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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ug 21. 2022

'놉' 이 영화는 걸작이다. 단언컨대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10년 뒤에도 세상은 <놉>을 언급할 테니까.

그러니까 이 모든 건 2초짜리 영상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움직이는 말’ 정도의 의미로 발음할 수 있는 <The Horse in Motion>(1878)은 최초의 영화라고 잘 알려진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에 앞서 제시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동영상이라 할 수 있는 활동사진이었다. 영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가 촬영해 편집한 이 영상은 12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달리는 말의 모습을 연속적으로 촬영하고 현상한 사진을 이어 붙여 빠르게 돌리면 움직이는 모습처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상 기법의 기본 원리를 제시한 최초의 사례였던 것이다. 


<겟 아웃>과<어스>를 연출하며 아이코닉한 지위를 차지한 동시대 감독으로 꼽히는 조던 필의 신작 <놉>은 앞서 설명한 2초짜리 영상, <The Horse in Motion>을 중요한 영화적 모티브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이는 영화적 기원이 순수한 관찰과 발견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단서이기도 하지만 조던 필은 그렇게 만만한 감독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영상이라 할 수 있는 <The Horse in Motion>에서 지워진 정보를 주목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배우라고 볼 수 있는, 영상 속 흑인 기수에 대한 일말의 정보가 없다는 사실에 착안한 영화를 기획한다. <놉>은 그렇게 시작된 영화다.

<The Horse in Motion>(1878)

할리우드 인근의 아과 둘세 주에서 아버지(키스 데이비드)와 함께 헤이우드 말 목장을 운영하는 OJ(다니엘 칼루야)는 여느 날처럼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흰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기 좋은 그날, 말 목장의 청사진을 그리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보통의 일상을 보내던 중 하늘에서 무언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말 위에 타고 있다가 떨어져 쓰러진 아버지의 오른쪽 눈에 출혈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긴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끝내 아버지는 숨을 거두고 동전 하나를 받게 된다.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이 아버지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이었다. 


<놉>에서 등장하는 헤이우드 말 목장은 일찍이 알리스테어 E. 헤이우드가 세운 것이었고, 그는 <놉>이 인용하는 영화의 기원 <The Horse in Motion>의 지워진 흑인 기수였다. 그러니까 헤이우드 가문은 인류 최초의 영화배우 집안이지만 기록되지 않았던 탓에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할리우드에서 영화 촬영에 필요한 말을 공급하며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노리는, 영화의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사실이 아니다. <놉>이 제시하는 알리스테어 E. 헤이우드도, 헤이우드 말 목장도, 실존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명백한 허구다. <The Horse in Motion>을 통해 생각해낸 그럴듯한 거짓말인 셈이다.

‘만약’이라는 상상은 현실적으로는 무용하지만 모든 허구적 창작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본 동력이다. <놉>이 실재하는 사실에 허구적인 고유명사를 접목한 허구를 작동시키는 동력 역시 ‘만약’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그리고 조던 필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겟 아웃>과 <어스>를 통해 흑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둔 ‘블랙 호러’를 연출해온 그는 <놉>을 통해 일찍이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흑인 배우 주연 영화를 만들고 초유의 상상력을 동원한 가공할 스펙터클을 제시한다. 태초에 지워진 흑인 배우를 떠올리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놀라운 영화적 체험으로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놉>은 그 자체로 대단한 야심이다. 그리고 끝내 비범한 재능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성취이기도 하다.


헤이우드 남매, 그러니까 OJ와 에메랄드(케케 파머)가 사는 집의 벽에는 흑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벅 앤 프리처>(1971) 포스터가 붙어있다. 이 작품은 흑인 배우가 주연을 맡은 최초의 서부극이었다. <놉>은 그러한 야심을 바탕에 두고 만든 독특한 서부극이다. 카우보이가 등장하진 않지만 카우보이를 모델로 둔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주프(스티븐 연)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극 중에서 말을 타는 건 오직 흑인인 OJ 뿐이다. 그리고 그들 위로는 구름 사이로 날렵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며 모종의 기회를 엿보는 어떤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UFO처럼 보이는 이 존재는 <놉>을 특별한 흑인 주연의 서부극으로 만드는 SF적 상상의 산물이면서도 그러한 장르적 규정의 경계를 뛰어넘어 더 높고 멀리 나아가는 놀라운 발상의 경지이기도 하다.


