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인터뷰는 주요 업무였다. 주로 배우나 가수를 비롯한 연예인들을 만났고, 감독이나 작가 같은 창작자들을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음악가나 운동선수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좋은 인터뷰는 결국 좋은 대화일 것이다. 대화의 사전적 의미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주고받을 대상과 마주 대할 수 없다면 인터뷰도 불가능하다. 원하고 바라는 인터뷰이가 있다고 해서 모두 다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섭외가 절반이다. 말을 건다고 해서 늘 답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외에 응해주는 이들이 하나 같이 고맙고 귀했다.
인터뷰 섭외 대상으로 물망에 오르는 이들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거나 사회적으로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쌓았다고 인정받는 명사였다. 소위 말해 아무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이 대단한 특권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이들이기에 일면식도 없는 이가 시간을 내주길 바랄 때에는 당연히 그만한 명분이 필요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나 에디터라는 직업은 그 자체로 특별한 명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소속된 매체의 이름값 덕분이겠지만 그 덕분에 기자나 에디터라는 직업을 등에 업고 다양한 명사를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단지 유명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특별한 건 아니었다. 모든 인터뷰가 즐거운 것도 아니었다. 물론 늘 그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좋은 대화를 이끌어내려 노력했지만 그게 늘 성공적인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체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해 낸 창작자나 남다른 성취에 다다랐다고 인정받는 명사들은 대체로 겸손했다. 공통적으로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자신이 지나온 날을 정의했다. 물론 그들의 좋았던 운이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이 아니었을 것이다.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시절에 인터뷰로 만난 야구선수 이승엽
2018년 3월에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승엽을 만났다. 현재에는 두산 베어스 감독을 맡고 있지만 당시에는 은퇴 직후였고 지도자가 될 계획도 당장 없는 상황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이후로 5개월 이상 야구 연습을 하지 않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은퇴 경기의 마지막 타석에 대해 물었다. 이승엽은 은퇴 경기에서 유례없이 두 개의 홈런을 쳤다. 대체 왜 은퇴하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순간은 마지막 타석이었다. 유격수 앞 땅볼을 쳤지만 전력질주 끝에 수비수의 실책으로 그는 마지막 타석까지 1루에서 살아남았다.
“그게 마지막 타석이었잖아요.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중간에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되죠. 후배들한테 마흔두 살 선수도 이렇게 열심히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더 열심히 해달라는 거였죠. 말은 안 했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후배들한테는 좋은 걸 보여주고 교훈을 주는 게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거든요.”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시절에 인터뷰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2015년 제54회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를 만난 것도 굉장한 즐거움이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2006년 이후로 9년 만에 선정된 우승자이기도 했던 만큼 클래식 업계와 애호가들의 관심이 지대했다. 하지만 양인모 스스로에게 중요한 건 우승 경력이 아니라 ‘좋아서 시작했고 한 번도 괴롭다고 느껴본 적 없는’ 바이올린 연주를 보다 활발히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연주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그 물음을 숙제처럼 받아들이는 태도가 흥미로웠다.
“제가 연주를 좋아한다는 의미를 떠나서 제 연주가 주변인들에게,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고민해요.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봉사 활동도 많이 다녔고요.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시야도 넓히고, 연주에만 매몰되지 않아야 되는 거죠. 자신의 연주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연주자가 훌륭한 연주자라고 생각해요.”
