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를 표방한 한국영화와 미니시리즈의 평범함에 관하여.
“SF는 모든 세계를 완벽하게 재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 장르다. 창조자처럼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서 인용한 문장은 올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뤽 베송 감독이 갈라 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장에서 전한 말이다. 그의 말을 빌려 주장하자면 SF영화에서 보다 중요한 성취란 기술적 구현보다도 창작적 관점이며,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새로운 시각일 것이다.
<고요의 바다>와 <택배기사> 그리고 <서복> <승리호> <정이>까지, 지난 몇 년 사이 SF 장르로 분류되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공개됐다. SF는 돈이 드는 장르다. CG와 VFX를 비롯해 후반작업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적지 않은 제작비가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SF 장르로 규정되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이 보다 활발해졌다는 사실은 한국영화나 한국드라마 시장이 과거보다 상회한 규모로 팽창했다는 사실의 근거로서 유효해 보인다. 한국영화나 한국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넓어졌다는 판단과 함께 자본 투자가 활발해졌고 이러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개발할 수 있는 장르 분야의 개척이 이어진 셈이다. 문제는 ‘기대만큼 성취가 뒤따랐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가 탐탁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지난 8월에 개봉한 <더 문>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영화 최초로 달 탐사를 소재로 한 우주 SF영화다.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 본전을 회수할 수 있는, 전형적인 ‘천만기대작’이었다. 한국영화가 돈이 된다는 심리가 있을 때 가능한 시도였다. <신과 함께> 연작으로 소위 말하는 ‘쌍천만 감독’이 된 김용화 감독은 <더 문>을 만든 이유를 ‘도전’이라는 단어를 위시해 설명했다. ‘관객 분들의 사랑으로 따뜻한 수혜를 받았으니 관객이 찾아주는 한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 문>은 50만 명 수준의 관객을 동원하며 시장에서 참패했다. 김용화 감독은 영화 개봉 이후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 중 볼멘소리를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들이 덜 사랑해 주는 느낌”이라며 “한국 관객들이 한국 SF영화를 대하는 거리감이 아직 상당하다고 느꼈다.” 감독 입장에서는, 심지어 대단한 흥행 성적 기록을 보유한 흥행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화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더 문>의 흥행 참패가 관객들의 무관심 탓일까.
일단 <더 문>은 진일보한 시각 기술의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할리우드의 대자본 영화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에 불과함에도 우주와 달의 이미지를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해 냈다는 사실은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시대가 지났다. 예전처럼 우리도 할리우드만큼 으리으리한 것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으로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으는 시대는 지났다. K로 위시한 한국 콘텐츠에 열광하는 팬들을 전 세계 각지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시대에서 기술적 열등감을 이겨냈다는 구호 같은 건 철 지난 가요 창법 같은 것이다.
<더 문>에는 새롭게 읽을거리가 없다. <더 문>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이 독자적인 달탐사를 계획하고 탐사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해 대원들이 위기에 빠진 뒤 가까스로 살아남은 대원 한 명을 지구로 귀환시키고자 탐사 관계자들이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다. 끝. 냉정하게 말하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예상가능한 뻔한 이야기가 ‘한국도 이런 걸 할 수 있다’류의 스펙터클을 구현하는 이미지 안에서 안이하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스펙터클이 대단한가? 그렇지도 않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구현한, 가성비 좋은 이미지라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선하다’ 혹은 ‘새롭다’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체감 같은 건 <더 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 정도는 가능하다’는 구호와 ‘우리가 남이가?’라는 호소가 먹히던 시절은 지났다. SF는 가성비 좋은 기술을 전시하는 쇼룸 장르가 아니다. 동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독자적 견해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하면 최근 몇 년 사이 기획된 한국 SF영화나 한국 SF드라마가 하나같이 비판에 시달린 건 ‘무엇을 말하고 싶다’는 작가적 욕망이 부재한 가운데 ‘무엇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기술적 과시에 천착한 탓이다. 물론 시각 기술의 발전은 SF 장르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는 나홍진 감독의 SF영화 <호프>와 국내 SF소설의 신성으로 자리 잡고 있는 김초엽 작가의 단편 <스펙트럼>을 영화화할 예정이라는 김보라 감독의 차기작에 기대를 건다. 지금 한국 SF영화를 추진하는 동력은 기술이 아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작가다. 이야기다. 그게 필요하다. 뤽 베송도 동의할 것이다.
('Noblesse MAN' 매거진 2023년 11~12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