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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n 23. 2022

박해일이라는 중력

박해일은 늘 박해일이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고 다시 박해일로 돌아간다.

(이 글은 2018년에 진행한 박해일 씨와의 인터뷰 이후 <에스콰이어> 한국판에 작성한 기사를 아카이빙 차원에서 재편집해 포스팅한 것이니 참고 바랍니다.)


6년 만에 뵙습니다. 여전하시네요. 저만 나이 든 거 같아요.

저는 나이 먹어가는 게 느껴지는데요.(웃음) 어쩌면 1년에 한 작품씩은 출연하는 패턴대로 살아와서 별다른 변화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2001년 작인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첫 출연한 이후로 1년에 한 작품 이상씩 꾸준히 출연해왔습니다. 배우로서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런 얘기를 듣고 돌아보면 꾸준히 했나 보다 싶긴 하죠. 배우로서 영화에 집중해왔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주변에도 쉬지 않고 작품을 하는 선후배와 동료가 많아서 그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의미를 둘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배고프면 한 끼 밥을 챙겨 먹듯이 일상적인 방식이라 생각했고, 그게 안정감 있는 삶으로 정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어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물론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죠.


최소한 2001년부터 지금까지는 가능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배우 박해일도, 자연인 박해일도 삶의 균형을 잡고 살아올 수 있었다고 보이고요.

맞아요.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작품을 해야만 했죠. 물론 안정감이 배우에게 매너리즘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 안정감이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서의 안정감을 말하는 거예요. 연기와 무관한 순간에는 예민하지 않길 바라죠. 반대로 카메라 앞에서 감독과 스태프와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영화에 대해서는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었어요.


직장인이 퇴근한 뒤에는 철저하게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 같은 걸까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시선을 많이 끄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개인적인 일상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그게 좀 필요한 사람이고요.

6년 전 인터뷰에서 ‘매번 작품을 끝내고 나면 책꽂이에 책 한 권 꽂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어요.

기억납니다.


그렇게 꽂아둔 작품을 다시 찾아서 꺼내 보는 경우가 종종 있나요?

한번 꽂아놓으면 다시 꺼내 보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부끄러우니까요. 저 같은 배우가 많을 거예요. 우연히 TV에서 보게 되면 바로 채널을 돌린다고 하니까요. 어쨌든 제 입장에서는 필모그래피가 하나씩 쌓이면서 노하우도 생기고 책임감도 커진다는 그런 의미였어요.


오늘 저희가 만난 건 8월 29일에 개봉하는 <상류사회> 때문인데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하면 촬영을 마친 작품을 다시 되새겨야 하는데, 그럴 때 조금 묘한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제가 감정을 다루는 일을 하잖아요. 이런 자리를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그 당시에 감정을 다뤘던 기억을 끄집어내게 되는 거죠. 평상시에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죠. 어쩌면 그게 인터뷰의 매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류사회>에서 연기한 장태준은 유명한 경제학 교수로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게 되고 스스로도 정치에 대한 욕망을 느끼는 인물입니다. 지금껏 맡아온 캐릭터 가운데 가장 노골적으로 야망을 드러내는 인물처럼 보이는데, 무엇보다도 성공이나 권력이라는 단어로 정의되는 어른의 야망을 가진 인물이란 점에서도 지금까지 해온 캐릭터와는 다른 면모가 느껴집니다.

그렇게 보일 겁니다. <상류사회>의 장태준은 본래 경제학 교수로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에요. 지금껏 쌓아온 내공으로 시민 경제에 필요한 대안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하고, 정치권에 들어가면 이뤄낼 수 있을 거라는 감흥을 받게 돼요. 그렇게 학자가 제도권 권력의 시스템으로 들어가면서 예전과 다른 인물이 될 수밖에 없게 되죠. 말씀하신 것처럼 어른이 가질 법한 야망을 좇아 선택하는 인물인 거죠.

학자로서의 이론을 실현시키고자 정치적 권력을 수단으로 삼으려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점점 주변의 욕망과 부딪히며 길을 잃는 상황에 놓일 거 같습니다.

일단 선의에서 출발하는 건 맞아요. 그런 면에서는 쿨하고 과감한 친구일지도 모르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거니까. 그런데 정치가 쉽나요? 결국 영화가 묘사하는 제도권 권력 안으로 들어가는 인물이 느끼는 혼란과 선택을 관객들이 재미있게 본다면 제가 이 영화에 참여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정치에 발을 들인 인물의 다단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준비가 있었을 거 같은데요.

경제나 정치에 관한 뉴스에서 많은 단서를 찾고 뉘앙스를 잡으려 노력했어요. 어떤 공식으로도 떨어지지 않는 세계에 들어서는 인물이라 복잡다단한 면도 있고요. 결국 그가 내린 선택이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거리를 남기게 될 거 같아요. 저 역시 ‘결국 나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며 연기했으니까요.