<동방유행> 피처 디렉터 시절에 인터뷰로 만난 소설가 정유정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작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을 기다리는 존재라 생각하지만 창작을 직업 기술로 삼는 이들 중 대다수는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꾸준히 창작 행위를 반복하며 직업적 자산을 쌓아 나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이 잘 써지든, 잘 써지지 않든,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를 쓰는 걸 원칙으로 세웠다고 밝힌 바 있다. <7년의 밤>과 <28> <종의 기원> 등으로 베스트셀러 인기 작가 대열에 오른 소설가 정유정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야구광이었지만 전업 작가가 된 이후로는 경기를 보지 않는다. 매일 같이 열리는 경기를 챙겨보면 창작 리듬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어요. 클리셰가 씌워지면 다른 방식을 구상할 수 없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할 땐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 보통 새벽 3시에 일어나서 4시부터 소설을 쓰죠.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진행해요. 오후가 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땐 문장이나 사건 배열을 수정하고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엔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가죠.”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시절에 인터뷰로 만난 박찬욱 감독
1인 창작물이라 할 수 있는 소설과 달리 영화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야 만들어진다. 아무리 예산이 적은 독립영화라 해도 혼자서 영화를 만들기는 어렵다. 적어도 감독과 배우 두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불린다. 수많은 전문 스태프가 모여서 각자 발휘한 역량이 하나의 작품 세계로 수렴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역량의 세기와 방향을 결정하는 감독의 재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거장으로 알려진 박찬욱 감독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창작자다.
“영화도 예술 창작이지만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노동이 필요한 일이에요. 가끔 감독 개인의 예술적 충동이나 영감을 미친 듯이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10편이나 찍은 감독 입장에서는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덜 고생시키는 쾌적한 방법을 찾고자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창조적으로 위축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거운 근무 환경을 만드는 것 또한 이뤄야 할 목표니까요.”
<동방유행> 피처 디렉터 시절에 인터뷰로 만난 무용수 안은미
영화뿐만 아니라 공연예술에서도 팀워크는 중요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대단한 성취를 자랑하는 예술가는 어쩌면 이런 면모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러한 경지에 다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다섯 살의 나이에 한국무용수의 의상을 보고 ‘춤이라는 게 달나라로 가는 판타지처럼 느껴졌다’는 현대무용가 안은미는 자신이 운영하는 안은미 컴퍼니에 소속된 무용수들을 ‘신선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결국 그들의 헌신이 자신을 춤추게 만드는 동력이라 소개한다. 그래서 그만큼 노력한다고도 말했다.
"예술하는 사람은 안정감을 가지면 안 돼요. 자신을 코너에 세우고 긴장감 있게 살아야죠. 작가가 결과물을 못 내면 창피하잖아요. 지구를 떠나야지. 그러니 매일 제 자신을 코너에 밀어 넣는 거죠. 물론 언젠가는 방전될지도 모르겠지만. 방전되는 날이 오면? 그날 진짜 달에 가야지. 우주선 타고. 상상만 해도 귀엽지 않나요?”
프리랜서 영화 저널리스트로서 <보그> 인터뷰로 만난 배우 차승원
최근 인터뷰로 만난 배우 차승원은 운과 재주에 관해 이렇게 정의했다. “보통 운칠기삼이라고 하잖아요. 운이 7이고, 재주가 3이라는 거지. 그런데 저는 운구기일이 맞는 거 같아요. 운이 훨씬 많이 따라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9의 운이 오려면 노력을 훨씬 많이 해야 돼요. 9의 운을 받으려면 1을 훨씬 공들여서 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그걸 전제로 운이 9라고 말하는 거예요. 운도 자기가 갖고 있는 게 있어야 오는 거니까. 운은 느닷없이 저절로 굴러오는 게 아니에요. 절대 아니지. 그래서 저는 불가항력이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끝까지 해봐야 되는 거지. 적어도 스스로 창피해지고 싶진 않거든.”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아는 유명한 혹은 대단한 이름들은 결코 허투루 유명해지고 대단해진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가 인터뷰로 만난 이들이 내게 전해준 진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삶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표현하고 책임지는 무언가에 최선을 다한다는 진심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창작을 비롯한 특정 전문 분야에 속해 있지 않은 이들에게도 분명 귀감이 될만한 자세이자 태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애하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말처럼,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위대한 모든 것들은 결국 그렇게 성실하게, 예정 없이, 걸어가고 다다른 결과일 것이다. 운이 좋았다는 말은 겸손이 아니라 그 성실함으로 쌓아 올린 가능성이 끝내 수렴한 궁극의 한 점일 뿐이다.
(LX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발행하는 사외보 매거진 '땅과 사람들'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