급 취향으로 무장한 컬트적인 정서 그리고 신화적인 비극으로 점철된 관계의 알고리즘. 딱히 어느 쪽도 주류에 편입된다고 말할 수 없는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감각과 서사가 기이하면서도 매혹적으로 맞물려 흐른다.
사실 <올드보이>의 칸영화제 수상은 예상할 수 없었던 이변 중의 이변이었다. 본래 비경쟁부문으로 초청됐다가 뒤늦게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변경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칸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강력한 지지로 인한 결과였던 것이라 추측된다. 결국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영화적 지위를 얻은 동시에 지금까지도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깊게 각인된 세계적인 한국영화로서 지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올드보이>와 함께 시작된 한국영화의 흐름은 웰메이드라는 기치 아래 세련된 기술적 완성도를 갖춰가는 동시에 다양한 화술을 발휘하는 작가주의 감독들의 역량을 등에 업고 세계 영화계에서 점차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를 비롯해 전 세계 영화팬들 입에 한국 감독의 이름이 심심찮게 오르내리며 한국영화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심심찮게 느낄 수 있었다.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그전까지 꾸준히 이어져온 어떤 맥락 덕분일 거예요. 지난 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2000년대 초반에 임권택 감독님께서 <취화선>(2002)으로 칸에서 처음 감독상을 받으시면서 일종의 포문이 열렸고, 그 이후로 좋은 의미로 여러 가지 일련의 사건이 있었잖아요. 박찬욱 감독님이 <올드보이>(2003)로 칸에서 상을 받으셨고, 이창동 감독님도 칸이나 베니스에서 수상하시면서 한국영화가 칸 경쟁부문 후보가 되는 게 놀랍지 않은 일이 됐죠. 그리고 북미 상황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짐이라 볼 수 있는 흐름이 있었어요.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그리고 고인이 되신 김기덕 감독님까지, 북미 평론가나 업계 관계자들에게 꾸준히 축적된 이미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위기나 이미지의 정점에 <기생충>이 자리한 덕분에 제가 주인공처럼 된 거죠. 결국 저 혼자만의 역량으로 이룬 게 아니고 2000년대 이후로 한국의 많은 감독님과 영화인들이 쌓아온 성과가 어우러진 결과라는 거예요.”
지난해 봉준호 감독과 비대면 인터뷰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들었던 내용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한국영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는 상황은 단지 한두 작품의 선전으로 이뤄진 결과가 아니다. 모든 과정이 켜켜이 쌓여 한국영화라는 두터운 인식을 끌어올리고 강렬하게 각인시킨 덕분이다. 그리고 송강호는 앞서 언급한 감독들과 함께 한국영화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일등공신으로 함께 나열해야 마땅한 이름이다.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무릎을 꿇고 송강호에게 트로피를 헌정하는 듯한 세리머니를 펼친 건 웃자고 던진 농담 같은 게 아니다. 그야말로 한국 영화계의 오늘을 만나게 해 준 보물 같은 배우를 향한 진심이 담긴 헌사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강호의 칸 남우주연상 수상은 한국영화가 진정한 세계 영화사의 일원이 됐다는 인식을 확신하게 만드는 강력한 근거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성취는 한국영화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준 감독과 배우만큼 열성적인 한국 관객의 덕이기도 하다.
“이런 성과나 이런 결과가 영화 팬 여러분들의 사랑과 성원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한국영화를 끊임없이 예의 주시해 주시고 성원 보내주시는 대한민국 영화를 사랑해주시는 영화 팬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칸에서 귀국한 송강호가 공항에 마중 나온 기자들 앞에서 남긴 말처럼 한국영화가 마주한 오늘의 영광은 뛰어난 재능을 바탕에 둔 도전과 시도를 통해 도약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도전과 시도는 이를 기꺼이 응원해온 영화팬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영화 산업의 활기는 한국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의 들숨과 함께 호흡하는 날숨 같은 것이었다. 송강호의 수상소감은 그의 호연과 열연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잘 아는 배우였다는 점에서 귀감이 된다. 이는 정말 귀한 재능이자 덕목이다.
영화는 자본의 예술이다. 오늘날 한국 영화계가 맞이한 경사는 자본의 선순환 구조로 이뤄진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생충>의 투자배급사였던 CJ ENM은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열두 편의 영화를 칸영화제에 출품했는데 이는 한국 영화배급사 가운데 최다 초청 기록이다. 그중 <밀양> <박쥐> <아가씨> <기생충> <헤어질 결심> <브로커>까지 여섯 작품이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다섯 작품이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여 년간 쌓아온 한국 영화계의 오늘이 르네상스라면 CJ ENM은 나름대로 메디치가 같은 후원자 노릇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함께 즐기고 있는 한국영화의 영예로운 오늘은 수많은 이들의 역사인 것이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만의 영광이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 종사하는 영화인과 한국영화를 응원해온 한국 관객 모두의 영예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영화는, 궁극적으로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이 질병을 이겨낼 희망과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 영화인들도 영화관을 지켜내면서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 믿는다”는 박찬욱 감독의 바람처럼, 다시 영화관에 모일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역사가 쌓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역사일 것이다.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1st Look' 매거진 6월 첫 번째 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