박해일에게 연기란 삶을 이루는 전부일까요, 아니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까요?

전부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수단처럼 느껴질 때도 있죠. 그런데 뭐든 하고 살아야 하니까 뭐가 됐든 상관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웃음) 결국 계속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겠죠. 삶이라는 건 바꿀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박해일 씨는 연기가 삶의 전부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쩌면 배우가 아닌 자연인 박해일 씨를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그렇게 보이길 바랍니다. 그저 작품 속에서 저 친구가 무슨 얘기를 할지, 뭘 보여줄지, 그런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어떻게 작품을 준비해서 관객들에게 말을 걸까, 제 삶이란 그런 고민의 연속인 거죠. 그리고 그런 고민이 필요 없는 시기가 되면 다른 사람으로 사는 거고요.

그런 면에서 박해일 씨를 한국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라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과찬이십니다.


단순히 연기력을 치켜세우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연기에 접근하는 태도적 측면에서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아서요. 사적인 영역은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에 밀어 넣고, 배우로서 작품과 캐릭터에만 철저하게 몰입하는 태도가 비슷하지 않나 싶거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정말 존경하고요. 무시무시한 연기를 폭발력 있게 보여주는 배우잖아요. 전 세계를 통틀어서 정말 드문 스타일의 연기를 하는 배우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는 생활적인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물어보신 취지는 이해합니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작품과 일상의 간극을 두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요. 제게도 자연인 박해일이 현장에서 대입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는 준비한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나오길 바라며 현장에 가죠. 물론 어느 때는 자연인으로서의 나를 활용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강한 거 같아요.


온전한 캐릭터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게 해냈을 때의 희열이 있어요. 촬영 전에는 공부하듯이 이성적으로 준비하지만 현장에서는 카메라도 의식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준비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더라고요. 최소한 현장의 모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연기하고 싶어요. 잘한 건지 못한 건지는 결국 감독님이 판단해줄 거니까요.


가끔 준비한 것과 다른 걸 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없을까요?

그 지경으로 갈 상황이 아니라고 느낄 때가 있죠.(웃음) 그럴 때는 감독님한테 도와달라고 요청해야 돼요. 그래서 감독이 있는 거니까요. 배우는 전체 중 일부를 보며 연기하지만 감독은 언제나 전체를 보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가끔은 동료 배우에게서 답을 얻기도 해요. 그래서 팀워크가 중요한 거 같아요. 사실 100명 이상의 스태프와 몇 개월 동안 집중해서 일하다가 몇 개월이 지난 뒤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 변화 속에서도 내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하는 거죠.

작품을 홍보하고 인터뷰도 해야 하고, 연기 외에도 배우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에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이 있었을 거 같습니다.

있었죠. 배우라는 직업 안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것을 잘 소화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억지로 해야만 한다고 느껴지는 상황은 되도록 피하자는 주의예요. 뭐든 억지로 하면 탈이 나는 거 같아요. 얻어 걸리는 건 백 번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고요. 그래서 흥미가 있는 건 해보려 하고, 이왕 선택한 거라면 최대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야 좋겠죠. 그리고 제 역할이 끝나면 지루한 나로 돌아가면 되는 거고요.


<극락도 살인사건>의 제우성이나 <이끼>의 류해국처럼 어떤 무리의 비밀을 파헤치며 그 무리에 시한폭탄 같은 위협감을 주는 인물로 분할 때 배우 박해일의 진가가 명확히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최종병기 활>의 남이나 <제보자>의 윤민철도 마찬가지고요. 타협하지 않는 혈기로 부조리한 본체를 뿌리째 뽑아 올리는 오기 같은 것이 또렷하게 다가온다고 할까요?

방금 하신 말씀 중에 ‘타협’이라는 단어가 제게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사실 다들 그렇지 않나요? 성인으로 살다 보면 타협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햄릿 같은 고민이 생기는 거 같아요. 제 기저에도 그런 고민이 있는 거 같고요. 그게 작품 속 인물이 고민하는 부분과 맞물린다고 느낄 때 호기심으로 작동하는 거죠. 아무래도 그런 호기심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면 <상류사회>의 장태준에게 느낀 호기심은 무엇이었나요?

<상류사회>는 욕망을 건드리는 영화예요. 그런데 욕망이란 게 기본적으로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싶은 거잖아요. 그게 지금의 시대성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야망 있는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성공하고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을 작정하고 드러낸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 호기심을 느끼고 해보고 싶었죠.


혹시 ‘성공’이나 ‘출세’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욕망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요?

