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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ug 26. 2022

문화재가 오늘을 산다는 건

지금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원하는 방식을 주목해야 한다.

바야흐로 K의 시대다. 한국영화, 한국드라마, 한국대중음악이 K무비, K드라마, K팝으로 통용되는 시대다. 몇 년 전 실제로 실체나 있기나 한가 싶은 한류와 달리 지금은 정말 한국대중문화가 로컬이 아닌 글로벌 대다. 아마 코로나19 유행만 아니었다면 지금 한국은 전세계에서 K컬처 투어를 위해 몰려든 여행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을 것이다. 실제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이후로 ‘갓’을 찾는 외국인이 늘었다고 한다. 우리 눈에는 오래된 옛 풍경에 불과하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보기 드물게 멋진 모자를 발견했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니까 <킹덤>처럼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된 한국 드라마가 일으킨 반향이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다. 이는 우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우리의 것이 세계적으로 멋진 것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 흥미로운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국 대중문화가 한국 고유의 문화를 알리는 창이 되는 시대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이 세계적인 풍경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기 있는 드라마를 촬영한 명소를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국 시청자만 하는 생각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영화나 드라마, 뮤직비디오의 멋진 배경에 된 한국의 전통적인 풍경을 살펴보는 건 어느 때보다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전통문화 근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선시대를 배경에 둔 <킹덤>은 기존에 나온 여타 사극 안에서도 궁궐의 풍경을 가장 수려하게 보여준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는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등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좀처럼 촬영을 허용하지 않던 궁궐 내에서 실제로 촬영이 가능했던 덕분이다. 보통은 궁궐에서 촬영이 불가하기에 세트를 지어 재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킹덤>은 이례적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궁궐을 알린다는 취지 하에 궁궐 촬영을 허가했다. 덕분에 고풍스러운 궁궐의 자태를 방구석에서도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K팝의 시대 최전선에 서있는 BTS는 서 있는 곳 자체가 곧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BTS가 지난 2020년 미국 NBC의 유명 쇼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에서 선보인 공연은 그 자체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경복궁에서 대중가수의 공연 자체가 성사된 건 2015년 <열린음악회> 이후 두 번째이며 단일 그룹 뮤지션에게 허용된 첫 번째 사례라고 한다. 그만큼 이례적이지만 BTS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복궁 내 최고 건물을 의미하는 정전인 근정전은 즉위식이나 사신 접견 등 궁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을 소화하는 공간이며 경회루는 왕이 주재하는 큰 규모의 연회를 여는 장소이기도 하다. 결국 BTS가 전 세계 관객을 경복궁으로 초대하는 최고의 장소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멜로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순천 송광사가 중요한 대목에 등장하는데 단아하고 아름다운 사찰의 경관이 이색적인 감정을 나누는 남녀의 데이트 공간으로 제시된다. 박찬욱 감독은 일찍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편이었기에 영화 속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전통 풍경이 흥미롭게 그려지곤 했는데 올해 유튜브로 공개한 단편영화 <일장춘몽>에서도 전북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상 박계호가 대나무로 만든 합죽선 부채와 제45호 우산장 윤규상 등이 함께 대나무에 종이나 천을 얹어 만든 지우산이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꼽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이처럼 한국적인 공간과 소품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그러니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지금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에 심취한 이들이 갖게 된 한국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는 곧 우리 스스로도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의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기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경복궁은 <킹덤>과 BTS의 무대가 된 이후로 또 다른 의미의 랜드마크가 됐다. 이는 결국 동시대에 발휘된 창의성과 그 영향력이 전통에도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를 홍보할 때 가장 긍정적인 수단은 문화밖에 없다.” 지난해 인터뷰 차 만난 이창동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바 있었던 이창동 감독은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오늘날 세계적인 각광을 받는 순간이 되기까지 정책과 인식의 변화가 뒷받침됐다고 말했다. 이는 곧 정부 주도하에 책임지는 문화 지원 정책이 중요하되 정부가 문화에 관여해선 안된다는, 책임지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민간의 자율성을 토대로 문화적 역량을 키워내면 산업 자체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느끼는 한국 문화의 위상인 셈이다.


전통문화를 동시대 대중문화와 접목하기 위해선 그에 어울리는 재능과 어울려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능이란 당장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는 무엇일 리만은 없다. 세계적인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하기도 한 국내의 현대무용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일찍이 2020 한국관광 해외홍보를 위해 덕수궁 대한문을 비롯한 서울의 랜드마크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유튜브상에서 3억 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결국 파격적인 선택을 통해 대중적인 목표를 이룬 것이다. 결국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린다는 건 이런 것이다. 고색창연한 문화를 과거에 머무르게 만들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 전통문화를 미래에서도 보존할만한 가치로 여기게 만드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웹진 <박물관 신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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