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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ug 14. 2018

모음근을 아시나요?

오늘의 나를 단련하기 위해선 어제의 나를 이겨야 한다.

“이제 나도 운동 좀 해야겠어.” 아마 30대 초반이었을 거다. 친구들 앞에서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친구들이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고, 러닝을 하고, 크로스핏을 하는 동안 나는 입으로만 운동할 거라 다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름의 조언도 해주던 친구들은 철 지난 유행가라도 듣는 것처럼 나의 다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양치기 소년적인 공언을 실행에 옮긴 건 한 달 전쯤이다. 피트니스 센터를 다녀볼까, 복싱을 배워볼까, 주짓수를 해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실제로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운동은 따로 있을 것 같았다. 긴 시간의 게으름을 겨우 이겨내고 해보자고 결심한 건 필라테스였다. 코어 근육, 그러니까 척추와 골반을 지지하는 근육을 단련하고 무너진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는 이만한 운동이 없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로 그런 균형 감각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필라테스에 꽂혔다. 덕분에 필라테스가 사람 이름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체지방을 검사하고, 서 있는 자세부터 진단을 하는데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강사의 말로는 목은 일자로 내려앉아 있고, 어깨는 앞으로 말려 있으며, 배는 내민 채 골반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양쪽 무릎에 힘을 줘서 다리를 쭉 펴고, 꼬리뼈를 내린 뒤 골반을 들어 올려 배를 밀어넣고 가슴을 들어 올리며 올라간 어깨를 끌어내리고 턱을 잡아당겨서 목을 위로 펴야 한다고 한다는데, 네? 뭐라고요? 그런데 강사의 손에 따라 몸이 교정되기 시작됐다. 그리고 거울 속에 로보트 태권 V 같은 내가 서 있었다. “조금 어색하시죠? 그런데 원래 이렇게 서 있어야 해요. 한번 옆의 거울을 보세요.” 확실히 몸이 좀 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기울어 있던 일자 목도 확실히 개선됐다. 그러니까 목을 들어 올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엉망진창이었던 거다.


애초에 서 있는 자세 자체가 불량이었다. “확실히 오른쪽 골반 근육이 짧네요. 그래서 자꾸 오른발에 힘을 주고 서서 몸이 그쪽으로 기울어요.”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서 있던 세월이 내 몸에 기록돼 있었다. 오늘의 나를 개선하기 위해 어제의 나를 마주해야 했다. 그래야만 내일의 나를 계획할 수 있다. 내 몸을 잘못 굴려왔던 것을 나는 몰라도 내 몸은 다 기억하고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내 몸이 나름의 균형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너무나 손쉽게 몸의 균형을 무시해왔다는 것을, 그럼에도 내 몸은 끊임없이 무너져가는 육체의 불균형을 이겨내기 위해 나름 안간힘을 써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이제는 내가 노력해야 할 차례였다.


그 뒤로 한 주에 두 차례씩 업보의 시간이 왔다. 50분 남짓한 운동 시간은 때가 되면 지나갔지만 몸에 힘을 주고 빼는 순간순간만큼은 억겁의 시간처럼 더뎠다. 처음에는 숨을 코로 들이쉬며 힘을 빼고, 입으로 내쉬며 힘을 주는 것도 헷갈렸다. 온몸의 근육을 분절하듯이 제각각 힘을 주고 동작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기도 했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느슨하게 방치돼 있던 근육들에 제각각 힘을 주면서 정교한 동작을 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균형을 잡다 보면 근육에 힘이 빠졌고, 근육에 힘을 주다 보면 균형이 어긋났다. 내 몸이라고 하는데 내 몸이 아니었다. 군기가 빠진 병사들을 연병장에 집합시켜 유격 훈련을 실시하니 아수라장이 되는 느낌. 내 몸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을 매번 실감하는 패배감. 그럼에도 어쩌면 더 늦기 전에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이제야 미약하게나마 내 몸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


“남자들은 대부분 이 근육이 약해요.” 강사가 말한 건 모음근이라는 근육이었다. 다리를 안쪽으로 모을 때 사용하는 근육을 말한다. 그래서 모음근이다. 의학상 명칭은 내전근이라는데 느낌적인 느낌으로 모음근이 더 와 닿는 듯하여 모음근이라 지칭한다. 허벅지를 가지런히 모아서 무릎을 딱 붙였을 때 힘이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근육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남자들은 무릎을 딱 붙인 채 의자에 앉아보길 권한다. 자신의 모음근이 얼마나 약한지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37년 동안 살아오면서 특별히 인지해본 적이 없었던 모음근을 이날만큼은 내 몸의 어떤 근육보다도 뜨겁게 느꼈다. 특별한 기구를 이용해 좌우로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리는 동작을 연마하는데 강사가 하나를 셀 때는 ‘모음근이 이런 것이군’이라 생각했고, 열을 셀 때쯤에는 ‘이 양반이 모음근으로 나를 죽이려고 하나?’라며 의심했다. 그날 집으로 걸어가는 두 다리가 따로 걷는 거 같아서 손으로 걸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그 뒤로도 며칠 동안 모음근이 내게 ‘여기 있어’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지난 인생의 업보 같은 통증이 잔잔하게 지속됐다.


남자들의 모음근이 약한 건 애초에 이 근육을 단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다리를 모으고 앉도록 교육받지만 남자들은 그럴 일이 없으니까. 여자들에게는 일상에서 단련되는 근육이지만 남자들은 방치해도 무방한 근육인 것이다. 사회적 관습에 따라 일부 집단의 근육 단련도가 유사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남자들의 모음근은 사회적으로 방치된 근육이란 말이지. 만인의 눈총을 받는 ‘쩍벌남’이 양산되는 건 어쩌면 사회적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결국 운동을 하고 근육을 단련하게 된 건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돼야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그만큼 정신력도 쇠퇴한다는 것을 느낀다. 나날이 무거워지는 세월의 중력을 견디려면 불필요한 군살과 잡념을 끊임없이 덜어내고 비워내는 수밖에 없다. 몸과 마음을 단련해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힘을 줘야만 단단해진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 하지만 쇠락한 육체를 지배하는 건 그에 걸맞게 쇠락한 정신일 뿐이다. 그리고 점점 육체가 정신을 지배할 것이다. 그렇게 쩍벌남이 된다. 나의 편안함이 타인의 불편함이 된다는 것은 내가 나를 망치고 있다는 교훈에 가깝다. 결국 내가 나를 귀하게 여겨야만 타인에게도 무례하지 않은 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필라테스가 알려줬다. 필라테스가 이렇게 훌륭한 운동이다. 그러니까 다들 모음근을 단련하시라.


('Esquire Korea'에 쓴 에세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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