‘요즘은 UFO(미확인 비행물체)가 아니라 UAP(미확인 항공 현상)라고 부른다’는 극 중 대사는 <놉>이 끝내 보여주고자 하는 상상을 구현해낸 결과물에 관한 명백한 복선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끝내 자신의 목장 위를 날아다니는 위협적인 존재에 맞서는 흑인 영웅의 대결구도를 그리는 영화로 나아가는 동시에 동시대 영화와 영상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비범한 질문으로 비상한다. <놉>은 타인의 관심을 자극하고 이를 재화가치로 만들고자 하는 동시대 욕망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UFO를 연상시키는 기이하고 거대한 무언가 구름에 은둔하며 자신들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인물들은 하나 같이 그것을 찍어서 세상에 알릴 지위를 획득해 돈을 벌겠다는 야심을 품는다. 그리고 이 야심은 대체로 극악하고 처참한 체험으로 되돌아온다. 

조던 필 감독은 <놉>을 찍는 데 있어서 모티브가 된 영화로 <킹콩>이나 <쥬라기 공원>을 언급한 바 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돈을 벌겠다는 야심에 눈이 멀어 거대하고 강력한 피조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인재를 감당하는 세상을 엔터테인먼트로 제시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놉>은 바로 그러한 욕망에 ‘놉’이라고 답하라 주문하는 작품처럼 보인다. <놉>은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드는 기이한 영화인데 영화 상에서는 하늘을 나는 불길한 존재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결코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는 결국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만 하는 끔찍한 엔터테인먼트로 점철된 세상을 향한 진단처럼 보인다. 매 순간 다양한 경로로 떠밀려오는, 콘텐츠를 빙자한 갖은 자극적 영상에 노출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보지 않으려는 결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놉>이 선사하는 시네마틱 한 체험은 결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비전의 선언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놉>이 지난 3년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가운데 원작도 없고, 속편도 아닌 오리지널 각본으로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개봉 첫 주 흥행 기록을 세운 작품이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상상이나 성취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어느 개인의 상상에 물줄기를 대서 뽑아낸 거대한 성취이자 단일한 창작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놉>이 선사하는 경이적인 카타르시스는 그것이 끝내 흑인 영화를 넘어 여성영화로서 마음을 웅장하게 만드는 결말로 나아가고 획득한다는 점에 있다.

명백하게 <아키라>의 명장면인, 카네다 바이크의 스톱 슬라이딩 신을 연상시키는 최후반부 시퀀스는 온전히 에메랄드의 활약상으로 채워지는데 이는 흑인 여성이라는, 어쩌면 지금 가장 영화계에서 소외되기 쉬운 존재를 가장 비범하게 끌어올리겠다는 조던 필의 야심을 공고하게 보여주는 결과처럼 보인다. 제목을 포함해 여섯 개의 챕터로 구성된 <놉>의 마지막 챕터 ‘진 재킷’은 에메랄드가 자신이 길들이게 될 첫 말이 되리라 기대했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그 기회를 오빠에게 물려줬고, 기대는 좌절로 추락해 회한으로 박혀 있었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존재에게 진 재킷이라는 이름을 붙인 오빠는 거듭 동생에게 신호를 보낸다.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 


이는 누구보다도 동생의 가능성을 아끼는 오빠의 격려였다. 영화의 말미에서 비로소 질주해 자신의 능력을 폭발시키고 그 이름에 걸린 회한마저 터트리는 에메랄드의 활약상은 그런 연대에 바탕에 둔 온정의 피날레인 셈이다. 그리고 이 비범한 결말로 다다르는 130분의 여정에 끝에서 남는 건 명징한 확신이다. 이 영화는 분명 걸작이다. 동시대를 넘어 두고두고 회자될, 우리 시대에 찾아온 새로운 고전이다. 단언컨대.


('Vogue Korea' 온라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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