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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27. 2018

<독전> 독한 얼굴들

<독전>은 독한 캐릭터들의 전장이다.

<독전>은 홍콩 영화계의 거장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두기봉 감독은 <암전> <PTU> <미션> <대사건> <흑사회> <익사일> <피의 복수> 등 범죄 조직을 소탕하려는 경찰들의 분투와 범죄 조직 간의 암투를 소재로 홍콩 범죄 누아르의 명맥을 이어가는 대가다. 2013년에 공개한 <마약전쟁>은 중국과 일본, 한국까지 마약을 공급하는 대륙 기반의 거대 마약 조직을 소탕하려는 마약계 공안들의 분투를 그린 작품이다. 전작들에 비하면 두기봉 특유의 유머 감각과 낭만성이 절제된 인상이지만 공간의 지형지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날것 같은 현장감을 구현하는 총격 신은 단연 압권이다. 두기봉 감독이 홍콩이 아닌 중국 본토에서 촬영한, 광둥어가 아닌 베이징어로 제작한 최초의 작품 이기도 하다.  


<마약전쟁>이 중국 사회의 풍경과 심리를 최대한 반영한 사실적인 범죄 영화처럼 보인다면 <독전>은 대한민국이라는 세계의 밑바닥과 그 이면에 자리한 마약 조직의 생태계를 낯설게 드러내며 장르적 환상을 부추기는 데 치중한 작품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국적을 바꿔도 무방해 보이는 탈국적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도시의 풍경과 한적하고 전원적인 시골의 풍경이 대치되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현실감을 불어넣기보다는 영화적 미장센으로 장르적 허구를 강화시키는 인상이다. 이런 특징은 <독전>이 범죄라는 사건보다도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캐릭터 개개인의 심리와 캐릭터 간의 갈등과 충돌을 더욱 첨예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야심 이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여기게끔 만든다.  


그만큼 캐릭터 연출에도 공을 많이 들인 인상이 다. 극의 주요한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대부분 저마다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한껏 과장된 연기 를 펼치는데 이는 강한 인공성을 두른 영화적 미장센과 적절하게 어울리며 <독전>의 영화적 세기를 한층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다. 특히 김주혁과 박해준 그리고 류준열의 공헌도가 상당해 보인다. 김주혁은 극적 분위기에 극렬한 광기를 입히면서도 끝까지 그 세기를 유지하면서 영화가 밀고 나가고자 하는 극단적인 세기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좋은 공헌을 한 다. 박해준은 적절한 완급 조절을 통해 캐릭터 간의 긴장감을 이동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하며 극적 리듬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무표정한 인상으로 극에 미스터리를 불어넣는 류준열은 <독전>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에 내면의 표정을 드러내며 영화의 궁극적인 야심을 완벽하게 설득시킨다.  


출연 분량은 적지만 영화의 초반 분위기를 장악하며 극적 몰입도를 높이는 김성령의 공헌도도 평가할 만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전반적인 내러티브의 흐름을 책임지는 조진웅의 안정감도 탁월하고 극적인 장치 노릇을 해내는 차승원의 기여도도 중요해 보인다. 한편 마약을 제조하는 농아 남매를 연기한 김동영과 이주영은 <독전>이 발견한 얼굴들이라 할 수 있 다. 두 캐릭터는 <독전>이라는 영화 자체에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 영화에서 가장 공헌도가 큰 캐릭터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독전>은 저마다 극렬한 에너지를 품은 캐릭터들을 균형 있게 조율해낸 각본과 연출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작을 독특하게 수식한 연극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강렬한 캐릭터 영화로 발전시킨 각본가 정서경과 이를 바탕으로 모든 캐릭터에게 형형한 존재감을 입힌 감독 이해영의 역량이 큰 힘을 발휘한다. <독전>은 각본과 연출, 연기를 비롯해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의 앙상블 자체를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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