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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Feb 01. 2023

'다음 소희' 단평

"재수가 없는 거야."


불쾌한 폭언과 노골적인 희롱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고객님을 응대하는 하루는 그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거라 믿어야 한다고 말했던 팀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짓을 하건 간에 그저 사랑해야 하는 고객님이라면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서라도 해지 방어에 나서야 하는 통신사 콜센터 직원 중에서도 수습 딱지가 붙은 특성화 고등학교 현장 실습생의 처우는 바닥에서도 바닥에서도 바닥이다. 하청에서 하청에서 하청으로 이어지는 갑을병정의 길고 긴 수직 터널에서 가장 밑바닥에 놓인 소희는 기약 없는 보상을 내걸며 버티는 것이 당연하다고 떠미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무심하고 적막하게 홀로 질식한다. 

<다음 소희>는 더 싸게 세상을 돌리고, 더 싸게 사람을 죽이고, 더 싸게 책임을 넘기고, 그렇게 싸구려처럼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버티거나 미치거나 혹은 죽어가는 수많은 소희들에 관한 영화다. 대체가능한 나사처럼 사람을 갈아서 운영하는 시스템 속에서 일찍이 마모되고 구겨지는 자아와 마음은 하소연하거나 기댈 곳 하나 없이 정처 없다. 무한한 경쟁을 요구하면서도 끝없이 목표만 제시하는 세계 속에서 손쉽게 소실되는 어린 생명을 목도하는 것만큼이나 그 이후를 둘러싼 무심한 표정들이 거듭 경멸스럽고 참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소희>는 그러한 세계의 실상을 눈 돌리지 않고 하나씩 거머쥐듯 마주하며 결연하게 묻고 또 묻는다. 


“그 일이 뭔지 아세요?”


자신이 애써 제자를 좋은 곳에 취업하게 해줬다는 선생님도, 학생들의 현장 실습 사정을 파악해야 하는 장학사도, 정작 아이의 부모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취업난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된 저 너머의 암담과 MZ세대라는 허울 좋은 포장에 가려진 그 세대의 낙담에 귀 기울이는 어른들이 부재한 세계가 수렴하는 건 아무래도 희망이 아닌 절망일 수밖에 없다. <다음 소희>는 작금의 한국 사회에 만연한 비관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조망하며 가리키는 또렷한 눈이자 벼린 입이다.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편리하게 굴러가는 세계가 기실 알고 보면 누군가는 영혼을 갈아 넣어서 버티는 세계라는 것을, 비록 허구의 탈을 쓴 영화라고 하지만 결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경할 정도로 생생하게.


이것은 허구이지만 결코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관람을, 목격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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