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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더 무비' 이보다 멋질 수 없는, 낭만 합격

승부의 쾌감보다도 낭만의 운치로 질주하는 영화, 'F1 더 무비'.

by 민용준

한때 주목받던 F1 레이싱 드라이버였던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는 불의의 사고로 F1 서킷을 떠난 뒤 도장 격파 수련이라도 하듯 다양한 레이싱 대회를 전전한다. 방금도 막 24시간 레이스를 펼치는 데이토나 24에 참가해 팀의 우승을 거든 후 쿨하게 우승 보너스를 챙긴 뒤 어디론가 떠나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 오래전 함께 팀을 이뤘던 동료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가 찾아온다. 현재 F1 최하위팀 에이펙스GP를 이끄는 대표로서 그는 소니를 팀을 구할 드라이버로 영입하고자 한다. 고민 끝에 친구의 청을 받아들인 소니는 팀의 젊은 유망주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의 견제 속에서도 F1 드라이버로 복귀해 레이싱에 돌입한다.


<F1 더 무비>는 제목 그대로 F1에 관한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영화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레이싱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조셉 코신스키의 선언은 블러핑이 아니었다. 영화 촬영을 위해 F1 협회와 1년 가까이 사전 협의를 거쳤고, 영화 속 레이싱 장면은 F1 경기가 열리는 22개의 그랑프리 대회 중 14개 대회 기간 중 실제 서킷에서 촬영했으며 10개 팀이 모두 영화 촬영에 협조했다. 그 과정에서 현존하는 전설로 꼽히는 루이스 해밀턴이 F1 협회와의 협상을 도왔고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는 동시에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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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레이싱 선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레이싱 선수처럼 직접 F1 서킷 위를 달린 배우들의 공헌도가 대단한 작품이기도 하다. 일찍이 <탑건: 매버릭>에서 전투기 파일럿이 된 톰 크루즈에게 영감을 받은 것처럼 브래드 피트와 댐슨 이드리스는 코너에서도 190마일, 그러니까 시속 300km의 속도를 줄이지 않는 F1 레이싱을 몸소 실연한다. 덕분에 보험사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하지만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브래드 피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물론 보조주행장치가 거의 없는 F1 차량을 쉽게 몰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F1의 하위 리그인 F2 레이스카에 F1 외관을 피팅한 차량을 운전했지만 역시 만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일찍이 레이싱 바이크를 타는 취미가 있었던 브래드 피트는 기꺼이 그 속도를 즐기고 받아들였다.


영화의 생생한 속도감을 보장하고자 배우가 집념을 발휘한 건 <F1 더 무비>가 실현하려는 목표가 말 그대로 ‘가장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레이싱 영화’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우가 운전대를 잡고 F1 서킷을 질주한 건 환갑에 다다른 톱스타배우의 무용담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F1 더 무비>는 F1 차량에 직접 카메라를 장착하고 질주하는 트랙을 마주한 드라이버의 표정과 시점을 생생하게 중계하듯 촬영하는 것이 목표였다. 조셉 코신스키는 전작 <탑건: 매버릭>에서 전투기를 운전하는 배우들을 생생하게 촬영한 바 있었기 때문에 정교한 가짜가 아니라 날 것 같은 진짜의 힘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드라이버를 연기하는 배우를 잘 연출하는 것을 넘어 진짜 드라이버가 된 배우를 제대로 찍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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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더 무비>에서 브래드 피트와 댐슨 이드리스가 운전한 레이스카에는 각각 운전석 안팎으로 15개의 카메라를 장착할 수 있는 카메라 마운트가 설치됐고, 차량의 속도감을 안배하기 위해 무게를 최소화한 F1 레이스카에 무게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해상 카메라 역시 초소형으로 경량화한 모델을 개발해야 했다. 실제로 <F1 더 무비>를 위해 개발한 카메라의 크기는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10cm로 이는 <탑건: 매버릭>에서 전투기에 설치한 카메라의 1/4 크기로 줄어든 사이즈라고 한다. 동시에 파나비전에서 개발한 특수 리모콘으로 원격 조정이 가능해 차량 안팎으로 설치된 15대의 카메라를 역동적으로 활용해 촬영했다.


이처럼 육체적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과 협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F1 더 무비>는 생생한 속도감을 제공하는 체험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관객과 진짜 몸으로 부딪히며 호흡하는 듯한 고전적인 시네마의 즐거움을 환기시키는 영화이기도 하다. 관록의 노장과 패기의 신예가 갈등과 좌절을 거쳐 화합과 승리로 나아간다는 지극히 뻔한 스토리를 전형적인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묘미가 있다. 이는 대회의 우승보다도 자기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캐릭터의 집념에서 우러나오는 태도를 신뢰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배우의 연기와 단순명확한 스토리 그리고 생생한 속도감까지,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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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_02.jpg 조셉 코신스키 감독

최후반부에 이르러 홀로 질주하는 소니 헤이스 앞으로 무한하게 펼쳐지는 듯한 서킷의 풍경과 마주한 그의 일관된 표정은 결국 그가 상대하던 건 나란히 혹은 앞뒤로 달리던 레이스카가 아니라 바로 그 서킷 그 자체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 순간 소음이 사라지고 온전히 심장박동 같은 엠비언트만이 웅웅 울리는 가운데 무중력 상태에 이르듯 내달리는 레이스카를 지켜보는 스크린 밖의 관객 역시 숨을 죽인 채 그저 함께 달릴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이기고자 풍운의 레이스를 펼치고 끝내 완벽한 피니시, 그야말로 낭만 합격. 이보다 멋질 수 없다.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발간하는 'The-K 매거진' 10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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