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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Oct 24. 2022

엄마와 나는 고양이를 찾지 못했다

'고양이를 부탁해' 그리고 한 번도 묻지 못한 어머니의 20대에 관하여.

'스무 살, 섹스 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라는 카피가 뒤늦게 인상적이었던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한 2001년의 나는 스무 살이었다. 섹스 같은 건 관심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는데 인생이 막막하다고 느껴지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내 스무 살은 전혀 그립지 않다.


고2 때 폭삭 망해버린 집안꼴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대학에 갈 것만 생각했지,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갈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런 일이 눈앞에 닥치니까 인생 자체가 허물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작 20년 남짓한 세월이 뭐 그리 대수였나 싶기도 한데 그때로 돌아가면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도 피할 길은 없을 것 같다.


정말 웃기는 건 당장 기백만원 되는 등록금을 낼 수 없으니까 대학은 못 가도 재수는 했다는 것이다. 물론 등록금을 해결해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가서 살아야 하니 당장 거처도 해결해야 했고, 지속적인 생활비도 필요하고, 학비도 충당해야 하니 그 이후에 넘어야 할 허들값을 해결할 겨를도 없었기에 당장은 포기해도 1년 뒤는 모를 일이니까 싶었던 걸까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구구절절 말한다 해도 결국 꺼낼 수 없는 속사정도 있는 법이니까.


어쨌든 당시 나는 아버지가 사라진 집에서 어머니의 등골을 빼먹으며 장담할 수 없는 1년 뒤의 무언가를 건 부실한 판돈 같은 존재였다. 과연 1년 뒤에는 가능할까? 그때에도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가면 지금 이렇게 적지 않은 돈을 쓰는 건 지독한 낭비가 아닐까? 그렇게 거듭되는 의심에 시달리며 재수를 했고, 어찌어찌 방향이 생겨 대학에 진학하게 됐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결과적으로 이런저런 사정과 개인적인 객기로 졸업장은 받지 못하고 자퇴생이 됐다. 그래서 내 학력은 고졸이 됐고, 지금은 딱히 그런 미련이 없지만 기약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그때 내린 결정을 심히 후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아이러니는 결국 그 시절이 내게 남긴 유산이란 것이 있기는 할까라는 생각이었다. 장담할 수 없는 1년 뒤에 투신하는 어머니가 그 당시 보냈던 매일은 과연 어떤 시간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을 부채처럼 안고 그 시간에 대해 어머니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호기롭게 대학을 그만두고 앞가림을 하겠다며 갖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새벽 인력 시장에 나가서 공사장에서도 일을 하며 그것이 어쩌면 내 미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그 1년여의 시간만큼 아이러니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처음 본 건 2017년쯤이었다. 어쩌다 보니 영화를 제법 진지하게 봐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과거에 놓친 영화나 허투루 봤다고 느껴지는 영화를 거듭 쫓아가는 인생이 됐는데 배우 이요원 씨를 인터뷰할 일이 생기면서 보지 못했던 영화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면서 나의 스무 살을 돌아보진 않았다. 그런데 문득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젊은 날이 담긴 사진첩을 떠올렸다.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스무 살이 궁금해졌고, 직접 물어보고 싶은 마음까지 동하지 않았지만 그 사진첩을 한 번 다시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셀린 시아마의 최근작인 <쁘띠 마망>은 어린 소녀가 어린 시절의 엄마를 만나는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어린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생각했던 2017년의 나를 돌아봤고, 그때 떠올렸던 어머니의 사진첩을 다시 떠올렸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이 있었던 만큼 그 시절을 지나온 소회 또한 필연적으로 함께 남기 마련일 것이라고,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내가 지나온 스무 살은 딱히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아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머니가 지나온 스무 살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스무 살도, 지금도 여쭤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을 묻어버리는 것까진 익혔지만 그 시간을 꺼내서 마주할 정도로 강해지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내게는 비겁함을 견디는 것 말고 재간이 없는 것 같다. 어머니에게도, 내게도, 어찌어찌 지나온 시간이 됐지만 끝내 우리는 함께 돌볼 고양이를 찾지도, 서로에게 그런 고양이가 돼주지도 못한 것 같다. 그게 참 슬프다. 문득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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