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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l 30. 2024

신승호, 행복을 찾아서

'파일럿'의 배우 신승호가 바라던 내일은 이미 오늘이다.

훤칠한 키와 건장한 체격 그리고 중저음의 무게감 있는 음성으로 조성하는 위압감. <D.P.>의 황장수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D.P.>는 탈영병을 추적하는 특수 보직을 제목으로 내거는 작품이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조직에 만연한 폭력적인 내부 부조리에서 비롯되는 일탈을 추적한다는 건 끝내 그 일탈의 근원지로 돌아가고 짚는 일이 된다. 그러한 폭력성을 대변하는 황장수를 연기하는 배우는 그 위압감을 온몸으로 대변해야만 했다. 


“조금 낡은 용어 같지만 ‘남자 냄새나는 배우’를 찾았는데 신승호 배우를 발견했어요. 그 나이대의 배우 중에서 그렇게 피지컬이 확실한 배우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확실히 눈에 띄었죠. 무엇보다도 굉장히 예의가 바른 편이었어요.” <D.P.>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은 배우 신승호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의외로 긴장을 안 하더라고요. <D.P.> 첫 촬영이 정해인 배우한테 신발을 던지고 폭력을 행사하는 신이라 꽤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긴장한 티가 전혀 안 났어요.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신승호에게 한준희 감독의 말을 전하자 놀랍다는 표정을 짓더니 멋쩍게 웃다가 차분히 말했다. “제 기억에는 <D.P.> 촬영할 때 정말 매 순간마다 너무 긴장했던 거 같아요.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배우에게 신발도 던지고, 몸에 올라타서 ‘로열젤리’라고 하면서 얼굴에 침도 뱉으려 하고, 막 뺨 때리고, 그런 걸 연기해야 했으니까 정말 엄청나게 긴장할 수밖에 없죠. 저는 그랬던 게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니 이미 한참 지난 일이지만 다행인 거 같아요.”


알고 보면 포커페이스 아닐까? “오히려 완전히 다 드러나는 스타일이에요. 표정을 못 숨긴다는 의미이기보단 웃고 싶을 때 잘 웃고, 슬플 때 슬퍼하고, 이렇게 감정대로 표현하는 게 편해요. 그럴 때 일하는 능률도 오르는 거 같고요.” 그러니까 연기는 연기일 뿐이다. 최근 <파일럿> 제작보고회에서 신승호는 ‘자신이 연기한 무거운 캐릭터와 다른 성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 있다고도 했다. 한준희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평소에 굉장히 위트 있는 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는 신승호에게 <파일럿>에서 연기한 서현석은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줄 기회 아니었을까?


“사실 ‘항마력이 딸리는’ 장면들이 꽤 있어요.(웃음) 실제로 제가 쓰지 않는 말을 대사로 해야 하는 순간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를 통해 그런 시도를 해보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그런 연기를 할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있더라고요. 약간 능글맞은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부분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낀 자유로움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게 정말 웃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도 재미있게 일하려 노력했죠.” 


연기의 사전적 정의란 ‘연기 배우가 배역의 인물, 성격, 행동 따위를 표현해 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배우가 연기를 한다는 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표현하는 일이지, 그 인물이 되는 게 아니다. 설사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연기를 했다 해도 결국 배우와 그 인물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인식은 꼭 당연하게만 형성되지 않는 법이다. 대중은 배우가 연기한 인물로서 배우를 인식한다. 고로 배우의 첫인상이란 대체로 그 배우가 처음으로 강력하게 인식시킨 인물의 면면에 가깝기 마련이다. 결국 배우가 그러한 인식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물을 강력하게 인식시키는 연기를 해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기는 홀로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혼자 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 면에서 형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신승호 배우가 일컫는 형님이란 바로 <파일럿>의 주연배우 조정석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파일럿>에서 1인 2역에 가까운 인물을 연기한다. 남자이지만 여장을 하고 자신의 여동생인 척하며 항공사에 위장 취업을 하는 인물이다. 신승호가 <파일럿>을 촬영하며 ‘항마력이 딸리는’ 기분을 느꼈던 건 바로 여자인 척하는 조정석에게 반하고 추파를 던지는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연기하는 곤혹스러움을 이겨낼 뻔뻔함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조정석은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동료였다.


