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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n 07. 2022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3부작'과 '보이후드'로 체험하는 순간들.

12년 동안 만든 영화가 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나 다룰 법한 거짓말 같지만 참말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연출한 <보이후드>는 2002년 5월부터 2013년 9월까지, 12년에 걸쳐 촬영됐다. 영화 촬영이 시작될 때에는 일곱 살 소년이었던 주연배우 엘라 콜트레인은 촬영이 끝날 때에는 열아홉 살이 돼 있었다. 물론 12년 내내 영화를 찍었다는 건 아니다. 실질적으로 촬영을 진행한 날은 45일에 불과했다. 만날 때마다 영화상에서 15분 분량으로 편집할 수 있을 만큼 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만날 때마다 배우는 자라거나 늙어 있었고, 그와 함께 영화도 자연스레 나이 들어갔다. 자전하는 배우의 생과 공전하는 영화의 삶이 기이하게 어우러졌다.

“많은 영화가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건 성장을 결정짓는 한 순간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는 그런 명확한 서사가 없다.” 에단 호크의 말처럼, 메이슨이라는 소년이 청년의 문턱으로 들어서기 직전까지 12년의 삶을 파편적으로 이어 붙인 <보이후드>는 평범한 일상의 편린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성장이라는 대서사의 너비를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고, 영화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외면하는 것 같지만 <보이후드>는 ‘평범한 삶을 어떻게 영화로 담아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향한 성실하고 비범한 응답이다.


“난 늘 내가 13살짜리 꼬마라고 생각하거든.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는지 잘 모르는 꼬마 말이야. 그래서 인생을 사는 척하면서 어른이 돼야 할 때를 대비해 메모를 해두는 거지.” 리처드 링클레이터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에 나오는 이 대사는 <보이후드>에 대한 막연한 초안처럼 들린다. <비포 선라이즈>는 유럽을 관통하는 기차 유레일패스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만 하루 동안 겪는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물이다.


“정신 나간 생각이라는 건 아는데 너한테 물어보지 않으면 이 생각이 평생 날 쫓아다닐 거야.” 비엔나에서 정차한 기차에서 내리려던 남자가 말했다. 그가 말을 건넨 여자는 파리로 가야 했다. 그러니까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애초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것부터 그런 일이었다. 기차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남자의 제안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지만 달콤한 구석이 있었다. 그와 나눈 대화는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고, 말이 통했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유레일패스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남자 제시(에단 호크)와 프랑스 여자 셀린(줄리 델피)은 비엔나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비포 선라이즈>는 유죄 판결을 받아야 마땅한 영화다. 로맨틱, 성공적인 기차여행을 꿈꾸며 책 한 권을 들고 유레일패스에 탑승했다가 숙면만 취했다는 이들이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지구 두 바퀴를 돌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영화에는 종신형을 선고해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수장고 깊숙이 봉인해야 한다. 당연히 농담이다. 하지만 <비포 선라이즈> 덕분에 유레일패스에는 분명 슬픈 전설이 있을 것만 같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같은 운명적 연인을 만나 충동적인 만 하루의 낭만을 꿈꾼 전 세계 청춘남녀의 쓸쓸한 정념이 일렁일 것만 같다.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고, 때가 되면 전설 따윈 믿지 않는 법이다.

<비포 선라이즈>에 탑승해 <비포 선셋>으로 환승한 관객이라면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비엔나에서 하룻밤을 보낸 제시와 셀린은 동이 튼 기차역에서 6개월 뒤를 기약하며 헤어지지만 9년이 지나고 나서야 파리 서점에서 조우한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길을 걷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수다를 떨며 회포를 푼다. <비포 선셋>의 결말은 <비포 미드나잇>으로 이어진다. 운명적인 만남에 이은 운명적인 조우는 두 사람의 미래를 바꾼다. 그리고 그 미래는 해가 뜨기 전과 해가 지기 전에 나눴던 애틋함이 기울고, 날이 서있다. 서로를 포근하게 감싸던 위트와 배려를 발음하던 입으로 가시 같은 언어가 튀어나오고 종종 선을 넘는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비포 선셋>으로, 하루에서 또 다른 하루로, 9년의 세월을 건너온 뒤에도 여전한 감정을 확인한 남녀는 비로소 수많은 매일을 함께할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충동의 계절을 넘어 성숙을 확인한 뒤 결실의 세월로 접어든다. 하지만 시간은 늘 묘약 같지만은 않다. 간절한 그리움이 증발한 뒤로 켜켜이 쌓인 삶 곳곳에는 군더더기 같은 체증이 쌓여 있다. 세월의 그늘에 갇혀 식어버린 감정의 스산함이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과 말 사이로 새어 나온다. 일상의 고민에 짓눌린 감정들은 권태롭게 방치되고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러니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건 속절없는 질문이다. 시간 앞에서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포 미드나잇>은 사랑에 관한 허망한 결론이 아니라 삶에 관한 진득한 물음에 가까운 영화다. 결코 멈추는 법이 없는 시간의 유속 앞에서 많은 것들이 깎이고 변모하지만 지나온 시간 아래 퇴적된 기억들은 많은 것들을 쥐고 붙잡기 마련이다. 우리는 제각각 지금이라는 시간을 유영하는 존재로서 살아가지만 그럼으로써 맞이하는 매 순간의 오늘이란 어제로부터 밀려오고 쌓인 너비이자 밀도이기도 하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실제로 더 많은 것을 경험했을 것이기에 영화가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늘 최고의 순간만을 기억하는 게 아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말처럼, 우리가 지나온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듯 누군가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해도 그 삶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 건 아닐 것이다. 명징했던 만 하루의 감정이 9년의 간격을 두고 이어지고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처럼,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나는 12년을 서슴없이 연결한 어떤 순간들의 나열을 목도하는 것처럼, 인생은 지나온 모든 시간의 반영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싸이월드 사진첩과 같은 것이다. 아름답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가슴이 뛰기도 했던 어떤 흑역사들.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있기에 그 순간들도 온전해진다. 그래서 당신도, 나도 우리의 흑역사를 보존하며 살아간다.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도 떠올릴 수 있기에 아련해지는 어떤 순간들을 의외로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런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란 우리가 그 모든 순간을 지나오며 성숙해진 존재였다는 것을 짚어주는 속 깊은 조언일지도 모른다.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선사하는 네 번의 순간들도 당신의 어떤 순간들과 조우하고 마주하는 또 다른 순간이자 지금일 것이다. 그렇게 영화도, 우리도 지금을 산다. 인생이 된다.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램북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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