제가 도 닦는 사람은 아니잖아요.(웃음) 저도 사람이니까요. 저도 인정받고 싶고,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죠. 물론 그런 걸 이루기 위한 수단과 도구가 무엇이 되느냐는 각자 다르겠지만 말이죠.


2001년에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 이후로 지금까지 별다른 부침 없이 배우의 길을 걸어온 듯한 인상이라 사실 그런 욕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을 거라 생각했어요.

누구나 어떤 지점에 다다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잖아요. 부침을 겪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요. 저도 제 자신에게 채찍질은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물론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좋은 감독과 환경을 만나 시작한 건 정말 큰 행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충분히 고민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거 같아요. 배우란 결국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그 기질을 잘 갖고 있되, 새로운 시선을 연기에 잘 담아내는 게 중요할 거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최소한 연기력을 신뢰할 수 있는 배우라는 인정은 받게 된 거 같아요.

의지를 갖고 임하다 보면 언젠가 그런 마음까지 인정받게 되는 거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중요했고요. 만약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하면 되니까요. 그런 믿음으로 버틸 수 있는 거죠. 나만의 개성과 대중적 취향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듯 잘 어우러져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해왔고, 이젠 그걸 분명히 알아준다는 믿음으로 연기하게 되는 거 같아요. <상류사회>에서도 그런 믿음을 놓치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려 했고요.


마치 결승점이 정해지지 않은 마라톤을 하는 선수 입장을 듣는 기분입니다.

성격인 거 같아요. 저는 장거리 주자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뛰다가 힘들면 멈출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면 멈출 수 없잖아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 생겨 기권하지 않는 이상은 뛰어야죠. 가끔씩은 뒷걸음질 칠 수도 있겠죠. 뒤로 가면 더 멀리 내다볼 수도 있고, 좀 더 명확하게 본 뒤 더 빠르게 달려갈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끝은 보이지 않겠죠.


1997년에 방영한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유일하게 TV에 출연한 경력으로 알고 있고요.

당시에 아르바이트로 보조 출연을 했어요. 방송 연출부 스태프를 하기도 했고요. 정말 잠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경험이었죠.


TV 드라마 출연 제안이 없지 않았을 거 같은데, 단 한 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았어요.

제가 뭘 생각하든 어렵게 생각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TV 드라마를 한다면 A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시작하기가 어려워요. 완전히 다른 시스템에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생각만으로도 부담되죠. 그냥 하던 거나 더 잘하자 싶기도 하고요. 아직 영화에서 해보지 못한 것도 많고요. 그런데 플랫폼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긴 해요. 요즘은 넷플릭스에서도 제작을 하고, 플랫폼이 워낙 다양해지기도 했고요.

드라마 제작 환경도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보다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조성하고 점점 더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소화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만듦새도 예산도 그렇고, 심지어 요즘은 영화 인력이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브라운관이 전부 스크린이 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정말 무시무시한 거죠. 제작비가 400억원에 달하는 드라마가 나온다는데 400억원을 들인 한국 영화는 아직 없잖아요. 영화계가 잘 보고 잘 판단해야 할 거라 생각해요. 어쩌면 지금은 다들 방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TV로 본다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영화만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가 TV 드라마와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각자 얼마나 출중한 매력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드라마가 많이 보여주고 있다면 영화계에서 고민을 해야죠. 계속 대자본을 투입한 큰 영화를 만드는 것에 치중해야 하는지, 보다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닌지, 반대로 저예산 영화는 어떤 매력으로 관객의 호감을 얻어야 하는지,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결국 크고 깊은 쪽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TV 드라마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보고 싶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제한적이지만 영화는 다양한 등급으로 관객층을 구별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잖아요.


결국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기라고 느껴진 걸까요?

사실 매번 나왔던 얘기이기도 하죠.


여전히 청년 이미지로 연상되는 배우라고 느껴지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자신의 나이를 명확히 자각하고 삶의 방향성에 대해 새롭게 고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죠. 모든 배우가 그럴 거예요. 어쩌면 제삼자가 보는 눈이 더 정확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년이라는 단어가 지워지면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어쩌면 타고난 기질이 중요하겠죠. 저는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타고난 DNA라든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환경이라든가. 그걸 애써서 바꾸고 싶지 않고 더 잘 활용하고 싶어요.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그 기질을 잘 갖고 있되, 새로운 시선을 연기에 잘 담아내는 게 중요할 거 같습니다.


결국 나이가 더 들어도 배우 박해일로 살아갈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고요. 그러려면 예전에 한 것들이 후회돼도 절대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을 내다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니까 지금처럼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살고 싶고요. 지금 나이에 뭘 고민해야 하는지, 지금 내가 뭘 느끼는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작품을 만나겠죠. 결국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에스콰이어>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인터뷰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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