“뭔가 더 나와야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물어봤어요. ‘형님,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러면 까마득한 후배인 저에게 항상 진지하게 아이디어를 제안하셨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제안을 무작정 좋다고 할 필요 없고 정말 괜찮다고 느껴지면 해보라는 거예요. 덕분에 뻑뻑하게 느껴지던 게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장에서 웃고 떠들고 작은 대사 하나까지도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면서 정말 큰 도움을 받았죠. 사실 촬영 전부터 많은 걸 배워보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직접 묻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보고 듣는 게 가장 좋은 훈련이니까요. 배우이기 전에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늘 그렇게 생각했고요.”  

일찍이 학창 시절부터 축구선수로서 11년을 지내온 신승호가 축구를 그만둔 건 축구가 더 이상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축구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축구 선수로서 살아가는 게 즐겁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할 즈음부터 축구를 하는 게 예전만큼 행복하지 않았어요. 축구는 좋았지만 축구 선수로서 살아갈 삶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요? 불행한 건 아니지만 즐겁고 행복하고 싶은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특별히 다른 무엇이 되고 싶다는 계획은 없었지만 축구는 그만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부모닝의 반대로 심했고, 그로 인해 늘 화목했던 집안에 거센 풍파가 찾아왔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크게 다투기도 했고, 서로 말이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런 부모님을 이해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은 길로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신승호는 배우로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특혜 같은 직업이라 생각해요. 작품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어떤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배워야 하는 게 있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배우는 바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파일럿>에서 비행기 기장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그냥 기장을 연기한다는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뭐든 새롭게 아는 부분이 생기는 거죠. 평소에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게 정말 큰 장점 같아요. 아마 배우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신승호가 배우로서 새롭게 경험해보고 싶은 건 뭘까?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신승호는 ‘다크 히어로’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다크 히어로가 멋있으니까? 아니면 액션 연기를 하고 싶어서? “사실 복잡한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상반되는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험이 궁금하더라고요. 얘가 영웅인지, 악당인지, 확실하게 구별이 안 되는 인물이 있잖아요. 그래서 멋진 캐릭터는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궁금해요. 일단 해보지 못한 걸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요.”


생각해 보니 <환혼>에서 연기한 세자 고원 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위치상 근엄한 권위를 가진 인물이지만 마냥 권위에 기대지 않고, 뛰어난 무예와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만 때때로 우스꽝스럽고 백치미 넘치는 복잡한 면모를 가진 인물이었다. 사실 대본에 없었던 인물이었지만 신승호에게 역할을 주고 싶었던 PD와 작가가 뒤늦게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그만큼 신승호에게는 선물 같은 역할이었을 것이다. “너무 감사했죠. 그냥 쓱 언급 정도만 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서 저에게 주셨고 심지어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전적으로 맡기셨어요. 그래서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대로 다 했어요. 그래서 가끔은 연기가 아니라 제가 보이는 거 같기도 했어요.”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 신승호는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 이미지를 쓰고 있다. 배우 같은 유명인은 보통 자기 사진을 쓰는 게 일반적이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 궁금했다.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사실 언제부터 썼는지 잘 모르겠어요. 연기 시작할 즈음이었나? 그만큼 오래된 건데,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은 제 또래 세대가 직접 볼 수 없는 모습이었잖아요. 예를 들면 <타이타닉> 같은 영화가 개봉할 때에는 너무 어렸으니까. 그런데 그냥 멋있더라고요.” 


답변을 듣고 새로운 물음표 하나가 더 떠올랐다. 만약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사진을 SNS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 후배 배우를 알게 된다면 어떨까? “왜 그랬는지 묻고 싶을 거 같아요.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유라도 듣게 된다면 배우로서 살아가는 삶에 큰 동기부터가 될 수도 있겠죠.” 결국 즐거움도, 행복함도, 평정한 삶을 꾸준히 이어가야 발견하고 수확할 수 있는 낙일 것이다. 바리톤의 중저음 같은 안정적인 음성에서 감지되는 어떤 기대감. 결국 자신이 바라는 삶을 찾아갔고 살아가는 신승호의 오늘은 그가 바라는 내일의 행복을 위한 튼튼한 기약일 것이다.


('VOGUE KOREA' 8월호에 쓴 인터뷰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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