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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11. 2017

사랑은 완력이 아니다

사랑은 완력이 아니다. 어느 한쪽의 마음이 타오르듯 간절하건 말건 한쪽의 마음이 불씨마저 찾을 수 없게 식어버리면 더 이상 지속되기란 불가능한 마음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미련으로 변해 버린 사랑 앞에 슬퍼하는 자와 변심한 자가 도맡아야 할 악역이 있을 뿐.


사랑이 변한다는 말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마른 장작 타오르듯 밑도 끝도 없이 달아오르던 감정도 식으면 한낱 잿더미에 불과한 것을. 가장 큰 비극은 그 감정의 변화가 쌍방 간에 민주적 합의로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마음에서 독립적으로 벌어지는 사정이라는 사실이리라.


사랑의 시작에 예정이 없었듯, 끝에도 예정은 없다. 쌓인 감정이 눈사태처럼 터져 나올 수도 있고, 남모르게 새어나가던 감정이 불붙듯 타오를 수도 있는 법. 이별이란 건 일방적이되 충동적인 것이 아니다. 이미 기저에 모든 조건이 합당하게 갖춰진 상태에서 벌어지는 순리 일지라.


그러니 결국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의 사랑이 아직 살아 숨 쉬는 활어 같다고 해도 이미 상대의 사랑은 횟감처럼 썰리고 도려져 잘근잘근 씹힌 뒤 뼈만 남은 것이라면 그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아니리라.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야심 따윈 사치이고, 민폐일 뿐이니 현재로서 살아가지 못할 기억에 얽매일 생각일랑 하질 말라.


전진할 수 없는 추억을 홀로 밀고 나가려다 그 추억마저 깔아뭉개고 너와 나를 이루던 모든 기억들을 핏덩어리로 만드는 미련한 짓은 말아야 한다. 손을 놓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너와 내가 각자의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다 정확히는 나 홀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각성해야 한다. 본래 그러했듯이 나로서 살아가야 한다.


너를 어제로 떠내려 보내고 그렇게 걸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비록 내일 당장 잿빛 같은 하루가 펼쳐진다 할지언정.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다시 한번 나로서 너를 만나고 끝내 다시 한번 마음을 던져 사랑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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