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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n 26. 2018

이별의 온도

<연애의 온도>로 본 이별에 대하여.

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우리 그만 헤어져.” 아니, 너는 비빔밥 집에서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이유를 물었다. 달래도 봤다.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고도 해봤다. 그런데 솔직히 이유를 모르겠더라. 언제나 너에게 최선을 다했고, 널 위해서 희생했고, 배려했는데, 이건 배신이야, 배신! 슬픔의 끝에서 파도처럼 분노가 밀려왔고, 분노에 휩쓸려 나가다 보면 망망대해 같은 외로움이 펼쳐졌다. 아, 글쎄, 이소라 누나가 부른 것처럼 바람이 분다니까. 그리고 김동률이 노래합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아, 정말 어떻게 안될까. 그런데 결국 그녀가 돌아왔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 있냐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그런데 이 노래가 이별 후 재회하는 노래였던가? 그걸 잘 몰라서였을까. 그 뒤로 우린 네 번 헤어졌고, 다섯 번째에서야 비로소 진짜 헤어졌다.

<연애의 온도>는 장영(김민희)과 이동희(이민기)의 이별에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건 이별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지난하다 못해 지긋지긋하다. 한때 사랑했던 사이라는 게 어이없을 정도로 두 사람 사이에 개차반 같은 공방이 펼쳐진다. 뒤에선 울고 불고 짜다가도 앞에서는 서로 못 잡아먹을 듯이 이빨을 내밀고 으르렁거린다. 그런데 그 관계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 회복된다. 거짓말처럼 붙어먹는다. “나 너랑 처음 하는 것처럼 떨려.” “나도 그래.” 몇 번이나 함께 뒹굴었던 그 방의 침대에서 마치 처음 자는 것처럼 말하고 진짜로 그런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때 우리가 대체 왜 싸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게 뭐 대수인가. 


희한한 일이다.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망쳐놓은 뒤에야 풍요로웠던 시절이 간절해진다는 것이. 누구나 러브 스토리를 꿈꾼다. 솔로일 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수가 되고, 부처가 되고, 공자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나타나기만 해 봐라! 금이야 옥이야 물고 빨며 간도 쓸개도 다 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시작할 때만큼은 귀엽고 예뻐 죽겠지. 그리고 점점 변한다. 정확히는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가 ‘이 정도도 못 참아?’에서 ‘이 정도로 해줘도 저래?’로 진화한다. 편하다는 것과 막 대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다 이해하고 뭐, 그런 거 아닌가? 결국 그 관성은 이별에 부딪혀서야 멈춰 서고 되돌아본다. 그리고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덕분에 헤어진 연인 가운데 몇몇은 다시 만난다. 그리고 대부분 다시 헤어진다. 

<연애의 온도>는 이별의 과정 이후의 결과를 전시하며 시작된다. 그 이후의 재회를 통해서 이 남녀가 일찍이 어떤 방식으로 헤어졌을지 깨닫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건 동어반복이다. ‘헤어진 남녀가 다시 만나서 잘될 확률은 3%’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불안하지만 ‘로또에서 1등이 될 확률이 814만 분의 1이라는데 매주마다 1등이 나온다’니 희망을 갖고 다시 사랑한다 말한다. 미안하지만 관계에서 로또는 없다. 당신의 애인은 복권이 아니다. 그러니 서로를 기꺼이 감내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결국 당신 혹은 내가 변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난 그녀와의 다섯 번째만의 이별에서야 그걸 알았다. 당장 내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도 나도 서로를 변화시킬 수 없음을, 그걸 알 때 비로소 진짜 이별했다. 그날은 잠도 잘 왔다. 깨진 접시는 다시 붙일 수 있어도 선명한 금은 남는다. 더 이상 예전의 접시가 아니다. 박살난 관계에서도 금은 선명하다. 단지 망각할 뿐이다. 사실 그 금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봐야 부질없다는 속설이 돈다. 그렇게 당신도, 나도 이별했다. 이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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